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의 운동기간이 끝이 났다. 선거운동기간이 끝나면서 중앙선관위가 인터넷 언론사에게 내린 ‘인터넷 실명제’ 족쇄도 풀렸다. 지난 11월 27일부터 12월 18일까지 언론사의 인터넷 실명제 강제 실시에 따라 많은 언론사들이 실명 인증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했고 독자는 의견을 남길 때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통과’된 뒤에야 의견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한 언론사에겐 최고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으름짱’도 놓았다. 선거법 82조의 6항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표현의 자유,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진보적 인터넷 언론을 중심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인터넷 실명제’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인터넷 실명제’ 거부가 조직적으로 확산되었다. 인터넷기자협회, 인터넷언론네트워크, 언론개혁시민연대, 진보넷 등은 ‘인터넷실명제폐지공동대책위(실명제 공대위)’를 구성하여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참정권을 제한하고 국가가 개개인의 의견 표명을 관리,통제하는 것이라며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기로 했다.
‘전면 거부’, ‘사이트 파업’, ‘게시판 폐쇄’, ‘덧글은 기자만 봐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거부
인터넷 실명제 거부 언론사들은 다양한 불복종 방식을 동원했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실명제 실시를 전면 거부하며 게시판 운영을 진보넷에게 맡기는 방식을 택했고, 노동넷방송국은 인터넷 실명제 기간 동안 사이트를 닫는 ‘사이트 파업’을 단행했다. 대자보와 이주노동자방송국, 울산노동뉴스 등은 이 기간 동안 게시판을 임시로 닫았다. 미디어 비평지 미디어스는 덧글을 달 수 있게는 했지만 미공개로 하고 기자들만 읽고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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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실명제폐지공동대책위원회 홈페이지 화면. 공대위 활동은 내년 총선에도 계속 될 예정으로 선거법 개정 운동도 함께 전개 될 전망이다. |
“왜 덧글 못쓰냐?” 독자와 소통 어려움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며 게시판과 덧글란을 닫은 언론사는 ‘왜 덧글을 못쓰냐’ 하는 항의성 질문과 함께 독자와 소통하지 못하고 독자의 쓸 권리를 원천적으로 제약했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실명제를 거부하기 위한 방법이지만 독자의 쓸 권리를 막았다는 지적에 대해선 그렇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다.
게시판과 덧글란을 닫은 이주노동자방송국 박경주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불편해 한다. 태국인과 채팅했는데 왜 덧글 안 써지냐고 물어 해명하느라 어려웠다”고 말하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인터넷은 국경이 없는데 (한국)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실명제는 문제 있다”며 국경 없는 인터넷에 국경선을 기준으로 한 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역시 게시판과 덧글란을 닫은 대자보도 독자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게시판과 덧글란이 없으니 독자와 소통할 공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독자의견을 쓸 수 있되 기자들만 볼 수 있게 조치한 미디어스는 대신 독자의견을 따로 묶어 소개하는 방식으로 기사화 해서 소통했다. 그러나 게시물은 현저하게 줄었다. 미디어스의 윤희상씨는 “현저하게 줄었다. 10분의 1일 정도이거나 확실히 반 이상은 줄었다”고 말했다.
선관위, 민중언론 참세상에 과태료 최대 1000만 원 부과
게시판과 덧글란 모두 폐쇄하지 않고 대신 운영주체를 진보넷으로 전환한 민중언론 참세상은 그러한 조처에도 선관위에게서 과태료 부과 방침을 통보 받았다. 아직 정확한 금액이 통보된 건 아니지만 최대 1000만 원까지 나올 수 있어 민중언론 참세상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민중언론 참세상 유영주 편집국장은 "게시판 분리 운영에 대해서까지 과태료를 부과한 선관위 방침에 대해 위헌 소송을 할 계획"이다. 한편 민중언론 참세상은 부과 된 과태료에 대해 후원 모금을 병행하고 있다.
