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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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나아가기 위한, 2007년 여름의 개인적 [반추]

블로그 놀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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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5 09시02분 노현승

우리 사회는 변화가 많다고 합니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사회를 들었다놓았다하는 일들. 몇 번씩 우리 마음을 송두리채 훑고 지나갑니다. 이런 변화만큼, 그 속도에 취해, 어마어마한 일들이 우리들 가슴을 멍하게 만드는 일들이 많아, 우리는 애써 지난 기억들을 지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우지 않으면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할 듯. 잊어버리지 않으면 지금을 살아내지 못할 듯 말입니다.

무엇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하다가 불과 6개월 전으로 돌아간 글이 보였습니다. 이미 같은 호흡으로 살아내는 저도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 하는 뜨끔함에 놀랍니다. 무엇인가 될 것처럼 하는 분위기도 그렇지만, 기억에서 오로지 뱉어내는 일도 함께 문제를 풀어가기엔 달갑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고스란히 갖고 있는 인식, 문제, 한계에 대해 되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한미에프티에이도, 극과 극을 넘나드는 대중도, 그 간극에서 오로지 하나만 취하려고 하는 우리도... ...


1.
1.0 <디워>를 넣지 않았다. 영화를 자주 많이 보는 아이들(초1, 초5, 중2)의 평을 듣더라도(논란이 있기에 앞서) 별표를 몇 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감되지 않은 관전평을 믿는다. 그 점에 있어서는 <트랜스포머>가 점수를 조금 더 받았다. 하필이면 똑같은 과의 <오래된 정원>과 <화려한 휴가>를 다르게 넣는다.

1.1 <트랜스포머>는 선입견이 있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컨택트><쥬라기공원>, 대중의 평균적인 시선, 상상력을 넘어서는 다른 스케일들이 있어왔다. 헐리우드 영화들이 가져오는 경계를 넘는 것이 있어왔다. 선전을 하도 하기에 이번에도 그런 줄로 알았다. 인터넷, 컴퓨터 기술, 그리고 상상력을 받쳐주는 도구의 발전에 이내 우리들이 적응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웅장함이라든가 틀을 넘어서는 것이 이젠 또 다른 버전의 입체영화이지 않고서는 힘들지 않을까? 기대를 넘어서는 기술의 발전에 이미 적응해버렸고, 내용에 있어서도 이미 고갈되지 않았나 싶다. 돈을 아무리 퍼부어도 이젠 나름 한계가 보이지 않나싶다. 아이들의 감수성에 맞추어 돈만 번다는 컨셉이라면 성공한 것이겠지만. 집중의 가공스런 효과는 멈칫하지 않을까 싶다. 냄새도 나고, 공간을 압박해오는 입체영화관이라면 좀더 벌어먹을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힘들지 않을까? 영화에 관심없는 작자의 혼자 생각이다.

1.2 <오래된 정원>과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장면은 유사하다. 한 화폭에 담긴 <청춘의 할아버지, 딸, 그리고 주인공 둘>과 <결혼식 장면>.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의도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여기에 머물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안타깝게도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87년 이후 20년, 할아버지할머니나 엄마아빠나 아들딸이나 잘날 것도 못날 것도 없이 그냥 당대를 살아가는 지금, 오래되지 않은 지금의 정원을 나타내고 싶었을 뿐이다. <화려한 휴가> 역시 감독의 최소한의 작가적 메시지-죽은 자는 웃지만 산자는 웃지 않는-와 달리, 눈물을 흘리며 극장을 나오는 관객에게 열에 아홉에게 “이번 대선에 누굴 찍겠습니까?”라고 하면, 안타깝게도 현실은 열에 아홉은, *나라당이다.

1.3 그렇게 전유하는 현실과, 감독의 의도, 가져가는 시선은 어긋나있고, 갈라져 있다. 사분오열된 마음은 그렇게 위로받고, 한 번에 묶어서 사유하기를 거부한다. 아니 그 길이 이어져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이야기해준 적도 없다. 그리고 어떠할 지도 선문답처럼 어렵기만 하다. <화려한 휴가>를 보았으니 달라질 것이다. ?!

