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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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미디어와 레즈비언①] 사랑은 자연스러운가요?

<편집인 주> '이반의 세상, 세상의 이반'이란 꼭지로 레즈비언의 인권문제를 제기했던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는 이번 호부터는 미디어 속에 비친 레즈비언의 모습, 레즈비언을 그리는 미디어의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연재한다. 앞으로 6회 정도 연재되는 이 기획은 4주에 1회 꼴로 실리게 된다. 일상생활 속에 무심히 지나가게 되는 드러나지 않는 성소수자의 문제, 독자들은 미디어를 읽는 다른 시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좋은 글을 보내주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 감사드린다.

텔레비전이 선전하는 것

여자와 남자는 사랑에 빠진다. 알고 보니 남자는 엄청난 부자의 아들이었고, 남자의 집에서는 자신들이 보기에 별 볼 일 없는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남자의 의지를 꺾으려 기를 쓴다. 눈물나는 사랑, 가슴 아픈 시련, 많은 것을 견디고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할 수도 있겠지만, 여자는 남편의 가족들로부터 꽤 오랫동안 구박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십 년 전에도 일 년 전에도 한 달 전에도 바로 지금도 절찬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의 줄거리이다. 이런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진부함이 아니라 중독성이다. 언제나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다 한 회만 봐도 드라마의 전체 스토리가 잡히는 헐거운 내용일지라도) 나는 레즈비언인 나의 처지를 잠시 잊은 채 그저 본방 사수에 몰두한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만큼은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도 드라마 속 여자와 남자가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어른들의 구박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드라마가 요일마다 시간대마다 줄줄이 소시지로 편성되어 있는데, 도대체 레즈비언이 들어갈 자리는 도대체 어디 있담. 흥. 텔레비전에서는 맨 여자 남자 얘기만 해대는 통에 L드라마는 한 편 보려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캐시를 지불하고 다운을 받아야 하는데. 어떤 건 틀면 나오고 어떤 건 찾아내야 하고, 이건 뭐,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된다. 잠자리에 들며 뭔가 시큰둥한 빈정거림을 토해낼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음 회의 내용이 궁금해서 잠을 못 들겠다. 몰래 만나고 있는 걸 들킬 때가 됐는데, 못된 부자 여자가 남자를 그만 좀 따라 다녀야 할 텐데, 하면서 말이다.

집 밖으로 나올 때까지도 다른 생각을 못 한다. 여자 남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머리 속을 꽉 채워서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라도 해야 뭔가 어긋나 있다 싶다. 레즈비언 자긍심 갉아 먹는 소리. ① 여자가 남자의 팔에 기대어 걷는 게 예뻐 보인다. ② 평소에도 지질했던 게이다 수치가 더욱 낮아져서 동성 커플은 내 눈에 띄지도 않는다. ③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라는 게 문득 낯설어진다. 나는 여자인데 왜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하고.
급기야는 여자와 남자가 사귀는 게 자연스러운가? 하는 생각이 일어나려는 통에 뭐에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모든 게 드라마 한 편 때문이라고 말하려고 하는 거냐고? 천만에.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반복된 이야기 중 하나가 이 드라마 한 편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여자와 남자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이 뿌리 깊은 이야기의 전수. 텔레비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에게 이성애를 선전하고 있다. 방송의 선전은 이렇게도 ‘자연스럽고’ 끝없이 반복된다.

더 자극적인 것, 더 새로운 것

남자와 남자가 천장이 높은 실내에서 서로 마주 안고 엎치락뒤치락하며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다. 멀리서 브라질 가수의 조용한 노래도 들려온다. 이 사람들 지금 뭐하는 거지? 하며 얼굴이 발개지려는 순간, 화면 가까이로 나와 있는 사람이 귀에서 이어폰을 빼낸다. 다시 보니 남자와 남자는 레슬링을 하고 있다. 천장이 높은 실내도 레슬링 경기장이다. 화면이 멀어지면서 한 휴대폰 회사의 브랜드가 자막으로 떨어진다. 이것은 얼마 전 방영된 휴대폰 광고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광고의 전반부는 영락없이 게이 커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처럼 보인다. 이 장면을 두고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사람들은 꽤 활발하게 이야기 했던 것 같다. 대부분은 ‘호모 새끼 콱 나가 죽어’ 등의 동성애자 비하 발언 천지겠지만 말이다.

이미지로 대화를 나누는 우리들에게 이미지 속에 숨은 뜻은 이제는 단어의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지를 즉각 읽을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지의 효과는 얼마나 더 세련되거나 자극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여보세요? 섬에서도 잘 터져요!'로 제품을 선전할 수 있는 시절은 오래 전에 지나갔다. 숨 가쁘게 지나가는 이미지가 망막과 시신경에 자극을 남기려면, 더 새롭고 충격적인 이야기가 담긴 것이라야 한다. 세련된 게이의 이미지를 광고에 적극 도입한 것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처럼 살 수 있게 되어서가 아니다. (비정하게 말하자면) 동성애에 관한 관점이 진보의 척도가 된 지금, 광고 속 게이 이미지는 그저 진보적인 코드로만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광고가 전무하다는 것은, 남성 동성애자에게 호의적인 도시의 이성애자여성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는 동안 레즈비언에게 호의적인 소비자 층은 가시적으로 확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이미지를 보면 최신의 것을 알 수 있다. 최고로 유행하는 코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지 자체의 속임수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자연스럽거나 너무 새롭기 때문에 보는 사람은 이미지의 의도를 받아 안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읽어 내는 수밖에 없다. 그 많은 레즈비언은 왜 텔레비전에서는 한 움큼도 보이지 않거나 모자이크 처리로만 만날 수 있는지.



덧붙이는 말

* 원영 님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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