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이 게시판을 통해 전북 참소리, 미디어충청, 민중언론 참세상, 울산노동뉴스의 기사와 관련된 토론을 직접 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제대로 말하고 있나요?

작금의 '고려대 입시 부정 논란'에서 보듯, 예상한 대로 대학 입시가 특목고생 잔치가 되가고 있습니다. 한술 더 떠 이른바 '3불' 정책이 현실에 맞지 않다며 공공연히 명문대도 문제 삼는 걸 보면, 이미 대세를 인정해야 할 분위기입니다.
 
당장 고려대가 제시한 '마법'의 보정 상수인 알파(α)와 케이(k)에 의해 탈락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집단 소송을 불사하겠다며 벼르지만, 가까운 미래에 '그들'이 될 직접 피해 당사자인 지방 일반 고등학생의 반응은 그저 무덤덤하기만 합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 그리 놀랄 것 없다는 눈치입니다.
 
학생도 학부모도 특목고 못 가고, 지방에 사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어쩌겠느냐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모양새입니다. 교사는 교사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 하자'고 다독일 뿐, 불의한 현실을 향해 분노하는 법을 잊어 버렸습니다. 이 또한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인식에 다름 아닙니다.
 
어쩌면 아이들의 미래가 결정될지도 모르는 대학 입시에서 부정이 행해졌고, 나아가 우리나라 공교육 전반에 걸쳐 신뢰가 붕괴돼 가는데도 그저 담담하게 바라볼 뿐 별 '대응'이 없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자녀에게 벌어진 일이 아니니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할 뿐입니다.
 
지방의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솔직해져야 합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알면서도 아이들 앞에서 드러내놓고 말하는 걸 꺼려합니다. 웬만해서는 서울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또 웬만해서는 특목고를 넘어설 수 없음을, 그 어떤 족집게 교사가 와서 수업을 해준다 해도 뛰어 넘을 수 없는 '계층의 벽'이 우리 사회에 엄존하고 있음을 당당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기실 서울의 특목고 학생들은 일반고 학생들을 같은 '부류'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물며 지방에 있는 학교임에랴. 닳을 대로 닳은 기성세대는 그렇다 쳐도, 아직 때 묻지 않은 어린 영혼들조차 그러한 차별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듣자니까 요즘엔 특목고 출신끼리 결혼을 하는, 이른바 '성골 결혼'이 보편화되는 추세라고도 합니다.
 
이번 입시 부정 논란과 그것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기는 우리 사회의 무덤덤한 반응으로 보건대, 학교 교육은 더 이상 계층 이동의 통로가 아니며, 학교의 간판을 통해 끊임없이 계급이 재생산되는 '신분제 사회'로 급격하게 퇴행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지방의 중소도시는 물론, 대도시의 학교 교문마다에는 명문대에 몇 명 합격했는가를 자랑하는 현수막이 오늘도 내일도 경쟁하듯 내걸립니다. 개중에는 입시 성과가 특목고에 견줄 만하다며 아예 일반고를 한 수 아래로 내려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의 특목고 학생들의 눈에 이러한 지방 학교들의 몸부림이 어떻게 비칠까요. 모르긴 해도 '도토리 키 재기'라며 비웃지 않을는지.
 
서울과 지방, 특목고와 일반고 사이의 '교육 수준'은 명문대 진학률에 의해 이미 그렇게 규정돼 버렸습니다. 엄밀하게 따져 '특수 목적'을 위해 교육하는 학교와 일반 학교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노릇인데도, 이미 특목고가 만들어질 당시부터 우려됐던 명문대 진학을 위한 확실한 준비 기관으로 변질돼 버렸고, 끝내 모든 학교 위에 군림한 채 공교육 전체를 무력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건 현실에 만족하고 순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워 정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그러한 힘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늘 깨어 공부하며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불의에 참지 못하고 분노하며 저항하는 것이 곧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정의로운 일입니다.  
의견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