인터넷이 잠잠하니 대선 ‘담론’도 잠잠?
이번 대선은 참 ‘차분’ 했다. 정책 토론은 사라지고 ‘공방’만 난무했다.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 네티즌의 목소리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잦아들었다. 2002년 흔히들 인터넷이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5년 뒤인 현재 그 위세는 전혀 달라져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2004년 개정된 선거법과 개정된 ‘정보통신망법’ 상의 인터넷 실명제 영향이 적지 않을 터이다.
선거법은 대표적으로 네티즌의 목소리를 제한하고 있고 ‘정보통신망법’은 언제든 추적하겠다는 ‘엄포’의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있다. 결국 인터넷으로 화려하게 정치권에 등장한 이들이 자신들의 ‘개국 공신’에 ‘재갈’을 물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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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위가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12월 11일 대선미디어연대가 주최한 ‘인터넷 실명제와 선거 담론 실종의 관계’ 토론회에서 인터넷 실명제와 이번 대선이 ‘차분’한 이유를 따져 보았다. 이날 토론회에선 대부분 참석자들이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개인에 대한 관리 통제의 방식이라는 데에는 문제의식을 같이 하고 인터넷 실명제는 폐지되거나 혹은 대폭 축소 또는 선택사항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책임 있는 의견 표명 위해 실명제 필요”, “실명제가 악플 예방 효과 없어, 오히려 감시만 확대”
실명제 공대위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반대와 지지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반대하는 의견은 주로 표현의 자유 침해와 국가에 의한 감시 통제가 강화되므로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실명제를 반대하는 한 네티즌은 “막을 걸 막아야지 무조건 다 막는다고 되나? 변화가 두려운 아이들 하는 짓거리 하고는…. 예전부터 언로가 열려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어”라며 실명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실명제를 지지하는 의견은 인터넷 실명제가 책임 있는 글쓰기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견해다. 한 네티즌은 “자기 주장이란 자신의 인격과 도덕성, 크게 보자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걸고 하는 표현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책임감있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고 봅니다”면서 책임 있는 글쓰기를 위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네티즌은 이어 “선거에 있어서는 특정 후보 혹은 정파에 의해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실명제에 따르는 제반 처벌 조항은 간소화 하고, 그 기준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반론을 올린 네티즌은 장문의 반론 글에서 실명제가 ‘악플 방지 효과 미미’, ‘ 수사기관의 용이한 추적’, ‘주민번호에 기초한 제도’, ‘외국의 익명 표현의 자유’ 판결 등을 조목조목 제시하면서 인터넷 실명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내년 총선 때에도 인터넷 실명제 거부”
이번 대선 기간 인터넷 선거 실명제를 거부한 거의 모든 언론사는 내년 총선 때에도 실시가 예상되는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기로 밝혔다. 과태료를 부과 받은 민중언론 참세상은 더 논의를 해 봐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명제 거부 기조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방송국, 대자보, 레디앙, 노동넷방송국, 미디어스 등 이번 대선 기간 동안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한 언론사들은 대부분 내년 총선 시기에도 인터넷실명제를 거부할 예정이다. 다만 덧글란 폐쇄가 독자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지적도 있는 만큼 각 언론사들은 더 많은 논의를 해 봐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주노동자방송국의 박경주 대표는 ‘소송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 변호사를 공동으로 선임한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말하며 인터넷 실명제 폐지에 대해 적극 동참의사를 표했다.
선거법 개정 운동도 함께
실명제 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넷 장여경 활동가는 “이번 선거가 굉장히 조용했다. 막판에 BBK동영상이 잠시 관심있었지만 사용자가 생산한 의미의 UCC는 별로 없었다. 선거법으로 발언과 토론이 위축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주요 원인이 인터넷 실명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인터넷 실명제) 반대운동은 계속될 것이고 결국 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총선 기간에도 실명제 반대와 선거법 개정운동을 벌여 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