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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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인간과 계급의 문제
두 가지 휴머니즘 간의 투쟁
문국진
1. 자본주의적 휴머니즘의 두 얼굴

휴머니즘은 참 좋은 말이다. 휴머니즘, 즉 ‘인간주의’는 특히 우리 시대 정치적으로 부르주아적 지배가 존재하고, 경제적으로 착취가 존재하는 시대에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60년대 개발독재와 부르주아 이윤 추구 체제가 성립된 이래, 우리 사회에서 휴머니즘은 인간지상주의보다 물질지상주의가, 인권, 즉 인간의 권리보다 독재정권의 안위가 우위로 섬으로써 휴머니즘은 실종되고 상실되어 왔다. 때문에 서양 근대의 철학과 그 근대성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진보적 의의’를 획득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근대화’의 모순된 양면이다. 즉 한편으로는 근대화가 시민민주주의적 자유와 인권의 창달을 뜻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적 산업화, 착취체제에 근거한 자본의 무한 축적을 뜻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휴머니즘의 두 얼굴이다.

이 글의 문제의식의 출발은 바로 이러한 모순성에 주목하는 데에 있다. 즉 서구적 휴머니즘이나, 자본주의체제 하에서의 휴머니즘이 사실은 (역사적으로 볼 때에) ‘반휴머니즘, 반인간주의’로 귀결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히려 반자본주의 이념, 즉 맑스주의 혹은 사회주의 이념이 제시하는 철학적 지향에서 더욱 더 ‘진정한 휴머니즘’의 사상과 정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서구적 근대화 및 산업화와 그에 기초한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적 의미에서)이 진정한 휴머니즘이냐, 아니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그리고 현실사회주의가 보여준 일시적 일탈마저 넘어서는 역사적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진정한 휴머니즘이냐 하는 두 가지 휴머니즘 간의 역사적 선택과 역사적 격돌이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의 사회발전론에 관한 미해결 과제인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철저히 파헤치고 그럼으로써 올바른 사회적 실천을 위한 올바른 방향타를 획득해야만 한다.

2. 계급이냐 인간이냐

사회 구성원이 계급으로 나뉘고, 그 사이에 계급적 착취와 억압 그리고 저항으로서의 계급투쟁이 벌어진다는 역사발전의 진리에 주목한 맑스와 그 이념 내용은 본래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의 시대적 배경에서 생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래 맑스주의자들은 사회발전에 대한 설명과 대안으로서 ‘계급사관(階級史觀)’, 즉 계급 간 갈등과 투쟁을 중심으로 보는 사회과학적 입장을 취하였고, 이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현대에서도 여전히 사회진보운동의 인식상의 중심 축으로 채택되고 있다.

그런데 모든 사회모순 설명과 모든 사회활동의 근거로서 계급적 분열과 대립만을 상정하는 입장은 계급모순으로의 환원, 즉 ‘계급환원론’이라는 반론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 ‘사회다원주의’가 더욱 확산되고 보편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더, 특히 90년대 이래로 ‘사회운동의 다원화’로 인하여 계급지상주의에 대한 반론으로서 힘을 더해가고 있는 듯하다.

다른 한편, 우리 시대에서 날로 격화되고 발전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투쟁은 오히려 맑스주의적인 계급투쟁 중심 이념이 여전히 현실에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현재 사회의 중층화와 다원화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운동원리와 자본지배체제가 엄존하는 이상, 결코 단순히 폐기되거나 해소될 수 없는 계급모순의 중요성을 더욱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 또한 지금의 현실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요점은 사회의 다원화에도 불구하고 ‘계급적 관점에 근거한 사회비판의 입장’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그러한 다양한 사회변화에 적응하고 결합할 수 있게 되는가라는 것이 과제로 남게 된다. 철학적으로 이 문제는 곧 ‘당파적인 계급과 보편적인 인간의 관계문제’로서 제기된다. 그러면 이와 관련하여 주체사상 쪽의 인간론, 그 주된 철학사상의 특징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3. 주체사상의 인간주의 철학에 대하여

