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2006년 노동계 추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850만명에 육박한다. 한 노동자에 딸린 가족을 2명만 잡아도 줄잡아 2천5백만명의 국민이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자신의 삶을 의지하고 있다. 전체 국민 절반 이상의 운명이 비정규 노동에 걸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우리 사회는 너도 나도 비정규 노동이 문제라고 말들은 하고 있다. 정부 여당도 야당도, 신문도 TV도 마치 '장애인'이나 '여성' 문제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ㆍ약자의 문제에 적극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고 싶어한다. 그만큼 사회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는걸 반증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사실 차분히 파헤쳐놓고 보면, 이들이 비정규 노동 문제를 다루는 것은 기껏해야 동정적인 시각에서 머물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하는데 초점을 맞출 뿐, 비정규 노동 문제가 우리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우리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 배경은 무엇이고 그 영향은 어떠하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떠한지 좀 더 깊은 얘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러한 얘기를 하고 싶다.
비정규 노동이란?
IMF 외환 위기 전, 그러니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노동자'는 곧 정규직 노동자였다. 따로 '정규직 노동자'라고 부를 필요가 없었단 얘기다. 그러나 이제 오히려 정규직 노동자가 더 귀한 꼴이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의 수를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정이환 교수 등이 지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복지: 비정규 근로자의 사회적 보호에 관한 국제비교연구」(2003)에 의하면, 정규 노동과 비정규 노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대체로 '정규 노동'이란, 20세기의 지배적인 노동형태인 full-time의 상용으로 직접 고용된 노동력을 가리키며, 이들은 고용이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과 교육훈련, 그리고 기업 복지를 제공 받고 있는 노동형태다.
반면 '비정규 노동'이란, 임시 노동자, 계약직 노동자, 계절노동자, 파견노동자, 호출노동자, 프리랜서 등 전통적 정규 노동과 다른 고용형태로 근무하면서 고용안정성이나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자 집단이라고 일반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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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로 비정규직 철폐가 대두되었다. |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비정규 노동
비정규 노동은 한 나라의 정치경제적 배경이나 노동-자본간 힘관계 등 노동과정이나 노동시장의 여건에 따라, 그리고 법률적ㆍ관행적 행태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있고, 그만큼이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펴낸 「비정규직 노동자의 유형과 실태」에 따르면, 비정규 노동을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첫째는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다. 일정한 기간을 정해서 고용되는 '기간제 노동자', 소정의 노동시간에 비해 짧게(통계상으로는 주당 35시간 이하) 일하는 노동자인 '시간제 노동자(파트타임)'가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일용직, 임시직, 촉탁직, 계약직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들은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반복 체결하는 식으로 사실상 몇 년간 상시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는 계약상 고용과 실제 사용이 다른 '간접고용 노동자'다. '파견 노동자'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은 파견 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지만 실제로 일할 때는 사용 업체의 지휘를 받는다. '용역'이나 '도급'의 경우 조금 더 복잡하다. 사용 업체의 일을 용역 노동자가 수행하는 것은 파견과 마찬가지인데, 그 사이에 용역 업체가 개입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수 있다. 즉, 파견의 경우 사용 업체가 파견 노동자들에게 직접 일을 시킨다면, 용역이나 도급의 경우 사용 업체의 의뢰를 받은 용역 업체가 용역 노동자를 지휘감독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용 업체가 직접 일을 시키면서도 용역이나 도급, 업무위탁, 사내 하청과 같은 이름을 붙인 사실상 불법적인 파견이 널리 행해지고 있다.
세째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일을 시키는 '특수고용 노동자'다.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레미콘운송기사, A/S기사, 애니메이터, 텔레마케터 등과 같이 업무위탁 계약이나 도급 계약의 형태를 띄는게 일반적이지만, 방송사 작가, 리포터와 같이 프리랜서 형태의 계약도 있고, 골프장 경기보조원처럼 아예 사용자와 일체의 계약 없이 알선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1990년대 초반, 이른바 '신경영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제조업에서 한때 위세를 떨쳤던 '소사장제'도 역시 비정규화한 노동 형태에 다름 아니다.
무권리 상태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런 저런 다양한 형태로 늘어나기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제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이시균 연구원에 의하면, 2004년 현재 비정규직 규모는 전체 임금노동자(1,458만명)의 55.7%에 해당하는 812만명으로 나타난 것이다. 비정규직이 2003년에 783만명이었던 것에 비춰보면, 비정규직의 규모가 점점 더 늘어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회보험제도 가입률이나 노조 조직률은 지극히 낮아서 별다른 보호장치 없이 자본의 횡포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총이 펴낸 『비정규노동자 조직화 방안 연구』(2006.3.)를 보면, 2004년 8월 현재 비정규직 조직률은 3.07%에 불과하였고, 전체 조합원(181만명) 중 비정규직의 비중은 13.7%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109만원으로 정규직(211만원)의 51.7% 수준에 머물러 있다. OECD가 정한 기준에 비춰보면 70%나 되는 절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저임금' 상태에 놓여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위기인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의 구조화', 그 핵심에는 '비정규 노동'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불안한 고용형태에 의해 늘상 해고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본측은 이를 빌미로 노동 환경을 악화시키면서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강요한다. 처음에 2년 이상이던 계약기간은 갈수록 짧아지거나 교묘해져 23개월짜리 계약, 11개월, 최근엔 6개월짜리 계약직의 형태도 생겨나고 있다. 짧은 계약기간이 노동자의 심리를 압박하고 갖가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 제대로 이의 제기도 하지 못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고용 불안으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삶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 문제는 사회진보-퇴보의 잣대
이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의 절박함은 분명 심각한 지경이지만, 그렇다고 비정규 노동 문제를 그 대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과 삶에만 초점 맞추어 시혜적으로 바라보는데서 그쳐서는 곤란하다.
