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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담 좋은 이야기꾼의 세계
성석제의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민음사, 1997)
이주영 / 평화인권연대 회원
성석제의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를 읽으면 입담 좋은 이야기꾼의 이
야기를 듣고 있는 듯하다. 그의 소설은 활자화된 책을 읽는 독자 일반을 겨냥하고
있다기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청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이야기 공간의 현장성과 직접성을 확보하고 있는 성석제의 소설은 근대 이
후 확립된 소설의 장르적 특성에 얽매이지 않고, 과거의 서사 양식을 현대의 소설
로 불러들이는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성석제 소설에 나타난 이와 같은 개방된 서
술 구조는 입담 좋은 얘기꾼의 얘기가 그러하듯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재미
를 유발하지만, 구전설화에 아무리 얘기가 덧붙여지더라도 이야기의 큰 흐름이나
결말은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듯이 그의 소설은 뻔히 예상되는 결말을 드러내는
아쉬움을 남긴다.
「조동관 약전(略傳)」은 제목이 시사하듯이 서술 방식을 설화에 기대고 있는 소설
로, 전설과 민담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조동일에 의하면 전설은 자아와 세계의
대결을 세계의 우위에 입각해서 다루기 때문에 자아의 패배를 귀결로 삼으며, 합
리성을 추구하다가 더욱 큰 불합리에 부딪히고 마는 이야기이다. 반면 민담은 실
제로 있는 일에 구애되지 않고 자아가 세계보다 우위에 있다는 가정을 구체화할 수
있다. "다만 똥깐이와 한 시대를 산 사람들이 똥깐이를 낳고 똥깐이를 만들고 똥
깐이를 죽이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일부로 평범한 사람 조동관을, 자신들과는 다른
비범한 인간 똥깐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라는 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조동관 약전(略傳)」은 세계와의 대결에서 결국 패배하고 만 인물의 이야
기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전설적 세계의 비극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조동관'
이라는 인물은 세계와의 대결에 있어서 '무대뽀 정신' 혹은 '헝그리 정신'으로 대
항함으로써 세계의 횡포에 대항하는 자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에 민담적 인물
이다.
「경두」는 전설적 세계의 횡포를 표면에 내세우고 있으나, 결말에 이르러서는 탈
주하는 자의 자유로움을 보여줌으로써 닫힌 세계에서의 자아 찾기 혹은 자아의 가
능성이 어떤 것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경두」의 결말은 김중식의 「이탈한 자가
문득」깨닫게 되는 성찰의 지점과 맞닿아 있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
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
을."
「조동관 약전(略傳)」의 '똥깐이'나 「경두」의 주인공이나 모두 비극적 죽음을
당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정상 궤도에서 이탈함으로써 문득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인물이 택한 자유의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똥깐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달구어지고 이야기 속에서 다듬어져 마침
내 그의 짧고 치열한 일생이 전(傳)으로 남기에 이른다"라는 서술에서 알 수 있듯
이 '똥깐이'의 죽음은 '똥깐이 바위'라는 분명한 흔적을 남기면서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지만, '경두'의 경우는 개인적인 차원의 탈주에 머무른다.
「조동관 약전(略傳)」, 「경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변두리 인생을 살
아간다. 성석제는 이들 주변인을 주동인물로 내세우면서 그들의 삶을 따스하게 끌
어안는 인정을 베풀고 있다. 그의 소설에는 전설적 세계의 횡포나 그로 인한 인
물의 좌절 혹은 세계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자아의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으나, 그
는 쉽게 어느 한 쪽만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이와 같은 균형감각은 주변인의 삶이라고 해서 3류 인생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음과
(주변인의 삶이 오히려 중심적인 삶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세상의 통념에 비추어 볼 때 3류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이미 정해진 세상의 '게임의 규칙'과 그 규칙을 거부하
고 스스로 자신의 법칙을 만들어 가는 이들의 팽팽한 대결구도라 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