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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빠스 주민들, 기아와 억압에 저항
노동자세계 98/11/12
빌 해크웰
대규모 매체들의 치아빠스 투쟁에 대한 관심이 흐려지면서 이 남부 메히꼬주
의 여건은 계속 피폐화되고 있다.
중무장한 부대가 분쟁지역으로 잘 알려진 고지대와 라깐돈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은 분쟁지역에서 가장 강력하다.
이 저주스런 상황에 더해 9월에 치아빠스는 홍수를 겪었고 메히꼬 경제는 총
체적으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메히꼬 신문 라 호르다나(La Jordana) 10월 17일 기사에 따르면, 군대는 장거
리 바주카포 10대를 갖고 빤 아메리깐 고속도로를 따라 고원지대 까사에 속한
산 끄리스또발로 갔다고 한다. 최근에는 미국이 지원하는 메히꼬군와 다른 경호
부대 7만 명이 치아빠스 원주민 자치주를 포위하고 있다. 이 부대중에는 준군사
폭력조직도 들어있다.
상황은 원주민 만명이 체나로 지역으로 피난가야 했던 작년과 비슷하다. 그
사건은 12월 22일 악떼알 지역의 무장하지 않은 뜨소뜨실 인디언 45명이 학살되
면서 극에 달했다.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 평화회담 요청
사빠띠스따는 군사조직임에도 평화회담을 재개하려 하고 있다. 사빠띠스따의
부사령관 마르꼬스는 분열된 메히꼬 의회에 전하는 성명에서 회담을 제안했다.
그는 "연방정부가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메히꼬 사회에 누군
가 그리고 우리가 손을 뻗어주길 원하는 다른 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려 한다"고
했다.
사빠띠스따는 화해평화위원회에 이 올리브 가지를 제공하려 한다. 화해평화위
원회는 메히꼬 헌법에 속해 있는 모든 당원들을 포함한다. 치아빠스 원주민들은
에르네스또 세디요 정부를 믿지 않는다.
세디요 정부는 원주민공동체들을 대상으로 이렇다하게 감추지도 않고 학살전
쟁을 일으켰다. 1996년 정부는 협상자로서 직접 서명한, 산 안드레아스 협정으
로 알려진 자치기초협정을 배반했다.
또 다른 성명에서 사빠띠스따는 인디언 자결권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해 11월22-23일에 산 끄리스또발에서 대중회의를 열 것이라고 했다.
극부와 극빈
치아빠스는 석유를 포함해 메히꼬에서 가장 풍부한 광물질을 예치하고 있다.
치아빠스는 메히꼬 수력중 60퍼센트 이상을 공급하며 가장 많이 목재, 커피, 옥
수수를 생산한다.
그러나 치아빠스는 메히꼬에서 가장 가난한 주이다. 유아사망과 수명예상치는
남미에서 최악 지역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극악조건 중에 치아빠스는 9월 초 대규모 홍수에 쓸려갔다. 마을 수십
개가 완전히 잠겼다.
천명이 넘게 죽었다고 확인됐고 수천 명이 넘게 실종되고 몇 톤이나 되는 진
흙에 묻혔다. 4십5만 명이 넘게 집을 잃었다. 다리와 길들이 물에 씻겨 내려가
공동체 수백 개가 고립된 상태다.
국재원조는 드문드문 있었다. 미국의 경우, 홍수 복구를 위해 겨우 2만5천 달
러를 보냈다. 워싱턴은 메히꼬군에 해마다 2억5천만 달러를 준다. 원조금의 천
배가 되는 수치다.
세디요정부는 홍수를 이용해 치아빠스에 부패여당인 제도혁명당(PRI)의 권한
을 강화하려 했다. 홍수로 지역이 마비되었는데도 10월 4일 선거는 실시됐다.
투표는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에서 가장 나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제도혁명당 로
베르또 알베레그 구이엔은 선거를 그들의 목에다 들이밀었다.
