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崇禮門) : 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29에 위치, 조선 건국 초기 궁궐과 종묘를 짓고 서울을 지키기 위해 태조 4년(1395년)부터 쌓기 시작했다는 서울 성곽의 정문으로 남쪽에 있다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2008년 2월 10일까지는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62년 국보 1호로 지정되었으며 국가 소유이나 관리자는 중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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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선전도 : 김정호 제작, 도성중심의 지도로 수선이란 서울의 별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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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왕조인 조선의 궁궐과 종묘가 있는 서울 도성을 지키기 위해 수만, 수십만의 부역으로 축조된 서울성곽의 정문인 숭례문이 불에 탄 후 관리책임에 대한 공방부터 복원과 문화재 지정 여부에 이르기까지 말들이 많다. 게다가 “정부 예산으로 복원할 수 있지만 국민성금으로 복원하는 게 오히려 국민들에게 위안이 되고 의미가 되지 않나 싶다”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발언으로 논란은 정치적으로 커지고 있다.
새삼 문화재 공부를 많이 하게 된 요즘, 내게 숭례문 아니 남대문은 무엇이었을까?
남대문? 국보 1호라는 것과 남대문 시장이 우선 생각나고 남대문 지나 광화문까지 쫙 뻗은 도로, 삼성빌딩, 서울역등 주변 건물이 떠오른다.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열두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며 술래를 잡던 놀이.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라” “열쇠 없어 못 열겠네” “어떤 대문에 들어갈까 남대문에 들어가”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라” “덜꺼덩 떵 문 열렸네” 대거리 하던 노래도 찾을 수 있다. 또 남자 바지 지퍼가 열린 민망한 상황에서 “남대문이 열렸다”고 말한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4가에 위치한 그 건물하면 떠오르는 위의 것들에서 어떤 상징을 발견할 수 있다. 단순히 문화재 지정순서라고 하지만 국보급 문화재 1호라는 숫자의 상징은 으뜸이요, 남대문을 지나 광화문까지 쫙 뻗은 도로와 주변 주요 건물들의 상징은 중심이다. 열두시가 되면 문을 닫는 남대문, 드나드는 걸 문지기에게 허락 받아야 하는 놀이와 노래에서 절대 권력, 왕궁이 있는 도성 정문의 상징은 한껏 높아진다.
이런 절대 권력의 상징은 지배계급에서 남성성까지 확장돼 ‘남대문이 열렸다.’는 표현을 한다고 하면 지나친 걸까?
지배권력의 상징이었던 남대문 복원은 신중해야
차분히 돌아보자. 국보든 보물이든 유형이든 무형이든 소중한 문화재가 소실된 게 처음인가? 반복되는 문화재 관리의 허술함을 지적하고 책임을 묻는 거야 차고 넘쳐도 좋을 일이다. 차분히 살펴 복원이 필요하다면 복원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불에 탄 잿더미조차 수습 안 된 터에 복원에 필요한 시간과 돈, 목재를 얘기하고 기왕에 복원하는 거 “광화문과 같이하자”, “성곽도 복원하겠다”, 신도시 아파트 개발하듯이 문화재 복원을 쏟아내고 있다.
600년을 견뎌온 목조건물로서 남대문의 문화재 가치가 있었다면 누각이 불에 탄 남대문의 가치는 전혀 없는 것일까? 서둘러 가림막을 치고 복원을 얘기하며 문화재 복원을 단순히 200억짜리 건축공사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에게서 또 태안해안국립공원의 어민들이 생계대책을 호소하고 분신 할 때는 생각나지 않던 ‘국민들에게 위안이 되고 의미 있는 일'로 국민성금이 생각나는 사람을 보며 그들이 안타깝고 복원하고 싶은 건 지배 권력의 상징이요. 70 노인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속절없이 타버린 문화재 남대문이 아닌 문지기에게 일일이 허락받고 드나들어야 하는 신성한 곳, 지배집단만이 사람 대접받던 그리움이 아닐까...
만일 남대문이 복원된다면 그 문은 88만원 세대에게 850만 비정규직들에게 농민, 어민, 장애인, 여성, 소수자에게 희망의 문이었으면 좋겠다. 행진의 문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희망의 문이라면 잿더미를 치우고 건축물 하나 올리는 일은 뒤로 미뤄도 되지 않을까.
묻지도 않고 닫히지도 않는 큰 문이 우리 모두의 상징이면 좋겠다.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