우리 현대사에서 다시금 맑스주의가 발흥하기 시작했던 80년대에 소위 NL(민족해방파) 대 PD(계급해방파) 간에 철학 논쟁이 벌어졌었다. 계급해방파는 민족해방파가 ‘사람을 중시’한 나머지 ‘철학적 유물론’, 즉 주체적 인간을 규정하는 토대적 규정의 중요성 사상, 따라서 계급적 규정 우위의 사상에서 이탈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족해방파는 남한 내 계급 간-정파간 갈등보다, 제국주의로부터의 민족의 생존과 민족의 탈제국주의적 해방을 더 우선시하였고, 따라서 계급주의보다 민족주의와, 민족분단 현실극복을 위한 통일지상주의를 최우선적 기치로 내걸어 왔다. 80년대의 이러한 정파간 대립은 지금까지도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못한 채, 민족모순 우위론과 계급모순 우위론으로 분열하여 대립되어 오고 있다. 사회주의 진영 내의 이러한 반목상은 오직 대립된 입장 간의 의사소통의 활성화와 ‘대립물 간의 상호침투’로서 비로소 해결되어 갈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주체사상의 독창적 문제제기는 사실 인류 역사상, 그리고 철학사상(哲學史上)으로도 매우 독특한 사상체계이다. 이는 맑스주의에서 출발하면서도 맑스주의적인 유물론 사상을 일정 정도 넘어서는 독특한 사상이다. 맑스주의에 머물지 않고 이를 일정 정도 넘어서는 주체적 실천을 강조하는 입장은 정세적으로는 중국과 소련 정권들로부터 정치-외교적 독자노선을 채택할 필요성과 맞물려 제기된 것이었다. 즉 민족자주, 자주적 자립경제의 확립으로 나아갈 정치적 필요성에 대한 철학적 논리근거의 필요성에 따라 형성된 것이었다.

주체사상 창시자들은 스스로 맑스주의자이며 공산주의자임을 자처하기에 그 주체사상은 주체적인 철학이면서도 동시에 유물론적인 내용, 따라서 ‘주체적 유물론’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 물론 필자가 보기에 주체사상은 주체적 실천과 의식의 능동성, 주동성을 더욱 강조한 나머지 유물론적 원리에서는 보다 더 멀어져 있는 입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물론이냐 관념론이냐, 그리고 물질중심이냐 의식중심이냐의 철학적 난제(難題)에서 기존의 ‘변증법적-사적 유물론’조차 그 재구성과 재비판이 요구되고 있다고 본다면, 맑스의 ‘실천적 유물론’(「포이에르바하테제」) 혹은 주체사상의 ‘주체적 유물론’은 철학역사상 매우 중대한 문제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주체사상의 인간론’과 인간중심철학이 철학사적으로도 획기적인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라는 평가를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80년대에 어느 정도 논쟁이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철학과 주체사상의 전반적 내용 간의 철학적 대화는 여전히 타개되지 못한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하겠다.

한편 주체사상이 대중노선, 정치적 실천원리로서 제기하는 ‘사람사업노선’은 필자가 보기에 매우 흥미롭다. 이는 인류 진보적 운동의 휴머니즘적 연장선상에서 현대사회주의운동과 철학으로 이어져 온 것이기도 하고, 초기 맑스의 휴머니즘적 정신에서 이어진 것이기도 하고, 계급적 분열을 넘어서는 인간주체의 능동적 활동에 대한 강조이기도 하다.

따라서 종래의 계급적 실천, 계급적 운동노선에 비하면 ‘사람사업노선’은 훨씬 내용이 풍부한 활동 마인드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대중사업을 더욱 더 구체적으로 펼칠 수 있게 하는 활동방법론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운동생활에 유용한 철학과 방법론을 제공해주는 내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주체사상의 인간철학의 실천적 장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더욱 더 치열해져 가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과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고 있는 계급적 모순, 계급적 투쟁에 대해 주체사상의 인간주의는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가? 계급과 인간이라는 모순된 관계에 대해 (비록 그들이 최근 괄목할 만큼 노동계급운동에 더욱 더 접근해오는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얼마나 현실적인 사상으로, 따라서 추상적이지 않은 구체성으로 작용할 것인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4. 자본주의적 인간관과 노동계급운동의 인간관: 계급해방파의 관점의 문제

과거 80년대 이래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남한 좌파의 계급적 관점은 초기 맑스 자신의 휴머니즘적 측면이 강했던 “인간주의적 공동체주의”와는 거리가 먼 소련 사회주의의 사적 유물론의 관점이다. 즉 “인간주의적 공산주의”가 『1844년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정식화된 바 있던 초기 맑스의 철학적 입장, 그리고 사회과학적 입장은 계급환원주의나 계급이기주의와는 거리가 먼 휴머니스틱한 철학이었다.

중국의 인간주의적 공산주의자인 어느 반체제 작가는 그녀의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를 바로 자신이 새로 읽게 된 위의 맑스의 책에서 크게 영향받아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관료적-억압적 구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맑스의 인간주의적 초기 저작에 돌아가 그에 근거하여 전개한 셈이다.

