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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를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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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특집] 지구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지구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Znet」11/26 더그 헨우드

오늘날에 대한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 내부의 분석과 활동들이 일치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다면 우리가 경제적 지구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판가들이나 옹호자들 양자 모두가 전례 없었던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의견일치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
현재 일간신문에 오르내리고 있는 "지구화"라는 개념은 과장된 동시에 모호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무엇인양 묘사되고 있다. 지구화는 각 국가들과 IMF와 같은 다국적 기구에 의해 주도되고 있지만 흔히 국가의 역할 축소로 설명되고 있다. 또한 우리 대부분이 주로 국제적인 경쟁에서 제외된 서비스 분야에서 노동하고 있지만 지구화는 미국의 생활 수준의 하락을 가져온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지구화는 세계주의(cosmopolitanism)의 미덕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그 자체적으로 하나의 불행처럼 환영받고 있다.
나는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각각의 나의 주장들에 관해 조금 확장을 시키려한다. 우선 '지구화'가 새로운 고안물인가 하는 점이다. 이 개념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 중 하나는 지구화라는 말은 흔히 제국주의를 완곡하게 표현하거나 제국주의의 부정확한 대리어로 쓰인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국제적이며 국제화되는 체제였다. 로마제국이 붕괴한 이후 이탈리아 은행가들은 교회의 이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종합적인 외환 기제들을 고안해냈다. 이들 은행가들에 의한 국경을 넘나든 자본의 흐름은 무역의 흐름과 제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1492년 인디언을 학살하고 대륙을 약탈하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 한다. 아프리카의 노예화와 아시아 식민지화 속에 진행된 초기의 축적행위는 유럽의 도약을 가능케 했다.
"지구화"라는 신종어는 과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럼으로써 그것의 범위도 과장되었다. 오늘날 보다 100년 전에는 자본의 흐름이 더욱 자유로웠고 영국 투자자들에 의한 외국인 소유가 훨씬 더 광범위했다. 마치 전체 지구가 하나의 조립라인인 것처럼 세계 곳곳의 원료와 부품을 이동시키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무역량은 미국의 10분의 1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는 완전히 부풀려져 있다. 한가지 척도는 GDP에 포함되는 수출이다. 이것을 고려하면 1992년의 영국은 1913년 보다 아주 조금 더 지구화되었을 뿐이며 오늘날의 미국 또한 여기에 필적하지 못한다. 무역 괴물로 여겨지고 있는 일본은 1950년 영국의 GDP 내 수출 비율 보다 조금 더 높을 뿐이다. 메히꼬는 1992년 보다 1913년에 훨씬 국제화되어 있었다. 물론 수출은 단지 하나의 지표일 뿐이지만 그것으로 따져보자면 현재와 1870년 사이의 차이는 보여지는 것처럼 그렇게 큰 것이 아니다. 현재의 시기를 예측하지 못했던 어떤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자본주의 형태로의 회귀로 사고하는 것, 그리고 1950년과 1960년대의 황금기가 지난 25년의 뒤틀린 예외로부터 나온 일정한 규준이 아니라 황금기 그 자체가 예외였다고 재고하는 것이 훨씬 의미있다.
재고해야할 또 다른 것은 국가의 역할에 관한 것으로 국가가 없는 다국적인 새로운 체제로 국가의 역할이 쇠퇴해가고 있다고 우리는 계속해서 들어왔다. 국가의 긍정적인 역할이 급격히 축소되었다거나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것의 부정적/징계적 역할은 증가해왔다. 미국에서는 이것저것 참견을 하며 집행을 하는 법규들이 증가함과 동시에 정신나간 잔인한 투옥의 붐이 일고 있다. 그밖에도 우리가 유럽연합의 마아스트리히트 협정이나 소위 제3세계 구조조정(물론 제3세계 또한 사적 자본의 이윤을 위해 행동하지만 그것은 국가들이 1세기 동안 행동해온 방식이다)에 대해 이야기를 하든 말든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국가에 의해 강제되었다. 그리고 지난 20년에 걸쳐 국가는 금융 사고가 엄청난 통화수축적인 붕괴(1980년대 S&L(저축 대부조합)구제금융은 독특한 사건이랄 것도 없이 전세계 수십 개의 국가들 되풀이된 것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메히꼬에서는 바로 지금 지나치게 비싼(그리고 논쟁의 여지가 많은) 은행 구제금융이 진행되고 있다)로 돌아서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새로운 역할로 거의 완전히 돌아섰다.
