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동체 라디오를 둘러싼 전쟁
「주간녹색좌파」 12/8
로스앤젤레스 - 1948년 언론인 루이스 힐과 한 무정부주의-평화주의 그룹은 "자유의 소리 라디오"라고도 알려진 평화 라디오(Pacifica Radio)를 설립하였다. 그 무정부주의-평화주의 그룹은 날로 늘어만가는 억압, 냉전의 군국주의와 대결하기를 원했다. 지금 평화 라디오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평화 라디오(KPFA-FM)는 청취자들의 자그마한 기부금으로 직접 재원을 마련하고 있는, 세계 최초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다. 평화 라디오는 어떠한 기구나 회사, 정부의 통제 아래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독특하다. 평화 라디오의 예는 이제는 전세계적인, 공동체 라디오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일관되게 권력에 대하여 진실을 말해왔기 때문에, 비상업 라디오 네트워크인 평화 라디오는 정부와 사회 반동 세력의 공격을 받아왔다. 현재 평화 라디오는 클린턴 행정부의 도움을 받고 있는 이사회의 적대적 인수 시도에 맞서 싸우고 있다. 싸움의 결과가 미국의 마지막 자유 방송 매체망이 붕괴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해 줄 것이다.
주요 인구 지대에 있는 평화 라디오 소속 5개 FM 송신기는, 미국 가정 1/5에 방송을 송출할 수 있다. 공개 시장에 팔린다면 그 가치는 40억 달러에 달할 것이다.
지난 5년간에 걸쳐 축적된 위기는 지난 여름 절정에 이르렀다. 평화 라디오 설립 50번째 기념일에 KPFA-FM은 전장이 되어 버렸다.
자유 재단 이사들이 최고 입찰자에게 KPFA를 즉시 매각하기 위한 비밀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도하기 위해, 방송인들은 개그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회답으로 방송인들은 연행되었고 경영자는 방송국을 폐쇄했다.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항의행진을 벌였고 이번엔 100명 정도가 연행되었다.
평화 라디오 경영측은 방송국 버클리 지부의 반란에 대한 보고를 감지한 직후, 국내 뉴스 담당자를 해고했다. 해고 사유는 평화 라디오와 관련된 라디오 방송국들 일부가 전개한 연대의 항의를 보도했다는 것이다. 이는 반란을 억누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로이터나 AP통신 같은 국제적 방송망은 평화 라디오를 둘러싼 갈등을 소개할 수 있었지만, 다른 평화 방송국의 청취자들은 자신들의 지역 방송국에서 아무런 보도도 들을 수 없었다.
"책임"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 평화 라디오는 정부의 공격을 받았다. 처음에 그 공격은 게이 라디오 드라마 방송을 향한 것이었고, 몇 년 후에는 흑인민족주의에 대한 프로그램을 타겟으로 삼았다. 당시 평화 재단의 야심적인 전무이사 데이비드 살니커는 "책임"있는 사람들이 유아적 무질서를 제어한다면 평화 라디오가 미국 정가에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조직 내부와 진보 운동의 영향력있는 수많은 인사들을 설득하였다.
살니커의 기름부음 받은 자(1) 패트 스코트는 의원 접촉의 임무를 띠고 워싱턴DC에 급파되었다. 그리고 어떠한 거래가 성사된 것 같았다. 정부의 공격은 중단되었다. 전에 5개 자치 방송국에 대한 느슨한 관리만을 해오던 평화 라디오 전국 이사회는 재정과 정책을 공격적으로 중앙집권화하기 시작했다.
"광범위한 변화"가 선포되었다. 반대하는 사람은 방송국을 떠나거나 변화에 복종해야 했다. 거대한 숙청이 시작되었다. 200명 이상의 공동체 프로그래머, 특히 급진적이거나 논쟁적 관점을 보유한 이들이 해고당했다.
