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1.
IMF 이후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지금 일자리가 없는 노동자들에게는 일자리가 없는 이 상태가 앞으로 1년이든 10년이든 계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보다 더 큰 협박이 없다. 이 협박은 길거리로 내려앉아 굶어죽어야 한다는 소리와 다름아니기 때문이고, 그것이 단순히 협박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에 이미 많은 노동자들은 주눅든다. 일할 노동력과 의지가 있는 그의 고용에 대해 이 사회의 누구도 책임을 나누지 않는다. 오로지 그의 무능함으로 돌려질 뿐이다. 결국 최소한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동조건이나 고용안정이 확보된 직장이 아니라, 다만 몇 푼이든 월급을 준다는 곳이면 일단 고용되길 희망한다. 비정규직이고 뭐고 취직만 하면 감지덕지인거다.
이렇게 해서 고용된 지금 비정규직인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다른 임금과 차별에 저항하고 분노하기 보다는,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위협에 노출되어 이 일자리라도 잃지 않고 오래 고용되길 바란다. 차별과 억압을 모른다기보다는 실업자가 될 가능성의 협박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두렵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수준의 임금이나 심각한 노동강도를 참고 견디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이 언제든 짤릴 수 있는 신분이라는 것을 계약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어쨌든 회사의 눈 밖에 나지 않고 오래 고용되어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심지어 대우자동차 같은 큰 회사도 하루아침에 수천 명을 정리해고 해서 버리는 것을 눈뜨고 본 노동자들이다. 노동조합에 사전통보? 그런 것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을 보고 노동조합도 정리해고 사실을 알았다. 자본이 참 뻔뻔하다고 말하고 돌아설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니 문제다.
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그 결과 일거리가 있을 때 특근 한 대가리라도 더해서 더 많이 벌어놓는 게 최선일 뿐이라고 선택한다. 노동조합을 강화하고 투쟁을 잘 하는 것이 우리 일자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판단은 조합원들을 개별화, 파편화시키고 오로지 지금, 있을 때 더 많이 일해 놓는 것이 좋고, 나서지 않는 게 좋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고, 더욱이.... 바로 옆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질리게 한다. 나보다 더 많이 일하면서 더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를 날마다 확인하는 것은 그 자체로 협박이다. 나 또한 언제든 회사가 내몰면 비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외면하면서 그저 일하고 또 일할 뿐이다.
노동시간 단축? 그게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가? 할 수 있을 때 잔업이고 특근이고 더 해야 한다. 과로사로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일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노동을 유연화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자본의 논리는 뼈빠지게 일하면서도 ‘언제든 일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협박을 현실화하며 통제하는 칼날이다. 우리는 그 칼날의 위협에 노출되어 떨며 사람이길 포기하고 노동한다.
2.
그리하여, 바야흐로 현대자동차는 지금 물량전쟁중이다. 울산에 5개, 전주, 아산에 각각 생산 공장이 있는데, 각 공장간 물량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얽혀 전쟁이라고 표현될 만큼 예민하고 시급한 현안문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공장에서 생산하는 차가 단종이 되면 후속차가 결정될 때까지 1공장 노동자들은 잔업과 특근이 없어진다. 그런데 2공장에서는 지금 한창 잘 나가는 차를 생산하고 있어서 잔업은 물론이고 휴일마다 특근을 한다. 이런 경우 2공장 노동자들이 시간외 일한 시간만큼 임금차가 많이 나고 1공장의 이런 상태가 1년을 넘기면 1공장의 모든 노동자들은 물량을 더 확보하라고 아우성이다. 실은 임금수준을 높이라는 말이다.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으면 임금이 작다는 말이다. 기본급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높이라고 요구해야 하는 문제이지만 오히려 빨리 물량을 확보하라고 요구할 뿐이다. 이쯤 되면 회사는 2공장 노동자들에게 물량이 많으니까 1공장과 나누어 생산하자고 말한다. 2공장 노동자들은 지금, 할 수 있는 특근한대가리를 나누어주고 싶지 않다.
이런 경우 2공장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자기들도 언제 물량이 없을지 모르니 그때를 대비해서 대승적 관점에서 나누어줘야 할까?
이런 문제가 하나가 아니라 각각의 공장이 서로서로 얽혀서 전쟁이다.
물량이 없는 공장의 대의원들은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관계없는 사안은 말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심한 경우 물량이 없어서 잔업 특근을 못하는 공장에서 대의원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관해 말하면 어떤 조합원이 이렇게 비웃는다.
“니 똥구녕도 못 닦는 주제에 오지랖도 넓다. 우리 문제나 해결하고 말해라.”
3.
도대체 물량에 대해서 노동자가 왜 고민해야 할까? 물량이 있고 없고 그게 노동자랑 무슨 상관인가? 일단 고용했으면 노동자가 일을 하든 안하든 주기로 한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그것은 자본이 그렇게도 침해받기 싫어하는 경영의 고유권한에 관한 문제다. 해외로 물량 내보내면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나? 마지막 단계에서 설명만 해줄 뿐이다. 동의를 받는다 해도 형식적이다. 1공장 물량을 2공장으로 옮기든 3공장으로 옮기든, 아산공장으로 옮기든 그건 회사가 고민할 거고, 노동자들은 그런 이동으로 인해 노동강도가 강해지지 않도록 합의해야 하고 임금이 줄어들지 않도록 투쟁하면 된다. 기본급만으로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본급의 수준을 높이라고 요구해야 한다. 물량만 옮겨야지 전환배치를 동의해서도 안 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물량에 대해 노동조합이 고민하는 순간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데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 각 생산공장에서는 물량과 관련해 사전에 합의했던 사항을 일방적으로 회사가 어기면서 현장투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물량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공장에서 벌어지는 투쟁들을 하나로 모아 회사와 싸움을 하는 것이 맞다.
회사가 골머리를 썪어야 할 물량문제를 노동조합이 고민하는 순간, 물량을 통한 사측의 장난질은 너무 많은 경우의 수로 열린다. 투쟁하는 공장은 다음 물량을 안주고 말 잘 듣는 공장으로 돌려 버리는 치사한 짓을 회사가 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량을 더 많이 따오겠다고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회사 비위맞추며 술이나 먹으러 다니는 대의원이 장땡이 될 수도 있다. 그걸 어떻게 일일이 다 대응하겠는가?
사실 이런 의견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기회가 있으면 말하기도 하는데, 정규직들도 다 동의한다. 그런데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정규직 노동자들을 조합주의나 개량주의라고 손가락질하고 끝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지금 시기 한국사회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고용불안이라는 협박은 한 사업장의 몇몇 활동가가 돌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서 너무 많이 유연해진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연한 노동으로 인해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현제의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전국적인 투쟁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기획되고 조직되어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사업장 안의 문제로 제한해서 본다면 이런 문제들에 대응하는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공동의 요구로 조직되고 투쟁할 수 있어야, 비정규직 철폐는 멀다해도, 1사 1노조 조직이라도 될 거다.
다만 지금은 구경밖에 못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그늘에서 정규직 동지들의 힘이 아니라면 공장에 출입도 못하는 처지에 배놔라 감놔라 하기도 거시기 할 뿐 아니라, 묘하게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문제를 발언할 때만 주체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그러게, “니 똥구녕도 못 닦는 주제에 오지랖 넓다”는 말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