서구 맑시스트 좌파들도 주로 초기 맑스의 휴머니즘적인 철학에 상당 부분 의거하였었다. 구 소련과 동구권 현실사회주의체제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바로 이러한 맑스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에 근거한 것이었다. 마르쿠제도 역시 ꡔ소비에트 맑스주의 비판ꡕ을 쓴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남한 좌파는 여지껏 구소련 철학과 구소련식의 맑스주의 해석론에 크게 의지한 채, 남한에서는 아직까지 맑스주의가 지닌 근본적 휴머니즘 철학이 제대로 조명되고 취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따라서 계급지상주의로 오해되어 온 맑스 철학의 진면모를 되찾고, 휴머니즘 철학과 계급사상을 재결합하는 것이 오늘날 진지한 맑스주의자들의 과제로 제기된다고 하겠다.

자본주의적으로 파행되고 왜곡되어버린 진정한 ‘인간성’을 회복하고, 노동해방이 ‘인간해방’으로 필연적으로 다가가는 역사적 사명임을 몸소 체현하는 인간주의와 계급주의 양 극단의 지양을 통한 혁명적 도약만이 이 해묵은 논쟁을 비로소 끝장내게 할 것이다.

-- 경직된 형식주의에 안주치 않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그런 세상을 우리는 꿈꾸는 것이 아닐까.///050605


[보충]

두 가지 점만 보충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가 ‘계급적 관점’을 채택한다고 했을 때 사회 자체가 계급으로 분열되어 있고, 그 계급들 사이에 계급투쟁이 필연적으로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이지, 그러한 계급 분열 자체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주의자는 ‘계급의 폐지’를 지향한다. 즉 고차원의 단계로 나아간다면 계급을 역사 속에서 넘어설 것이 요구된다. 이 때 계급적 모순의 존재를 냉철히 인정하고, 거기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계급투쟁의 현실에 결합하며, 끝까지 나아갈 때에(영속혁명) 새로운 사회로의 여명, 역사적 전환이 도래한다는 신념이 객관성과 현실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급의 폐지’를 지향하는 사회주의자는 언젠가는 그러한 계급적 경계선을 넘어서야 하고, 계급적으로 나뉜 분열을 극복해야 하고, 대립물간의 정치적인 종합과 통합으로 도약하는 것을 자신의 입장으로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계급은 ‘계층’으로 나뉜다는 것에 대하여: 피티, 소비지, 비지라는 식의 사회 ‘기본 계급’의 구분은 경제적 분석에서나 정치적 분석에서 매우 중요한 구분 틀이다. 하지만 각 계급들은 하위 단위로서 다시 각 계층으로 나눌 수 있다. 예컨대 소비지에는 상층 소비지, 하층 소비지, 중산층 소비지가 있다. 이 때 상층 소비지는 타격대상이지만, 하층 소비지는 피티가 연대하고 동맹할 수 있는 대상이고 형제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부 구분조차 더 세밀히 사회 ‘각 계층’으로 나뉘어진다. 우리 사회에서 ‘직업’은 무수히 많다. 이상의 문제들에 대해서 보다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이고, 사회계급론적 분석이나 사회학적인 연구가 추후 요구된다. (필자는 80년대에 이 작업을 어느 정도 수행한 바 있지만, 추후 다시 이 사회계급-계층론을 독자들과 함께 정리할 기회를 갖고자 한다.)

‘각계각층(各界各層)’이라는 말이 있다. 바로 사회 각 계급과, 각 계급 내의 각 계층을 통합한 표현이다. 중국혁명사에서 ‘각계각층’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즉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할 각 계급들의 대단결, 각 계층의 대통합을 정치적으로 추구하는 사상이 이 말에 담겨 있다. 일제하 조선에서도 각계각층을 통합한 조국광복회 이래 북한 지배자들은 ‘민족대단결’의 입장을 계급투쟁의 입장보다 더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기도 하다.

각계각층이 하나의 정치적 과제 앞에서 대단결한다는 사상은 (약간 내용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유럽에서는 ‘통일전선 전략전술’로서 제기되었다. 상인은 상인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지식인은 지식인대로 각 계의 각 계층들이 각자, 그리고 다시 함께 조직화되어 공동의 정치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 현대사회에서의 우리의 미래 투쟁에서 그 조직적 표현은 ‘각 계층의 평의회’조직들 건설과, 이를 아우르는 ‘노동자/농민/빈민/학생/지식인 등 각 계층의 전국평의회’ 조직화로, 그리하여 평의회권력으로의 대통합으로 예견될 수 있다.///
2005년06월05일 14: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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