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2500여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 잃어
최근 언론에 많이 나고 있는 몇몇 사건 때문에 산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이천 화재 참사, 하이닉스 청주공장 증설 사업장 문제 등 누가 보더라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한국은 ‘산재 왕국’이었다. 축소 발표가 분명한 노동부의 공식 통계에 의하더라도, 2006년 한 해에만 2,454명의 노동자들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1,333명의 노동자가 업무 중 사고로 인해 유명을 달리했고, 565명의 노동자가 소위 '과로사'라고 불리는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사망했다. 하루에 7-8명꼴로 노동자가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산업재해와 직업병은 예방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많이 양보하더라도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산재 및 직업병의 70∼80%는 적어도 예방가능하다. 이 수치는 관련된 많은 전문가들의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매년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는 한국의 현실은 무엇 때문인가?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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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닉스 건설 현장 산재 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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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는 사업주들이 산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업주들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강제하는 것, 산재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한 고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재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할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업주들이 산재예방을 위한 행동을 책임 있게 수행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
이를 위해 동시에 추진해야할 두 가지 사안이 있다. 하나는 작업장 내 노동자 참여 구조의 확장과 자기결정권 증대를 통해 노동자의 힘으로 사업주를 압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업주에게 산재 사망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무겁게 묻는 것이다.
두 번째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산재 사망이 발생하면 경찰과 산업안전보건감독관(근로감독관의 일종)이 동시에 조사를 수행하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와 업무상 과실치사죄 적용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 법원에서 산안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죄 둘 다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산안법 위반에 대한 벌칙만이 가해져 턱도 없이 낮은 벌칙을 부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둘 이상의 범죄를 범하였을 때, 앞선 범죄로 인하여 처벌을 받았을 경우 뒤의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의한 것이다.
둘째, 업무상 과실치사죄에 의하여 사업주가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있다 해도 영세사업장 사업주만이 처벌받고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직접적'으로 사인을 제공한 이에게만이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대기업이나 중간 규모의 기업은 대부분 작업장 안전관리자나 중간관리자가 처벌을 받게 되고, 위계 구조가 단순한 영세사업장만이 때때로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다.
산재사망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에게 물음으로써 산재예방 효과를 거두기 위해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산안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나 벌금이 아니라 형법상 과실치사죄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기업 사업주가 처벌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안법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고, 사업주에게 산재 예방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기에, 산재 사망이라는 결과에 대한 처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산안법 위반에 대한 벌칙은 형사법 위반에 따른 벌칙보다 가벼우며, 사업주들은 산안법 위반에 따른 벌칙에 대해서는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한국타이어 경영진이 1394건의 산안법 위반 행위 적발에 대해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업주의 무책임한 경영으로 산재 사망이 발생하였을 경우, 이 사망에 대한 책임을 현재 존재하는 업무상 과실치사죄보다 더 엄중히 묻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업무상 과실치사죄와 같이 대기업 고위관리자를 처벌할 수 없는 구조는 산재예방에 전혀 효과적인 장치가 될 수 없다. 무책임한 경영으로 노동자가 사망하였을 경우 그 사망에 대한 책임을 '살인'에 버금가는 형태로 고위관리자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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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타이어 책임자 처벌 요구하는 1인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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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살인행위에 대한 특별법이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산안법의 벌칙을 무겁게 하는 것은 법논리상 한계가 있고, 현재의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때문에 새로운 법률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다른 선진국에서도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다. 영국, 캐나다, 호주의 일부 주에서는 이미 이러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태만이나 부주의로 산재사망을 일으킨 기업과 사업주를 형사적으로 강력히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자고 얘기하면 적지 않은 법률가들은 우려를 표명한다. 그러한 법률의 목적은 현재 존재하는 다른 법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그러나 기업이 그릇되게 사망이나 상해를 유발했을 때 형법과 구별되는 다른 영역의 법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형법이 저평가될 수는 없다. 형법이 국가에 의해서 집행된다는 사실은 국가의 전문성과 자원이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장하는 데에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형법 제도 내에서 피고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기업이나 기업의 고위 임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적 처벌의 효과이다. 그것은 행위자를 고발하고, 잘못된 행동을 처벌하고, 피해자와 사회 전체가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느끼도록 하고, 추가적인 범법 행위를 제지하고, 법 위반자를 갱생시킬 수 있다. 이는 법학자들이 말하는 형법의 존재 이유이다. 이러한 존재 이유가 그대로 기업의 살인 행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사회 변화와 사회적 합의 수준을 반영하여 새로운 범죄를 규정하고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특별법의 형태로 기업을 형사 처벌하는 법은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관한법률, 환경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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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타이어 앞 집회 - 제공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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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의 결과물, 기업 살인법
현재 노동건강연대는 몇몇 법률가들과 함께 부주의나 태만에 의해 산재사망을 일으킨 사업주와 기업을 동시에 처벌하는 ‘특별법’을 성안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이 법안이 당장 빛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산재사망으로 기업을 형사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이후로 적게는 10년 많게는 20여 년이 흐른 후에야 법안이 사회적 논의의 장에 올랐다. 그리고 사회적 운동이 있는 경우에 그러한 법안이 실제로 국회를 통과하였다. 한국의 경우 노동건강연대가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한 것이 2001년경부터이다. 이제 겨우 6년 정도 경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길게 보고 논리와 형식을 다듬는 작업을 지속할 것이다. 한국에도 이 법안이 필요하다. 아니, ‘산재 왕국’인 한국에 이 법안은 더욱 절실하다.
물론 법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법을 만드는 과정은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성안된 법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낮은 수준이 될 수도 있다. 실제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성안된 법은 법 제정 과정에서 많은 우여 곡절을 겪었고 처음 제안된 법안보다 후퇴된 형태로 법안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법 제정 과정의 후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현장의 압력과 참여가 없으면 법은 있으나마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산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현장을 장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 문제 해결 없는 법 제정은 공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 제정을 주장하며 벌이는 사회 운동이 그러한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역으로 마련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노동 운동도 이러한 법 제정 운동에 대해 고려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