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긴급출동 SOS 24라는 프로그램에 발을 담근 이후 나와 내 동료들이 가장 흔하게 들었던 질문이었다. 법치국가를 자처하는 나라에서 대놓고 벌어지는 엽기적인 폭력에 대한 충격의 표현일 수도 있겠고, 그래도 OECD에 가입했다는 나라의 사회적 시스템이 이것밖에 안되느냐는 황당함도 함유하고 있으며, 그런 사건들이 결국은 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고백이기도 한 질문이리라.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호하게, 그러나 황망하게 예스다. “우리도 이 지경일 줄은 몰랐답니다.”
이렇듯 실재(實在)가 의심받을 만큼 황당한 사례의 피해자들 가운데 장애인을 빼놓을 수는 없겠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커녕, 인간에 대한 개념조차 차리지 못한 이들로부터 말도 안 되는 학대를 당하기도 했고 가난과 무지 탓에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로부터 차단되어 방치되었던 장애인들의 예는 일일이 들기조차 어렵다. 수십 년 동안 한 집안의 머슴으로 지내면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해야 했던 지체장애 노인부터 정신분열에 빠진 아버지의 애정(?) 때문에 자신의 배설물 더미에서 살아야했던 야생 소년(?)까지, 제작진조차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던 추억이 우리의 3년을 빼곡히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6년의 뜨거운 여름의 어느 날 매우 구미가 당기는 내용의 제보가 들어왔다. “몇 년 동안이나 한 여자 장애인이 00역 주변에 나와 앵벌이를 하는데 한 남자가 그 장사를 시키는 것 같다. 그는 소문난 알콜 중독자이며 주변에 험악한 욕설은 기본, 폭력까지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즉시 카메라를 들고 답사차 출동한 후배는 의기충천 분기탱천하여 돌아왔다. 자신이 봤던 지체장애인 중 가장 정도가 심한 지체 장애인이 역 계단 바닥에 널브러져 껌을 팔고 있었고 다가서서 말을 거는데 한 남자가 들이닥쳐 녀석의 엉덩이를 차 버렸다는 게 아닌가.
직접 현장에 가 보니 상황은 처참했다.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여자 장애인은 축축한 역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여름임에도 새파래진 그녀의 입술 속으로 이빨이 딱딱 부딪쳤고 검을 쥔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오죽하면 우리가 따뜻한 두유를 사서 건넬 생각을 했을까. 그녀 주위를 배회한다는 흉폭한 남자가 눈에 띄지 않음을 확인한 후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왜 이 일을 하시냐고. 그러자 그녀는 불명확한 발음으로 그러나 명확하게 의사 전달을 해 왔다. “돈 벌려고.” 그럼 여기 데려다 주고 돈 가져가는 아저씨는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더럭 불안감을 비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우리에게 더 이상 묻지 말고 가라는 몸짓을 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비틀거리면서 문제의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는 그다지 부드럽지 않은 태도로 여자 장애인을 휠체어에 태웠다. 아니 태웠다기보다 휠체어만 잡아 주었다. 여자 장애인은 버둥거리며 그 위에 올라앉으려고 기를 썼고 술에 취한 남자는 그걸 바라고보만 있었다. 이 꼴을 본 행인 몇 명이 도와주려고 손을 내민 순간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벼락같이 욕설을 내지르면서 문제의 남자가 행인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마 XX놈아.”
다음날도 그녀는 남자에게 이끌려 역으로 왔고 담요 한 장 깐 시멘트 바닥에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검을 내밀었다. 여자 후배가 그녀에게 언니 언니 하며 곰살맞게 굴기를 두어 시간, 마침내 그녀가 남자의 정체를 밝혔다. 그녀를 도우려는 사람에게 뺨 한 방을 서슴지 않던 안하무인의 알콜 중독자는 바로 그녀의 친오빠였다.
뜻밖의 대답에 아연실색한 우리는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그녀의 증언은 사실이었다. 동사무소에서도, 장애인복지관에서도 그녀 남매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몇 번 개입하여 설득도 하고 협박도 하며 앵벌이를 제지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문제는 여자 장애인이 자발적으로 그 ‘장사’를 하고 있고 오빠의 강제가 아님을 적극 주장하기에 법적으로도 제제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오빠가 자신의 일을 거의 작파한 채 동생의 수입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사소한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에게 가차 없는 폭언 폭행을 날리며 “돈이나 주고 가!”라고 으르렁거리는 것이 몇 차례씩 카메라에 담겼건만 소용이 없었다. 남매 모두 생활 수급자로서 그 장사를 거둔다고 생활 형편이 내려앉는 것도 아니었건만 목 아래로 양팔 의 일부만 사용이 가능하고 검게 멍든 팔꿈치로 체중을 지탱해야 했던 그녀는 3-4년의 춘하추동 내내 역 바닥을 온몸으로 닦아 내리고 있었다.
그녀를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 우리는 또 한 번 크게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그녀의 자발성의 이유란 너무나 당연했지만 동시에 퍽이나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용어로 ‘콧바람’이었다. 휠체어에 편안히 앉을 수조차 없을만큼 장애의 정도가 심했던 그녀에게 바깥 공기를 쐬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었고 여행이었으며 해방이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앵벌이는 그녀 생애 처음으로 가져 본 '직업'이었다. 시골집 방에 들어앉아 창문으로만 세상을 열던 그녀에게 앵벌이일망정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과 그들이 뿜어내는 삶의 내음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던 것이다.
그녀 자신 스스로의 행동을 옳은 것이 아니라 여기고 술에 찌들어가는 오빠가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고도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 자유를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즉 앵벌이가 아니고서는 자신이 세상으로 나설 수단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에 우리는 제대로 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중증 지체 장애인이 갈구했던 ‘콧바람’의 자유가 오빠의 술값을 위해 남용되고 다시 오빠의 그릇된 행동이 장애인의 자유로 무마되는 아이러니 앞에서 무슨 할 말이 남아나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오빠의 알콜 치료를 주선해서 입원시킨 뒤 그녀와 길지 않은 시간이나마 함께 하며 구경도 다니고 대화도 나눴다. 그리고 정말이지 고마운 휠체어 업체의 도움으로 그녀의 체형에 맞게 엎드려 탈 수 있는 전동 휠체어를 장만해 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휠체어조차 그녀가 운전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손은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시 그녀의 외출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때의 낭패감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도움이라고 표현을 썼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선의를 담보로 한 ‘시혜’ (施惠)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그 낭패감 뒤로 스며들었던 기억이 난다.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라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며 결국 그 도움을 체계화하고 그 시스템의 권역을 넓히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깨달음도, 지금까지 그리 못해 왔다는 자책도 그 기억 뒤에 섰었다.
수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왔다는 그녀의 ‘장사’는 끝났다. 그녀가 일그러진 자유의 댓가로 바꿔야 했던 ‘장사’를 종식시켰다고 애써 자위하면서도 그 어설픈 자위가 납덩이로 변해 가슴에 쌓이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과연 그녀는 지금, 그때보다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