3.11 후쿠시마 핵참사 이후 세계 각국에는 탈핵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체르노빌을 1차 경험한 유럽 국가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당사국인 일본은 탈핵을 선언하다 미국의 압력으로 탈핵정책을 유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핵산업을 둘러싼 핵마피아들은 이처럼 미국 등 강대국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전 인류와 미래세대에 대한 중대한 범죄행위라 할지라도 말이다.
탈핵운동의 불씨가 번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그동안 소수 환경운동 활동가들에 의해 미진하게 진행되어 왔던 반핵운동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본격적인 탈핵운동으로 불을 지피고 있다. 후쿠시마는 그동안 기후변화와 기후재앙에 대한 에너지인식의 전환에 있어 메가톤급의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탈핵의사회, 탈핵법률가모임, 탈핵교수모임, 탈핵범종교인모임 등이 이미 결성되어 가동되고 있고, 지역에서도 핵발전소가 있는 4개 지역을 포함하여 대구경북, 부산, 울산, 수원, 순천 등에도 탈핵시민조직이 결성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지역내 마을단위에서 자발적으로 모임이 구성되고 에너지 자립과 전환을 위한 다양한 사업과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한살림과 같은 생명운동 단체를 비롯하여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주부들이 중심이 된 차일드세이브 등 속속들이 생기고 있다.
가장 크게 주목받고 있는 건 서울시의 ‘원전1기 줄이기 운동’일 것이다. 사실 서울과 수도권은 국내 전체 에너지의 40%를 소비하고 있다. 서울시의 전력소비를 위해 멀리 떨어진 지역의 피해와 희생이 뒤따라야 하는 체계 속에서 에너지 생산 보다는 절약과 효율화, 즉 절전을 통해 발전의 의미를 살려보겠다는 서울시의 이 시도는 시사하는 점이 크다.
또 작년 서울시 노원구 아스팔트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된 뒤 노원구청장이 핵발전소에 대한 인식전환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전국 45개 지자체장의 탈핵선언까지 이끌어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자체들의 움직임을 추동할 수 있는 건 역시 더 많은 지역과 마을단위, 그리고 시민들의 힘일 것이다.
무한성장을 멈추고, 에너지 적게 쓰는 세상으로
현재 탈핵운동진영에서는 대안에너지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그 속에는 에너지를 둘러싼 정치적, 경제적 인식의 새로운 시각이 결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동안 원자력에 대한 인식은 ‘위험한 건 동의하는데 딱히 다른 에너지 대안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 지배적인 인식이었다. 재생에너지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전개되고 있는 탈핵운동은 핵발전의 자리에 재생에너지를 그대로 채우자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효율면에서 보면 분명 재생에너지는 핵발전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 단순히 “안전하니까 재생에너지로” 라는 메시지는 이미 에너지 다소비 사회체계 속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대안에너지정책을 이야기할 때 재생에너지의 비율은 20%이다. 나머지 80%는 에너지절약과 효율화이다. 이러할 때만이 석유와 원전을 넘어선 에너지 전환과 자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탈핵운동진영에서 제기하는 에너지대안은 에너지절약과 효율화이다. 이 말은 에너지 다소비 사회체계를 에너지 저소비 사회체계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에너지절약운동은 국가기관이나 가정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체 에너지 중 가정, 상업부문이 차지하는 것은 30%도 채 되지 않는다. 50%이상이 산업계이다. 현재까지 산업계에 에너지 저소비 정책은 씨알도 안 먹힌다.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에너지정책인 것이다. 그러니 애꿎은 주부와 공무원들이 에너지 다소비의 주범인양 집중대상이 되고 있다.
에너지 문제는 경제사회가 유지, 발전하는데 절대적인 요소이다.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대부분의 전쟁이 석유, 가스 등 에너지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자원분쟁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에너지와 경제, 그리고 자본의 힘과 권력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는 곧 성장의 동력이고 시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 저소비 사회체계를 만들자는 요구는 산업계의 저항에 부딪치는 것이고, 자본의 힘에 의해 에너지 선택권이 결정되는 것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정책을 결정하고자 하였으나 일본 산업계의 반발로 계속 미뤄져왔다.
에너지 소비자에서 생산과 운영의 주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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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의 송전탑 건설 공사를 막기 위해 천막을 친 밀양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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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에너지체계에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중앙집중형 에너지생산이 아니라 지역 분산형 에너지 생산체계로 전환을 주장한다. 에너지생산이 화력, 수력, 원자력 등 국가주도로 진행되면서 일반 국민들은 에너지선택권을 빼앗겨 버렸다. 국민들은 그 위험천만한 핵발전소를 요구한 적이 없다.
한편 발전소가 있는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갖는 송전과정의 문제점을 폭로한 것이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이다. 에너지 다소비 도시를 위해 피해를 보는 발전소 인근지역이 갖는 불평등함 등이 중앙집중형 에너지생산이 갖는 커다란 문제이다.
지역분산형 에너지 체계는 에너지 소비자가 생산의 주체가 되는 체계이다. 이 속에는 여러 가지 가치를 함께 내포하게 한다. 고속의 시대에서 느림의 철학이 따르고, 자발적 불편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필요하며, 내 가정만이 아닌 지역과 마을 공동체를 반드시 필요로 하게 된다. 에너지 소비자에서 생산의 주체, 운영의 주체가 되는 것은 작은 단위에서부터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는 것과 연동된다. 이것이 에너지 민주주의이다.
일본은 현재 ‘작은 일본’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성장맹신주의에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에너지의 문제는 이러한 사회, 경제 전반의 새로운 가치를 동시에 던지는 중요한 테마가 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로 인해 정치적인 문제로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에너지의 새로운 전환은 사회구조의 전환과 함께 가야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에너지 자원이 있지만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 그저 국가가 주는 전력망을 통해 스위치를 켤 뿐이다. 그 편리함 때문에 그 속에 감춰진 온갖 불평등, 부정의를 보지 못했고, 세상 모든 생명체를 파괴할 수 있는 괴물이 숨겨져 있음을 보지 못했다.
이것을 보게 해준 것이 바로 일본의 후쿠시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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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4공단 인근의 산동면 봉산리 마을 일대. 불산 유출이 일어나자 인근 농작물은 모두 고사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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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구미는 불산가스사고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초토화되고 있다. 이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부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방사능은 오감으로 인지할 수 없지만 불산가스는 곧바로 인지가 되는 것임에도 이에 대해 늑장대응, 안이한 대응을 한 정부의 태도는 만에 하나 핵사고가 날 경우에도 똑같을 것이다.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수 있는가? 사고를 일으킨 화학공장이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대지와 공기, 식물 이 모두의 오염이 단시일 내에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참상 앞에 대응이란 것 자체가 무기력하게 다가온다. 환경재난은 이런 것이다. 인간의 힘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지금 탈핵운동의 불씨가 번지고 있지만, 이 불씨를 살려 진정한 불을 지피고자 한다면 성장을 향하는 자본주의 삶의 방식, 사회구조에 대한 새로운 물음으로 나아가야 하며, 새로운 전환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모색, 그리고 전환을 위한 보다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탈핵기획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