비정규 노동 문제는 이미 우리 사회의 동맥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 동맥이 막히면 곧바로 생명이 위태로워 진다는 점에서, 이제 이 사회의 중심적인 문제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경제적 빈곤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 공공성과 복지의 성패 여부와도 직결되어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미 이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받는다. 나아가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더 이상 발전하느냐 퇴보하느냐 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 하나를 이 연재를 통해 파헤쳐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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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의 확산과 차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적인 투쟁으로 이끌었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출범 장면. |
기획연재에서 다룰 내용들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는 2006년에 가장 역점을 둘 주제를 '비정규 노동'으로 하자는데 아무런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그만큼 노동운동의 핵심 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노동넷의 방향에 따라 부설 노동넷방송국에서는 2006년의 주요 기획취재의 주제로 "비정규노동 실태 2006 - 불안정 노동의 시대"를 다루기로 했다.
또한 우리의 기획취재 기안은 한국언론재단의 '기획취재 지원 프로젝트'에 채택되어 부분적인 재정 후원을 받으면서 진행될 예정이다.
올 6월부터 연재하기 시작하는 이번 기획취재는 오는 11월까지 격주에 1회씩 모두 12회동안 이어나갈 계획이다. 각 회차별 주제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1회] 연재를 시작하며 - 불안정 노동의 시대를 넘어 평등 세상을 향해 (6월 19일)
→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의 구조화, 그 핵심에는 '비정규 노동'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비정규노동 기획연재를 하면서 갖는 우리의 문제의식과 전체 기획연재에서 다룰 내용에 관해서 개괄적으로 소개한다.
[2회] 비정규노동 확산의 배경 - 자본의 위기, 노동의 위기 (7월 3일)
→ IMF 이후 급격히 증가해 노동계 집계로 850만, 정부 통계로도 550만이 넘어간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노동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게 된 배경과 비정규노동 문제의 원인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3회]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기 (7월 18일)
→ 정규직 노동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한 사례,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넘나드는 사례, 청년실업 상태에서 비정규 노동시장으로 내몰리는 사례 등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대표적인 사례를 통해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경제구조를 해부해 본다.
[4회]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의 사각지대 (7월 31일)
→ 비정규직 노동자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노동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주휴/연차휴가, 최저임금권, 건강하게 노동할 권리, 나아가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교육받을 권리 등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5회] 정규직과 비정규직 - 같은 일, 다른 노동자 (8월 14일)
→ 비정규직이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 등을 취재한다. 나아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담론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고, 구체적인 대안에 접근해보는 시도를 한다.
[6회] 여성과 비정규노동 - 여성이니까 당연하다? (8월 28일)
→ 한국에서 비정규직 여성은 육아와 가정, 노동이라는 이중, 삼중의 부담 속에서 차별까지 경험한다.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비정규노동이 이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하는 문제도 파고들어 본다.
[7회] [가상 시나리오]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기 (9월 11일)
→ 한 시민이 살아가면서 일상적인 삶과 문화, 사회관계에서 비정규노동과 얼마나 뗄 수 없는 관계인지를 한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의 일상을 통해 가상적으로 재구성해 본다. 이를 통해 비정규노동이 이 사회에 전일화된 현상임을 드러내 본다.
[8회] [르포-밀착 취재]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주일 / 영상물 병행 (9월 25일)
→ 7회가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상을 가상적으로 재구성했다면, 8회는 이러한 가상 시나리오가 단순한 ‘가상’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있는지를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과 생활을 일주일간 밀착 동행취재하면서 생생하게 담아낸다.
[9회] 비정규노동과 노동강도, 노동안전 (10월 9일)
→ 낮은 임금과 복지 등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릴 뿐만 아니라, 그나마 해고되지 않기 위해 동료간 경쟁이 치열해지기도 한다. 갈수록 극한적인 노동강도로 내몰리고 이로 인해 노동안전은 위협받는다. 전문 연구를 바탕으로 그 실태를 파헤쳐 본다.
[10회] 비정규노동과 경제 -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야 경제가 산다? (10월 23일)
→ 정부와 사용자들은 비정규직화가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또 노동시장 유연화가 투자를 촉진시켜 고용창출을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고용유연화를 통한 기업(경제)의 성장이 과연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에 그리고 국가 경제의 발전에 긍정적인지 분석해 본다.
[11회] 비정규노동 문제의 올바른 해결방안 (11월 6일)
→ 심각성이 더해가는 비정규노동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안을 종합적으로 모색해 본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가 미미한 현실에서 그 조직화를 위한 보다 효과적인 방안에 대해 짚어보고, 또한 사회적인 의제화를 촉진하기 위한 캠페인 등 다양한 실천 대안들을 제시해 본다.
[12회] [특별좌담] 한국 사회와 비정규노동 / 인터넷 영상생중계 (11월 20일)
→ 학계,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등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대담하는 좌담회의 자리를 마련해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듣는다. 이 대담은 인터넷으로도 생중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