그들은 점차 저임금의 "프로"들로 대체되어 갔다. 그 "프로"들은 프로그램의 정치적 함의에 대해 심각히 고려하고 있는 경영측의 지시를 받아들이는 자들, 아니면 지도를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한 관점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현 '단체교섭 협약'은 노동자들에게 의사 결정에 참여할 권리와 회사의 일을 검토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단체교섭 협약'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동조합 파괴 전문가가 고용되었다. 방송국 스탭들은, 새로운 체제에 반하는 내용을 공론화시킬 경우 해고된다고 위협당했다.
평화 라디오는 기업형 위계질서, 독재, 비밀이 판치는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보답
평화 라디오의 전통을 폐기한 뒤, 경영측은 방송인들에게 클린턴 행정부를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 행정부는 호의로 보답하였다. KPFA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버클리 경찰 책임자는 미 사법부의 관료로부터 전에 없는 요청을 받았다. 그 요구는 왜 경찰이 버클리 시 상담소 사람들을 포함한 시위대를 더 공격적으로 다루지 못하였는가였다.
평화 라디오 고위층은 몇 년에 걸쳐 자유주의적 조류에로의 지지라는 전환을 감행함으로써 권력을 강화하였다. 1998년 클린턴이 지명한 매리 프랜시스 베리 시민권위원회 의장이 평화 라디오 이사회 의장직에 올랐다. 베리는 이사회가 몇 년 간에 걸쳐 시도해온 말많은 "5개년 계획" 중 한 부분의 실현을 주관하였다. 그것은 바로 조직 규약에 있어서 이사회가 자기 자신을 선출할 권한을 부여하는 변화이다.
공동체는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하였고 그것을 거부하도록 이사회 구성원들에게 압력을 넣었다.
정부 기금이 비영리 방송 매체를 지원하도록 하는 공공방송법인은 권력 장악을 지지함으로써 평화 라디오의 경영진에게 특혜를 베풀었다. 평화 라디오의 요청으로 공공방송법인은 서한을 보냈다. 그 서한은 평화 라디오 조직 기구와 자신들의 규제 승인은 관련이 없으며, 자금 지원 150만 달러를 삭감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엇다. 이사회의 행동은 지금 권리를 박탈당한 기부자와 그들의 대표들이 제기한 두 가지 소송의 주제이다.
평화 라디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대중매체에 대한 정부의 구조적 폐쇄의 일환이다. 거대 방송매체의 요청을 받아들여, 미 국회는 상업 방송의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제정하였다.
비상업 방송은 새 정부에게서 압력을 받고 있다. 정부는 자금 지원의 조건으로 상업 비율 서비스 기준을 사용할 것과, 시청자 수와 수입의 급속한 증가를 요구한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방송국들은 상업화되어야 하며, 부유한 자, 더 보수적인 기부자들을 끌어들일 만한 방송 편성을 강요받는다. 정부 출자 기관은 방송국들에게 풀뿌리에 초점을 두지 말라고, 시장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프로화"하라고 한다. 이러한 유혹에 한번 걸리면, 나사는 조여든다.
평화 라디오의 반란은 고립된 투쟁이 아니다. 많은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과 비등록 소권력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 운동의 맹아들이 뒤에서 싸우고 있다. 인터넷의 새로운 가능성을 활용하면서, 진보적 의제가 있는 풀뿌리 방송국은 기업 문지기와 싸우고 있다. 경영측이 축가를 올리기엔 아직 이른 것이다.
[린 제리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평화 방송국 KPFA-FM 노동조합 간사이며 전 스탭 멤버였다. 그녀는 평화 라디오의 탈취 시도에 맞서 5년간 싸워온 활동가이며, 평화 라디오 사태에 관한 웹사이트를 관리하고 있다. 주소는 http://www.radio4all.org/
freepacifica이다. 그녀는 또한 소권력 라디오 운동의 활동가이기도 하다.]
(1)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왕위 계승자의 머리에 그름을 부어주는 의식을 행했는데, '기름부음 받은 자'는 여기서 유래한 말로, 어떤 일을 계승해나가는 주체임을 뜻한다-역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