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어느날, 나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정문에서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13시간을 서서 회사를 바라보며 서 있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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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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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들어가려고 출근시간에 도착한 나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아산본부에 출입요청을 했고, 2시간쯤 후 정규직 노동조합 간부는 회사에서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그대로 발길을 돌려 올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한 시간씩 교대하는 경비들과 마주 서서 회사를 보며 서 있는 가슴으로 찬바람이 펄럭였다. 4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 정규직 조합원은 2400명, 비정규직 노동자 1600명, 그 중에 사내하청지회 우리 조합원은 100여명. 해고되어 출입을 못하고 서 있는 내가 바라는 것은 정규직 노동조합 간부가 출입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합원들이 몰려나와 싸워서 나와 함께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생각을 내내 했다. 13시간을 찬바람 속에 서서 밥 생각도 없고 지친다는 생각도 없이 나는 언제쯤 우리 조합원들의 힘으로 이 문을 당당하게 뚫고 들어갈까. 그 생각만 했다.
어떤 날은 2시간, 어떤 날은 3시간, 어떤 날은 6시간을 그렇게 기다리면 결국 정규직 간부들 덕분에 나는 출입 할 수 있었는데, 그러고도 ‘공무상 표시무효’ 출입금지 가처분 된 자가 현장에 출입했다고 현대자동차가 고소해서 8개월을 징역살았다.
2008년 1월, 여전히 7시에 정문에서 정규직 상집간부에 의해 출입한 나는, 의장공장으로 들어가 주야간 교대하는 조합원들과 인사하다, 쫓아다니며 사진 찍는 정규직 관리자와 한바탕 싸웠다. 협력업체 지원팀의 그 관리자는 유도인지, 태권도인지 체육과를 나왔다는데 가장 선봉에서 지회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을 솔선수범하며 5년 동안 싸웠던 사람이라 감정도 많이 쌓여있는 사람이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귀찮다. 업무도 바쁜데 해고된 지회조합원들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정문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출입시키러 나가야 하는 것도 일이다.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현장에 들어가서 마찰이 없으려면 정규직 상집간부가 함께 가야 하는데, 번번이 그럴 시간도 없다. 사내하청지회와 관련한 일이 터지면 왜 미리 얘기하지 않았는지 항의하듯이 말한다. 미리 말하면 니네가 싸워보고 나서 말하지 일일이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말한다. 하루 종일 남의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현장에 들어가자고 하면 바쁘다.
하루종일 남의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뭘 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정규직 노동조합의 바쁜 상집간부들을 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서 출근길에 잠깐, 점심시간에 잠깐 조합원들과 인사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회사 관리자가 사진을 찍으며 따라다녀 싸워버렸다. 그런 사진들을 근거로 나는 1년쯤 후 다시 징역 살고 있겠지. 그래, 그러고 말았어야 하는데 그렇다는 것을 정규직노조 상집간부중 비정규 담당자에게 말한 것이 화근이다.
“거긴 뭐하러 들어갔어. 사고치고 나보고 수습하라고.”
그 말이 가슴에 콱 박혀서 하루종일 자존심이 상한다.
2003년부터 지난 5년 내내 늘 아주 많은 사람으로부터 나는 정규직 노조의 발목을 잡으라는 말을 들어왔다. 나는 왜 정규직 노조의 발목을 잡아야 하는 걸까. 물귀신처럼. 사내하청지회가 최선을 다해 깨지며 싸울 때 어쩔 수 없이 한 발을 담그고 최소한의 해야할 것을 할 수밖에 없는 원하청연대의 수준은 말 그대로 발목을 잡는 수준이다. 물귀신 같은 사내하청지회에게 발목을 잡혀 어쩔 수 없이 싸움을 하려니 정규직 동지들 또한 그 싸움이 신날 리가 없다.
20년 동안 남한 사회에서 가장 앞선 노동조합 투쟁을 하고, 그래서 해마다 시스템화되어 있는 임금단체협약에 관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동지들은 선수들이다. 당연하게도 ‘현장정서’에 대해서는 귀신같이 잘 알고, 노동안전, 노동시간, 각 공장의 노동조건과 관련한 대의원들의 협의시스템은 최고 수준이다. 2000년대 최첨단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동지들 옆에서 식칼테러당하고 경비와 정문에서 물고 뜯고 싸우고, 출입했다고 징역살고, 파업집회하다 봉고차에 납치돼 논바닥에 버려지는 80년대식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우리의 존재가, 정규직 동지들은 귀찮고, 비정규직인 나는 비참하다. 이 모든 문제를 기획하는 현대자동차 회사 것들은 휘파람을 불겠지.
지회 설립 초기, 하루하루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던 때 우리 조합원 중 한 명이 말했었다.
“저 앞에 넘어야 하는 산이 있는데, 산은 너무너무 높고, 산으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길은 무너져 낭떠러지가 되고, 뒷걸음질 칠 수도 없는데 그 길이 볼펜심처럼 가느다랗게 뻗어있는 것 같다. 우리가 지금 그 볼펜심을 따라 위태로운 한걸음씩 앞으로 가고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문득 보니 가로막힌 산은 여전히 높고 발밑의 길은 아직도 볼펜심처럼 위태롭다.
비정규직 노조가 사고 친 것 수습하는 정규직 노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파업투쟁 할 때 함께 라인을 세우고 어깨 걸어 파업투쟁 하는 동지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