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이 게시판을 통해 전북 참소리, 미디어충청, 민중언론 참세상, 울산노동뉴스의 기사와 관련된 토론을 직접 하실 수 있습니다.

 
[수필철학컬럼] 수필로 쓰자
변혁의 무기: 말과 글
문국진
1. 펜은 칼보다 강하다

언론, 신문, 잡지 그리고 책은 인류의 큰 유산이다. 옛날에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서예(書藝)를 했다. 서예의 아름다움, 우리나라 어른들 집에 가보면 흔히 병풍과 동양화, 그리고 추사 김정희와 같은 멋진 서예 작품이 걸려 있는 것을 흔히 본다. 레닌도 한 평생 글을 썼다. 트로츠키도 망명지에서 글을 많이 썼다. 그람시는 20년간 옥중에서 철학, 문화이론, 정치학 그리고 편지를 써서 후대에 남겼다.

칼은 어디에 쓰나? 과일을 먹을 때, 주방용 칼, 등산용 칼, 그리고 옛날에는 사람을 죽이는 살상 무기로 썼다.

“칼을 녹여 쟁기로”라는 이사야 서의 말은 곧 전쟁을, 정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실현하자라는 메시지이다. 그런데 왜 군대가 필요할까? 그것은 곧 지배를 위하여, 국가권력을 위하여, 지배자의 통치 질서를 위하여 필요로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나라로부터의 침략을 위해서 필요로 했었다.

그러나 성경 말씀대로 군대, 군사를 없애고, 전경을 없애고, 경찰이 필요하지 않은 국가는 과연 불가능할까? 이 세상의 온전한 평화는 불가능할까. 서로 싸우고 죽이고, 적대적 대립의 정치로 시종하는 그러한 정치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상대방을 비방하는 데 열중하거나, “자기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만 탓하는 사람들”(마가복음)은 바보다.

무장투쟁이 필요하다. 바로 사상무장투쟁이. 사상으로 제대로 무장되어 있지 못한 개인과 단체는 자연 도태되고, 퇴화되며, 퇴보(退步)하게 된다. 칼로 싸우는, 쇠파이프로 싸워 이기는 것보다, 정치적으로 상대방을 무력화(無力化)하여 평화 속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칼로 싸우는 방법적 노선보다 평화적 이행의 노선이 더 낫다고 볼 수도 있다.

남미의 칠레혁명, 즉 ‘혁명의 평화적 이행노선’의 좌절은 그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문영호, 『반제반자본운동론』, 개정판, 보론: 칠레에서의 혁명과 반혁명: 반독점노선의 파탄을 참조하시오.) 사회당과 스탈린주의 공산당 간의 분열, ‘평의회’주의운동체로서의 ‘산업코르돈’운동에 대한 군사적 저지, 군부 반혁명 쿠데타에 의한 말살 등은 단순히 선거에 의한 집권론이나,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노선의 역사적 실패 경험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군대를 장악하지 않으면 결코 혁명에 승리할 수 없다고 이재문이 말했지만(남민전의 교훈), 파리 꼬뮨으로부터 배워 형성된 맑스사상인 ‘인민총무장’없이는 일국사회주의를 지킬 수 없다.

그러나 무장은 혁명정권 방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즉 무장투쟁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군사는 정치의 연장”이라고 일찍이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는 설파했다. 엥겔스도 만년에 (맑스는 60대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독일의 평화적 이행론을 『안티 듀링』에서 제시하였고, 카우츠키와 베른슈타인은 이를 계승하여 사민주의를 창건하였다. 필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사민주의사상’의 원조는 노년의 엥겔스였다.