아무도 선거를 하지 않은 공동체도 있었다. 대부분 3십 퍼센트가 못되게 투표
장에 갔다. 하지만 제도혁명당은 선거를 통해 분명하게 이점을 얻었다.
사빠띠스따와 인권단체들은 제도혁명당이 홍수구제로 지정된 인도주의적 차원
에서의 구호품으로 표를 산 것을 비난했다.
IMF 부채는 재앙을 싣고
세디요정부가 치아빠스 재난을 완화하려는 의지와 희망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은 부족하다. 메히꼬 경제력은 국제통화기금과 미국은행이 절대
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디요는 초기 부르주아 정부가 실시한 자립적 경제를 위한 제한된 투쟁조차
그만뒀다. 메히꼬는 발전을 위해 엄청난 자금을 약속한 제국주의 부채 덪에 걸
렸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산업발전이 낳은 이익금으로 부채를 탕감
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석유와 그 외 주요상품 가격은 점점 내려갔다.
이에 따라 오늘날 메히꼬 외채는 천7백억 달러에 이른다. 채무불이행을 막기
위해 메히꼬는 한때 국가가 운영했던 산업과 자원들 중 많은 부분을 팔아치우도
록 압력을 받았다. 1982년과 1996년 사이에 메히꼬는 국내노동자들과 농민들의
기아와 실업이 증가해 가는데도 외채를 갚는데 천 4백억 달러를 지출했다. 그런
데도 여전히 빚은 쌓여갔다.
이제 경제위기는 국제적인 문제가 되어 메히꼬처럼 빚에 눌려있는 국가들을
가장 세게 친다. 위기는 아시아에서 남미로 퍼져 나갔다. 월가가 브라질이 총체
적으로 붕괴할까봐 이 재앙을 저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동안도 메히꼬 경
제는 여전히 자유로이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
"신흥시장" 곳곳에 영향을 주었던 최근 메히꼬 경제 붕괴로 메히꼬 주가는 8
월 27, 28일 사이에 53퍼센트 떨어졌다. 그리고 나서 일주일 후 10퍼센트 더 떨
어졌다.
메히꼬 페소가 심하게 평가절하되고 힘을 잃자 페소를 없애고 미국달러로 바
꾸는 것에 관한 공개토론이 있었다.
메히꼬를 아주 많이 도우려고 한다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은 몇 개 되지도 않는
보호관세를 뜯어내 제국주의자들은 더 쉽게 약탈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아이오와에서 재배하는 옥수수는 옥수수가 원주민 경제의 필수적인 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 치아빠스에서보다 더 싸게 팔린다. 또 다른 메히꼬 IMF구제금융은 더
욱 메히꼬를 궁핍하게 만들 것이다. 구제금융이 대중의 삶의 기준을 올려줄까?
구제금융의 목적은 은행을 살리는데 있다.
자치주들은 EZLN을 지원해 저항할 것을 선택했다.
평화순례 목사단
치아빠스 저항 위기로 즉각 평화를 위한 미국목사단은 치아빠스에 보내 저항
하려는 원주민들을 돕도록 순례단을 보냈다.
작년 4월 목사단은 순례단을 이끌고 34톤이 넘는 구호품을 전달했다. 순례단
지도부는 올해 들어간 두 번째 순례단은 "추수감사"의 진정한 정신을 담고 있으
며, 인디안 공동체 전멸을 경축하는 이들에 반대한다고 말하였다.
4십 명이 넘는 참석자들은 학교버스 4대, 트럭 2대, 원조물품 여러 톤을 갖고
왔다. 순례단 중 일부는 계속해서 니카라과로 간다.
전국협동간사 로빈 하예스는 치아빠스 위기와 이에 대한 미국정부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이번 순례단은 작년보다 규모가 크다고 한다. 하이예스는
"이것은 평화목사단 10주년과 한 민족에 대한 외국인 정책을 세우기 위한 작업
중 하나인, 메히꼬, 중미, 쿠바 순례단 29주년을 기념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