0.9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가 관심사이다. 사람들과 만남, 시공간의 축에서 드러나는 모습들이 좀더 지금의 나-너-우리를 알게 만든다. 그 점이 이 무더운 여름에 감사할 일 가운데 하나다. 여전히 20년을 추억으로만 눈물지우며, 삶을 보상받고 싶어하는 부류 - 그 눈물은 대부분 현실의 비참한 처지, 감독의 의도가 중요하지 않다.

잊혀진 과거가 현실로, 힘들었던 삶이, 지금 다른 나가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것이 겹쳐 감정을 요동치게 만든다. 하지만 그때 태어난 아이들, 청춘들의 시선은 어디있는가? 과거와 지금 달라지지 않은 것은 어디인가? 어디가 더 심해진 것일까? 그들과 현실을 바꾸어나갈 부분은 어디인가? 왜 지금이 더 힘든가? 생각과 경험은 겹쳐지지 않는다. <오래된 정원>은 사람들이 많이 보지 않았다. 그리고 감독의 시선으로도 나눠진 것이 없다. 더 더구나 지금과 섞여 감독의 시선에 출발하여 앞으로를 한 번도 나눠진 적이 없다. 그렇게 우리의 시선에서 너무나 빨리 사라져버렸다.

<화려한 휴가>, 아무 대책없는 민주신당그룹은 국민들이 많이 보아 뭔가 의식에 변화를 일으키기를 바라는 것 같다. 좀더 사회에 대한 인식으로, 아픔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길 희망하는 것 같다. 진보성을 가지고 있거나, 그러한 사람들의 심성도 이쪽으로 기울었다. 뭔가 선거국면에 반응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어떨까~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울음의 의미가 무엇일까? <디워>와 <화려한 휴가>를 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일까? 희망사항과 현실의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2.
그리고 무더운 이 여름, 세분의 샘을 만났다. 더위만큼 갈증이 심했는데, <정보사회>,<파시즘과 대중심리>,<교육>에 대한 명쾌한 맥락의 설명은 책자나, 논문들로 범접할 수 없는 다른 것이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줄기와 뿌리와 곁가지를 선명하게 분류해주는 마력 같은 것들이다. 인터넷망 극시대에 , 인터넷이, 매스미디어가 속류자본주의에 의해 추잡하게 커 가고 있는지? 불과 20년 내로 달라지는 접근 모드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강의를 접하지 않고서는, 계속하여 길 잃은 아이처럼 헤매일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빌레흠 라이히를 접하게 된 것. 새벽이 가깝도록 윤샘님과 이야기를 나눈 것, 윤샘의 모호한 답변 역시 행운인 것 같다. 물론 다리 놓은 대표님에게는 더욱 큰 감사를 드려야겠다. 내심 지금도 그러하지만, 라이히가 묻는 것이, 질문하는 것이, 늘 탐색하려는 것이 덩어리가 크다. 숲과나무를 적절히 안배하며, 안개가 드러나듯, 선명해지는 놀랄 만한 그의 능력은 번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한 분의 선생님. 의대와 교대가 지형을 바꿔놓은 서열화 된 대학의 현실. 노동운동을 하다가 뒤늦은 공부를 한 경제학-교육정책 교수님을 뵈었다. 신제도주의학파 입장에서, 아니 자본주의 틀을 고스란히 인정하더라도, 엘리트를 키운다는 입장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자본의 천박함 만큼이나 교육의 천박함이 드러나 보였다. 시민성과 사회성을 키우지 못해 똑똑하지만 팀플레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경쟁력 있는 아이, 혼자는 똑똑하지만, 팀은 똑똑하지 못할 아이, 자기 전공은 만만하지만, 역사-인문은 전무한 아이, 공부이외에 팀플레이를 할, 만들지도, 축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 그리고 아무런 교육 재생산을 고민하지 않고 늙어만 가는 힘, 권력 많은 노조들

이렇게 <사회의 변화>와 <대중>의 시선으로, <교육>에 대한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일도 무더운 여름을 난 보람 가운데 굵은 하나이다.

덧붙임

노현승 님은 대전시민아카데미 운영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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