칼보다 펜, 즉 사상이 더 중요하고, 인민의 피를 흘리지 않고--중국게릴라전략이나 북한 빨치산, 체 게바라, 호찌민 등 옛날의 방식이 아니라--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러한 길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 혁명운동은 숙청하고 사람 죽이고 낡은 것을 지양하지 않고 말살하는 것인가? 맹자가 일찍이 주창한 동양적 정치사상--“역성혁명(易姓革命)”의 근본 원리는 무엇일까? 과연 이 시대에 혁명이 필요할까? 점진과 급진, 양적 전환과 질적 전환의 차이일 따름이 아닌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2. 철학 수필에 대하여

세상사는 것만 어려운 게 아니라, 공부하는 선비, 학자의 삶도 마찬가지로 매우 어렵다. 철학은 그 중에서 더 어렵다.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radically) 따지고 드는 학문이고, 끝없이 발전해가는 사상사업이고, 특히 헤겔과 같은 대사상가의 글을 읽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옛날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양반계급이 지배계급이어서 상놈들은 멸시천대받고, (지금도 그렇지만) 글과 철학은 양반들의 독차지였다. 그러나 이제 봉건시대가 철폐되고(조선 후기에서 일제하 시대에 따라), 신분적 계급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 그리하여 자유민주주의 (권력자가 ‘세습’되는 체제가 아니라 국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자신의 지배자를 뽑는 체제로서의 선거제도, 선거민주주의)가 자리 잡게 되자, 그리고 전 국민 보통교육의 실시로 인하여 무지와 무식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되기에 이르렀다. (우리 부모 세대는 중학교 정도만 나와도 과거에 비해 큰 교육효과를 얻었던 세대이나, 지금은 대학(大學)/대학원 시대로 접어들었다.)

철학은 이제 마땅히 대중화되어야 하고, 대중화되고 있다.
필자의 중앙중학교 지리선생님은 서울대 철학과를 나온 분인데, 맨날 철학교육만 했었다. 즉 ‘나는 누구인가’ 나! 나! 나! 뭐 이런 식이었다. 이처럼 철학은 인식을 바르게 하고, 깊은 분석을 가능하게 해주므로, 독자인 선진 계급 분들부터 자세를 바르게 하여, 철학공부에 착수하시라. 그리고 수필을 읽으시라.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를 추천함. 값 2000원) 시도 쓰고 읽고....바야흐로 ‘노동자 문화’에 있어서 시와 수필을 읽고 쓰는 문화, 바둑도 즐기고 음악감상도 즐기는 생활을 하시라. 토론도 하시고....


3. 사족(蛇足)

[쓰는 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맨날 인터넷에 잡글만 올리지 말고, 자기 이름을 걸고 책임지는 지면 발표가 중요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글을 교정을 보거나,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해서 ‘논평’을 가하거나, 평가해주는(레닌적 방식) 상호의사소통을 강화하자.

[공부에 대하여]
흔히 사회과학 책들이 너무 어렵다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공부 수준에는 서열이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같이 함께 해나가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세미나, 학습소모임 결성)

수준에 정확히 맞는 공부가 필요하다. 바둑을 두면 알 수 있듯이, 급수가 있고 거기에 알맞는 좋은 교재를 정확히 채택하지 않으면, 그리고나서 실전을 쌓지 않으면 결코 바둑 실력은 향상될 수가 없다.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스스로 찾아 나서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자세가 절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책방도 다니면서 자료도 찾고, 도서관에서 자료도 찾으면서 스스로 주체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때로는 선배를 찾아 조언도 구하고....

§§ 고리끼는 노동자 출신이었지만(부하린도?) 『어머니』라는 대작을 남겼고, 무수한 소설들을 썼다. 한 분에 한 권씩 책을 써서 후대를 위한, 그리고 당대를 위한 명저를 남기자. 시집을 남기자---바로 동지 그대 자신부터!//
* [필자 소개 : 문국진]
민주노조운동연구소/노동사회과학연구소/사회이론연구소-빛나는전망 객원 연구원. 노동넷에 진보컬럼니스트로 활동. 현재 고려대학교 박사과정 준비중임. 저서로 <반제반파쇼운동론> <혁명이론의 빈곤>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 연구> <노동해방의 논리를 찾아서>가 있다.
2005년04월24일 11:25:01
  
의견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