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요즘 전봇대라는 표현이 유행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간사회의에 참석해 새 정부의 우선추진 과제를 보고받으면서 ‘현장 중심’의 정책 마련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탁상행정’의 대표적인 예로 ‘목포 대불공단 다리 위 전봇대’를 언급했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당선인의 성향을 잘 아는 공무원들은 불과 이틀 만에 그 지적받은 전봇대를 뽑았다. 하지만 문제는 대불공단 화물차 운전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불편을 겪는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애초에 당선인이 지적했던 그 전봇대가 뽑혔는지도 불확실하다니, 탁상행정 고친답시고 전시행정이 되살아난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당선인이나 대부분의 언론보도가 사태의 본질을 무시하고 현상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원래 대불공단 입주업체들이 당선인에게 부탁한 것은 좁은 도로에 가득 늘어선 600여 개의 전봇대를 없애달라는 거였고, 이는 10년 전 조성된 산업단지에 4년 전부터 조선업체가 입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불거졌다고 한다. 따라서 화물차로 대형 블록을 이동하려면 전봇대를 뽑기보다는 공단 구조를 전면적으로 리모델링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2,600억 원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거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막대한 예산 마련이고, 전봇대 2개는 피상적인 현상에 불과한 셈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일부 보수언론들은 ‘탈규제’가 시대정신인 양 주문처럼 외우며 당선인의 추진력을 상찬하기에 바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지난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소설가 이외수가, 당시 이명박 후보의 정책을 꼼꼼히 따져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을 ‘성조기를 입은 개’로 표현한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이외수는 ‘국어와 국사를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는 이 후보의 발언을 기를 쓰고 두둔하는 사람들을 소위 ‘대인배’로 비아냥거리며 그런 사진을 올린 바 있다.
일 년 만에 사라진 ‘수능 등급제’
본질과 현상이 뒤바뀐 또 다른 예로, 도입된 지 일 년 만에 사라지게 된 ‘수능 등급제’가 있다. 2004년에 발표된 노무현 정부의 새 대입제도의 핵심은 ‘학생부 위주 선발과 수능 등급제’였다. 즉 학생부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고, 수능 등급은 자격기준으로 활용하라는 거였다. 그리고 전국 단위 학력평가 결과, 내신등급에 수능등급을 적절히 조합하면 변별력은 충분함이 여러 차례 실증된 바 있다. 하지만 상위권 사립대들은 내신 성적에 비해 수능성적이 훨씬 높은 특목고나 강남지역 명문고 출신 학생들을 뽑기 위해 수능영역별 등급을 자격기준이 아닌 변별력 요소로 활용하는 꼼수를 부렸다. 이 과정에서 등급의 변별력이 점수제보다 떨어지자, 수능등급제가 마치 새 대입제도 문제의 본질인 양 비치게 된 것이다.
하긴 노무현 정부가 수능등급을 자격기준으로 활용하라고 권장만 하고서도, 입시경쟁 과열이 상당 부분 완화되고 고교 교육이 정상화될 것으로 지나치게 낙관한 것이 애초부터 문제였다. 왜냐하면 대학서열화를 바탕으로 한 학벌중심 사회가 대학입시문제의 본질인데, 이는 그대로 두고 겉에 드러난 입시제도만 느슨하게 손질한 건 결국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신을 중시하도록 강제하는 것 또한 입시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임기응변적 대증요법은 질병의 내성만 기르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곪아터진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땜질방식은 이제 임계점에 이르렀다. 눈에 보이는 전봇대 몇 개 뽑는 게 아니라 공단 전체를 리모델링해야 하는 것처럼, 입시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인 학벌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그동안 노무현 정부는 사회적 환경이 전혀 다른 미국식 입시제도를 도입하려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심각한 학력저하문제로 학력신장법을 제정하고, 새로운 교육모델로 핀란드 교육방식을 본받고자 애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실패한 미국식 교육정책을 뒤쫓는 것도 모자라, 이명박 정부는 교육시장화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영국식이나 일본식 모델을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니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그래도 노무현 정부처럼 허울뿐인 공교육 정상화를 앞세우기보다는 효율과 경쟁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니, 교육문제의 본질인 학벌중심 사회의 폐해가 극대화되어 그 해결과정이 빨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을 감내한 끝에 치유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그 해결책을 찾는 게 현명할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의 사례에서 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프랑스도 68혁명 직전 소수의 귀족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엘리트 교육으로 대학서열화 병폐가 견고하던 사회였다. 그러자 극심한 입시경쟁의 그 병폐에 시달리던 고등학생들이 68혁명의 중심이 되어 마침내 ‘대학의 국립화와 대학평준화’를 이루어내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듯이 대학의 이름을 없애고 고유번호를 쓰는 식의 대학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중등교육 또한 정상화되었다. 사실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대학까지 무상교육이고 또 치열한 경쟁 중심의 입시제도가 없는데도 높은 국가경쟁력을 유지하는 걸 보면, 이젠 정말 유럽식 교육개혁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죽음으로 질주하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얼마 전 국제학술대회 강연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은 자본주의 세계체제 분석의 권위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자유주의와 규제 철폐는 이제 끝자락에 있으며 세계는 보호주의와 재 규제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심화된 양극화도 신자유주의 종말을 전망하는 근거 중 하나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행로에 대해 매우 비관적 견해를 보였다. 그런데 이제 출범할 이명박 정부는 모든 부문에서 묻지마 식으로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그 규제가 공공의 복지를 위한 것인지는 따져보지도 않고, 끝자락에 선 신자유주의와 탈규제를 향해,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향해, 죽음의 역주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지 정말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