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 봄의 새로운 시작
움츠렸던 겨울의 찬 기운을 몰아내고, 새 봄의 따스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그저 그런 관성으로 이어져 온 겨울 동안의 일상의 따분함이 바야흐로 새 기운과 함께 역동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새로운 약동을 느끼게 해주는 계절의 순환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자잘한 정치적 이슈들은 단지 부르주아 직업정치인들 간에 이전투구로 벌어질 뿐이고, 서민들은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위 경제 살리기 정책들은 단지 기업 살리기, 기업 투자 활성화의 방향으로만 집중될 뿐, 복지와 빈곤 퇴치라는 서민을 위한 정책은 간 데 없다.
문화 영역에서도 신자유주의는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갇혀 있는 대다수 민중들에게 문화란 단지 배부른 자들의 향유일 따름이고, 노동자 대중들에게도 이렇다 할 노동자 문화란 실종되어 있으며, 그저 술 마시는 것, 노래방 가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대다수 민중들의 삶을 ‘소외된 삶’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2. 정세를 왜 읽어야 하는가?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정치는 계급사회가 형성된 이래, 인간을 지배해 왔고, 인간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존재해 왔다. 동양에서도 공자와 맹자 이래 많은 사상가들이 올바른 정치에 관해 논해 왔다.
인간 존재는 실존적 존재이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고, 각기 사회적 역할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다는 면에서 우리는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 즉 정치와 경제와 사회 현실에 대해 관심과 의미를 지향하게 된다.
대중들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회를 변혁하려는 노동운동가와 진보활동가에게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충분한 관심과 그 의미 해석을 위한 부단한 노력은 가히 필수적인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객관적인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주체적인 방향 정립과 행동의 결정은 올바르게 설정될 수 없다. 또 나의 행동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한 판단은 곧 사회적 실천의 검증을 통해서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정세에 대한 판단은 객관 인식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주체적 실천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때 그 때의 사회 변화와 객관적인 정국의 동향은 곧 나의 주체적 실천 한 걸음 한 걸음에 직접 맞닿아 연결되어져 있는 것이다.
3. 정세 분석의 방법에 대하여
그런데 정세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다. 현실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고, 진정한 의미는 숨겨져 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숨겨진 본질적 의미를 밝혀내고, 복잡한 현상들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무기, 과학적 방법(론)이 필요하게 된다. 이 과학적 무기를 나는 변증법적 방법과 유물론적=계급분석적 방법이라고 본다.
그것은 철학적이고도 경제학적 혹은 정치-경제학적인 지식과 적용능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일 것이다. 이러한 일은 물론 난해한 작업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필자는 정세에 대한 인식과 분석이 최대한 쉽고 흥미롭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다. 무수한 분석을 거쳐 최종적으로 종합과 결론에 이르면 사태는 단순해지게 마련이며, 거기에 이른 본질은 사실은 단순한 진실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세 판단에 있어 완전한 객관성이라는 게 존재가능할까? 과연 과학적 분석은 엄밀한 객관성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어차피 정세 판단은 주어진 시기에 일정한 ‘당파성’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고, 주관적 해석으로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람시의 말대로 ‘동의’하는 사람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뉠 수밖에 없으리라. 즉 부르주아사회를 비판하면 자본가 쪽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테고, 또 노동사회나 진보진영 내에서도 나의 정치적 입장 표명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또 자신의 정파적 입장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 활동가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칼럼에서 전개되는 입장과 판단은 그것이 얼마나 최대한 객관성과 과학성을 지향한다 할지라도, 단지 필자 나름의 주관의 표명에 그치는 것이며, 또 단지 하나의 문제의식의 표명에 지나지 않는 것일 터이다. 이러한 내용에 대한 독자들의 판단과 평가를 통해 우리는 상호소통을 이룰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 운동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정치적 토론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 이 글의 방법론=변증법적 방법과 역사유물론적 방법
본인은 변증법과 그 철학을 거의 수십 년간 공부를 해 왔고, 지금도 헤겔 변증법과 맑스의 유물론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본인은 스스로 ‘변증법주의자’로 생각하며, 그리고 또한 사회분석에서 역사유물론적 관점, 즉 계급적 관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철학은 현실에 다가가야 하고, 보편은 특수 상황에, 개별적 현상에 다가가야 한다고 믿는다. 정신적 무기인 철학은―맑스가 <헤겔법철학비판> 서문에 썼듯이― 물질적 무기, 즉 노동계급에게 실질적인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노동계급의 손에 무기로서 쥐어질 때 유의미한 것이다. 관념적 유희는 부르주아적이다.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은 현실적-비판적인 이론 및 실천의 작업일 것이다.
이렇듯 변혁운동의 물질적 무기인 노동계급주체는 정신적 무기까지 갖추어야 한다. 즉 정신적 재무장은 사회변혁운동에 필수적이다. 사회비판이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해방하고 민중을 해방하고 전체 사회를 변혁한다는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지금의 시점에서 선진노동활동가들은 학습과 재교육, 변혁의식화를 강하게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글이 주어진 현상들을 깊이 재음미하는 데 유효한 철학적 토대에 기반하여 현실운동에 유익한 사회비판 의식화, 사회변혁 의식화라는 학습적 효과를 독자들이 얻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본인 스스로도 열심히 읽고 열심히 집필하도록 하겠지만, 독자 제현도 꾸준히 이 글들을 지속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정리하는 기회를 가지시기를 바란다.//0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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