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가 가능하다"
박하순 <민주노총 정책부장>
"금융시장의 독재?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지난 6월 23일부터 26일까지 필자가 참여하고 온 국제회의의 명칭이다. 르몽드 디쁠로마띠끄라는 주간지의 토빈세 도입 제창을 계기로 하여 조직된 '시민지원 금융거래 과세연합(ATTAC : 이 단체는 구성된 지 1년 만에 프랑스에서만 천여 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다)'을 비롯하여 '제3세계 외채탕감 위원회', '다자간 투자협정 복사판들에 대한 반대 조정위원회', '새로운 시대 여성을 위한 발전대안' 등의 단체들이 조직한 회의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이 회의에는 약 80개국에서 노동조합, 여성운동단체, 농민단체, 사회운동단체, 그리고 다양한 색깔의 정당들을 대표한 천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프로그램으로는 세계화의 작동방식, 토빈세의 가능성 및 재분배, 국제 금융기구의 개혁 등과 같은 전문적인 내용에서부터 세계경제 위기, 금융투기 및 그 효과, 제3세계의 외채 문제 등과 같은 공통인식 형성을 위한 교육적 프로그램, 그리고 각국에서의 세계화 및 IMF 통제로 인한 구조조정에 대한 투쟁 경험을 나누는 프로그램 등 다양했다. 물론 참가자가 전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동일 시간에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전체가 다 참가하는 프로그램은 첫 날과 마지막 날에 있었는데 첫 날 오전에 회의 개최 배경 설명 및 각국의 참가단 소개 프로그램이 있었고 마지막 날에 주요 참가단의 의견개진을 통한 그 동안의 논의의 종합 및 결의문 채택 그리고 시위가 있었다.
한국 참가단의 활동을 보면 브라질, 남아공, 알제리의 대표가 발표자로 참가한 'IMF 정책에 대한 저항'이라는 워크샵에서 민주노총이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응'이라는 주제 하에 현재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과 노동법개정투쟁, 98년 IMF 통제체제 하의 두 번의 총파업, 그리고 올 해의 투쟁에 이르는 일련의 투쟁과정을 발표하였고, 서울여성노조에서 '세계화와 여성의 투쟁'이라는 주제의 워크샵에서 한국의 사례를 발표를 하였으며, 사회진보연대에서 한국에서의 한미·한일 투자협정 반대싸움에 대한 소개를 하였고, 사무금융노련에서 '노동조합과 다국적회사'라는 워크샵에서 프랑스 다국적업체 악사(AXA)가 대주주로 있는 동부생명의 노조탄압사례를 발표하였다. 또한 마지막 날 전체회의에서는 민주노총에서 최근의 단식투쟁을 포함한 이제까지의 투쟁에 대한 소개와 한미·한일 투자협정 및 밀레니엄 라운드에 대한 앞으로의 반대투쟁 결의를 하였다. 그리고 이런 활동의 결과로 최종결의문에 초안에는 들어있지 않았던 한미·한일 투자협정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을 삽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식 프로그램 이외에 한국 대표단들은 다른 아시아 대표단들과 함께 아시아 지역 활동가들의 교류와 협력을 어떻게 증진시킬 것인가에 관하여 두 번에 걸친 회의를 하였다.
이번 회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표현들은 우리 국내에서도 익히 알려진 세계화, 금융자본, 신자유주의, IMF 구조조정, 외채위기, 노동에 대한 공격, 부익부 빈익빈, 국제연대 등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참가자들간에는 "동일한 이야기를 각국 대표단들이 언어만 바꿔 이야기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특히 남쪽 국가들의 경우 외채 위기로 인한 IMF 개입, 구조조정, 노동자들의 생활 악화, 그리고 이에 대한 투쟁의 필요성을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였다. 한편 참가자들 중에서 금융거래과세와 각종 투자자유화협정에 대한 반대를 강조하는 입장과, IMF 구조조정과 외채탕감에 대한 대응을 더욱 강조하는 입장으로의 미세한 분화가 보이기도 하였다. 물론 이런 약간의 입장 차이는 노력 여하에 따라서 충분히 극복이 가능한 차이라고 느껴졌다. 북과 남으로 위계화된 현재의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위기는 남쪽 국가들에서는 외채위기, 구조조정, 노동자 민중들의 삶의 악화를 초래하고 있고,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도 하에 초국적 자본의 주도로 진행하고 있는 각종 투자자유화협정들은 초국적자본에게 완전한 투자·투기의 자유를 허용하면서도 남과 북의 모든 노동자 민중들에 그 공격의 칼날을 들이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세계체제의 위기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현재의 체제적 위기의 부담을 남과 북에 살고 있는 모든 노동자 민중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마당에 북과 남의 노동자 민중들이 단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다양한 부문에서 색깔이 약간씩은 다른 단위들이 느슨하지만 하나의 전선으로 묶인 이번 회의의 성공적인 조직화 방식은 그 가능성을 한껏 높이고 있었다. 각국에서의 투쟁이 활성화되고, 이런 투쟁들이 이번 회의와 같은 계기를 활용하면서 국제적으로 모아진다면 진정 '또다른 세계가 가능'하지도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