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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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의 구심력을 넘어

평화칼럼 : Peacemaker

제도의 구심력을 넘어

김상철 중앙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3차

올 1월은 유난히 부산하다. 몇 년 전부터 'D- 며칠'이라는 호들갑을
떨며 기다려 왔던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었다는 것도 그 한가지 이
유일 것이다. 하지만, 새 천년의 도래가 재앙도 축복도 아니라는 것이
판명 나자 그 열기도 허망하게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요즘의 눈과 귀
는 하나의 실험에 모아져 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이하, 총선시민
연대)를 비롯한 몇몇 시민단체 연대체의 낙천·낙선, 정보공개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 총선시민연대는 불법운동을 천명하고 나서 다른
여타의 단체와 차별성을 지닌다. 사실, 총선시민연대가 공격받고 있는
'불법'이라는 지적은 그다지 그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그 이
유는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이 '입법활동의 핵심부'를 겨냥하고 있기 때
문이다. 입법권을 지닌 대상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운동이 불법이라는
혐의가 있다는 것은 오히려, 현 입법부가 자신들의 입법활동을 자신들
을 보호하는데 사용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하고자 한다면 유동적인 입법부
(곧, 국회의원)가 마음대로 재단할 수 없는 상위법에 근거할 필요가 있
다. 그것은 바로 헌법이다. 사실, 시민단체가 불법 활동을 한다는 것은
시민단체의 고유한 성질에 어긋나는 것으로 시민단체의 불법활동이라
는 말 자체가 모순형용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현재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은 '헌법'의 틀거리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이고, 그럴 경우 국민의
참정권과 알권리 보장이라는 헌법정신에 의해 합법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렇게 간주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시민운동단체는 제도의 논리를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현행제도
의 가장 이상적인 작동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시민운동단
체의 탈주는 일정한 구심력 하에 존재한다. 제도는 언제나 가장 큰 당
대의 논리를 중핵으로 하여 끊임없이 모든 것들을 중핵에 근접하도록
구심력을 발휘한다. 이런 전제에서 시민단체는 그 제도의 원심력을 최
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총선
시민연대의 활동 역시 바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현재 낙천·낙선운동의 성과를 이와 같은 시
민단체의 성격을 논외로 하고 나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시민명예혁명'이라고 칭해질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는 현재의 낙천·
낙선운동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명예혁명이 했던 것과 같
은 당대의 최고 권위를 제거하지도 못했다. 다만, 흠집을 냈을 뿐이다.
또한, 현재의 낙천·낙선운동은 정치투쟁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 못하
다. 이 말은 현재의 낙천·낙선운동은 명예혁명이 일정정도 이루어 놓
았던 시민권력을 수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 나름의
논리를 지닌 따옴표가 있는 '명예혁명'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총선시민연대의 시도는 현재 제도가 가질 수 있는 원심
력의 최극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설사, 이 운동이 한계가 있더라도
그 나름의 의미는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새 풍선을 크게 불기는 매우
힘이 들지만, 한번 불어 논 풍선을 다시 불어 바람을 채우기는 쉽지
않던가? 중요한 것은 새로운 틀을 짜는 논리들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는 것이다. 그람시의 말처럼 위기가 '대안의 부재'를 의미한다면, 우리
는 너무나 오랫동안 위기를 겪고 있는 셈이다.
요즘은 한가지 상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무엇이 현재의 논리로서
가장 충실한 것이냐는 질문 때문이다. 여러 번 생각해보아도 답은 여
전히 같게 나온다. 모두다 움직일 때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장 현재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인간이 행위의 능력을 상실해
버린다면 도대체 입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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