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노동조합이 노동실태조사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대부분 국민들이 IT산업 종사자라고 하면 세련되고 편안한 직업환경, 코스닥과 고임금 등을 생각하면서 이 분야 노동자들이 뭘 요구하는지 매우 궁금해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보통신 노동자의 68%가 주평균 5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그 중 50%는 60시간 이상 노동하고 있다는 현실, 게다가 년월차를 사용하는 비율이 4~5%, 4대 보험가입 적용 20%, 임금체불 34%, 월급체불과 회사 폐업으로 이직 42%, 파견 용역 회사 취업자가 49%라는 현실을 보면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다.
신문은 여전히 삼성, LG 등 대기업 IT업체 임원들이 연봉 10억~40억을 받는다는 뉴스, 게임산업으로 50대 갑부가 된 사장, 그 회사에 취직해서 몇 년 만에 몇 억 만든 종사자 뉴스를 싣고 있다.
2000년, IT산업을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사업체에 소중히 모아둔 돈을 투자해서 쭉정이만 잡은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국민들로서는 이 현상을 보면 정말 뭔가에 홀린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바람잡이로 나선 정부가 국민들 돈을 마구잡이로 끌어 모아 대기업 IT산업 육성에 퍼부으면서, 대기업과 그 관계자를 제외한 IT산업 중소사업자, 해당 노동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주변 국민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을 눈 뜨고 당한 셈이다.
늘 이랬다.
애니콜이 세계 시장점유율이 1위고 현대자동차가 생산량 5위라는 소식에 자기일 처럼 흐뭇해 하던 국민과 노동자는 ‘그래서 당신 주머니에 돈 들어왔습니까?’하면, 실업 상태인 아들은 고사하고 당장 먹고 살길 막막한 자기 처지에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다.
정부와 언론이 하는 짓은 결국은 중소기업과 그 노동자, 국민들을 희생으로 대기업 배 불리는 데 정신 없는 짓 뿐이다.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무식하게 그저 바람만 잡을 뿐이다. 그나마 김대중 씨야 불균형 발전에 입각해서 ‘지식산업’ 육성이라는 방향이라도 잡았지만, 노무현 정부는 뚜렷한 경제정책 방향도 없이 그저 정치 도박이나 하는 경제 청맹과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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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산업 노동자 실태조사 발표와 함께 IT노조가 정책요구안을 밝히고 있다. |
매사 그렇듯이, IT산업도 정도를 걸어야 한다. 기술을 육성하고, 인재를 길러내며, 특히 중소기업을 보호해야 한다. 불행히도 IT산업노조의 요구는 그 자체로는 관철되기 매우 힘들다. 이미 중소 IT사업체가 철저히 대기업의 하도급 업체로 전락한 마당에 중소IT사업체 노동자를 중심으로한 노동조합의 활동이 성과를 거두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모든 IT산업 노동자들이 개인의 거취 문제에 매달려 있을 때, IT산업 노동자 전체 문제를 조망하고 있는 IT노조 선구자들의 영웅적인 행위는 어떤 형태로든 성과로 나타날 것은 분명하다.
정부는 대기업 IT사업체가 자체 기술개발로 해외와 경쟁하도록 유도해야 하며, 현행 중소IT기업 고유업종 참여를 교묘한 방법으로 위반하는 대기업에 철저한 규제를 가해야 하며, 정부와 관공서의 프로젝트는 중소기업에 장기 하청을 주어 중소기업 또한 기술개발 중심으로 발전하도록 제도적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IT산업의 양심적 기업인 가운데 한 사람인 안철수 씨의 말은 경청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구성하고 있는 장비들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외국산이며, 국내 기술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속도가 빨라지고 용량이 커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합니다. 장비뿐만이 아닙니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거의 대부분이 외국산입니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는 인터넷 망을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을 뿐, 외국 회사들에게 돈을 벌어주는 거대한 시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와중에 대기업 IT업체는 모기업의 프로젝트나 수주하고, 중소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관급공사나 수주하고, 정부가 이를 방치하는 동안, 중소 IT노동자들의 현실은 조금도 개선될 가능성은 없다.
정부가 스스로 대기업 바람잡이 노릇을 하는 동안 회사가 쓰러지면서 가정이 박살난 중소 IT업체 사업자와 또 그에 종사하며 미래마저 불안한 중소 IT업체 노동자, 그리고 정부의 사기에 말려 소중히 모은 돈을 대기업에 사실상 강탈당한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그나마 그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의 문제에서 벗어나 IT산업 전체 노동자의 삶의 개선에 나선 IT노동조합 관계자들의 영웅적인 활동에 적극적인 관심과 함께 할 수 있는 만큼 지원할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