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갑작스레 엄마가 수술을 받게 되셔서 2주간 병원생활을 했다. 자식새끼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들이 이해가 간다. 큰 딸은 애가 둘에 집이 멀어 못 왔고, 막내딸은 신랑 밥도 해줘야 하고 시댁에도 다녀와야 하고 애들이 빽빽 울어싸서 병원에 와있기는 힘들단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놈은 여자병실에 어찌 와있냐고 승질을 부린다. 할 수 없다 초딩아들 하나뿐인 내가 낙점이다.
갑자기 커지는 엄마의 빈자리.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우리 아들은 작은 아버지 댁에 보내져야 했다. 어쩌랴 다른 놈들은 아직 어려서 지네 엄마랑 떨어지면 죽는 줄 아는 것을. 옷가지와 책을 넣은 가방을 들고 작은집에 가는 내내 울 아들 내 옆에 착 붙어 안 떨어진다. 하긴 다른 애들보다는 커다래도 아직은 어리광 부리는 열 살 꼬마인 것을. 하영이를 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입원첫날. 응급실에서 보냈다. 밤 12시 2인실로 가란다. 다음날 오후 4인실로 이동, 그 다음날 6인실로 옮겨졌다. 대학병원 시스템 죽여준다. 젠장. 돈 없으면 아프지도 못하겠다. 무슨 병원비가 호텔비랑 맞먹는지. 특실은 하루에 20만원이란다. 헐~
멀쩡한 사람들도 병원에 오면 아프더라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하루 종일 병실에만 있으려니 없던 병도 생기는 것 같다. 수술절차도 뭐가 그리 까다로운지 암튼 입원하고 9일째 되는 날 겨우 수술을 했다.
그 동안에도 또 한 번 병실을 옮겨야 했다. 성격 좋으신 울 엄마 하루 만에 병실사람들과 친해지고 다음날엔 보호자까지 가족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난 이모가 수도 없이 늘어나고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잡다한 병실 심부름은 막내인 내가 맡아 하게 되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졌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새삼 뼈저리게 느껴질 무렵(그래봐야 일주일, 엄마가 수술한 다음날이다), 조합원 아버님이 같은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는 얘기를 듣고 연락을 해보니 바로 위층에 입원에 계셨단다. 오랜만에 지회 얘기도 하고 위로도 할 겸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조합원의 아버님은 병세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올라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비도 걱정이고 간병해줄 사람이 없어 회사에도 못 나간다던 그 동지의 말에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어찌나 답답하고 미안하던지. 이삼일이면 일반병실로 내려올 거라던 조합원의 아버님은 열흘이 넘는 지금까지도 중환자실에 계신다고 한다. 그 조합원은 할 수 없이 다시 회사로 출근을 시작했고, 그 동지가 지키고 있던 중환자보호자 대기실의 의자는 비어있겠지?
언제쯤 병원비 걱정 없이 아프면 병원가고 치료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2주간의 병원생활을 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기본!
그리고 동지의 따뜻한 동지애에 가슴이 뭉클했다. 시시때때로 전화해주던 우리 조합원들. 정말 고마웠고, 현숙 언니랑 수정 언니.. 와줘서 넘넘 고마워요~ 특히 수정언니 어머님께서는 김밥까지 손수 싸주셔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어머님께는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하는데 게으른 문숙이 아직도 이러고 있다.
퇴원해서 집에 오니 할 일은 더 많다. 그래도 조합원들에게 인사는 해야겠기에 목요일 아침 출근을 했다. 오랜만에 정문에서 광진 해고자들과 출퇴근 선전전을 함께하고 조합원들과 아침식사도 같이했다. 현장에 들어가 조합원들과 인사도 하고 오랜만에 신나게 돌아다녔다. 간간히 집에 전화해 엄마 상태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중식선전전 후 광진 동지들이 나간다기에 그 차를 타고 함께 나와 시장에 갔다. 지금까진 엄마가 우릴 위해 헌신해 왔으니 이제 우리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우선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기로 맘먹은 것이다.
하지만 맘먹은 것처럼 쉽지가 않다. 해도 해도 끝없는 집안일. 나는 아니 우리 4남매는 지금까지 엄마를 슈퍼우먼쯤으로 생각해 온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행히 우리엄마는 수술경과가 좋아 당분간만 무리하지 않고 조심하면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병원에 있는 동안 보았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병든 몸만으로도 힘들고 지칠 텐데 하루하루 산더미처럼 늘어나는 병원비의 무게를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권리를 얘기했었다. 하지만 앞으론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겠다. 일상생활에서도 돈 걱정 하지 않고 아프면 병원 가서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