그렇다면 생활수준에 대한 압박은 어떠한가? 우리 제1세계 사람들은 여기서 신중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내가 앞서 주장했듯이 초기의 유럽은 주로 식민지에 의지해 부를 얻었고 우리가 제1세계의 특권의 유지를 위한 신식민지주의의 정확한 공헌에 대해 논쟁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확실히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것이다. 랠프 네이더와 공정무역운동이 팻 뷰캐넌의 수사를 따르면서 NAFTA(북미자유무역지대)와 WTO를 미국 주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미국은 1세기 동안 메히꼬의 주권을 무시해왔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제국주의를 이해할 때 왜 지구화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그러나 나는 메히꼬로의 공장 이전과 중국과의 외주 계약이 미국 제조업 분야의 고용과 소득을 급격히 압박했다는 것과 이러한 조약들이 미국 노동자들의 협상 능력을 감퇴시켰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운동성을 하락시키고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했을까? 계량 경제학자들은 1973년과 1994년 사이에 시간당 실질임금이 하락한 것에 있어 기껏해야 약 20∼25% 정도가 무역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실질임금은 사실상 지난 5년간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75∼80%의 원인에 대한 해명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 주범은 국내적 요인이 주요하다. 나는 무역이 1970년대 초이래 우리의 불행한 경제 역사를 더 설명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는 우리의 80%가 국제 경쟁에서 벗어나 있는 서비스 분야(그 중에서 4분의 1은 행정부)에서 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구화"는 운송부문 탈규제를 추진했던 테디 케네디와 지미 카터, 혹은 공항관제사들을 해고시켰던 레이건, 복지법안의 종식에 서명을 했던 클린턴, 또는 게걸스러운 압제자같은 루디 쥴리아니(미 상원의원 뉴욕시장 출마-역주)와 관련있었던 무엇은 아닐까? "지구화"는 공립대학 축소나 긍정적 차별정책에 대한 적의와 관련있는 무엇이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화와 기술이라는 쌍둥이 악마가 결합한 기업의 다운사이징을 비난했지만 더 강력한 세력들은 더 높은 이윤을 요구하는 월스트리트의 포트폴리오 경영자들이었다(이것이 다우존스 지수가 잘 운영되었던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국제화는 언제 본질적으로 공포스럽고 증오스러운 것이 되었을까? 나는 몇 달 전에 한 여성운동 단체로부터 한 통의 전자우편을 받았는데 지구화가 베이징 여성대회에서 나온 약속들을 훼손하려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베이징 여성대회는 지구화의 일종에서 예외인가? 그 회의에 참석했던 두 명의 여성이 나에게 말하기를 몇몇 라틴 아메리카 여성 단체들과 대회에서 접촉을 했는데, 그 결과 이 여성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국가 내의 폭력에 대항해 조직을 했다고 한다. 지구적이며 훌륭하지 않은가?
케인즈가 말했듯이 영국이 아르헨티나 철도에서 주식을 철수시켜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또한 뱅커스 트러스트가 칠레의 연기금을 경영할 이유도 없으며 GM이 자동차 산업을 인수하면서 한국 경제의 위기로부터 이득을 얻어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다. 대등한 관계일 때는 좀더 음울하다. 테네시 공장에서 경영되고 있는 도요타가 자동차의 생태적 공포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사회적 공포를 차치하자면 그렇게 끔찍하게 여겨지는 것은 정확히 무엇 때문일까?
확실히 더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세계에서라면 교역되지 않았을 것들이 현재 무역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나이키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하고 있는 신발의 유일한 사회적 성과는 필 나이트와 나이키의 주주들에 의해 주장되고 있는 것들뿐이다. 인도네시아의 자원과 노동은 한 시간에 몇 센트를 받고 150달러 짜리 신발을 만드는 것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고, 거주지를 제공하는데 훨씬 더 기여할 것이다. 에어 조단을 전세계에 조금씩이라도 선박으로 수송하는 것은 자연자원의 엄청난 낭비이다. 수출 중심의 발전은 아무런 판로도 제공받지 못하는 빈국의 실물 경제와 사회발전의 길에 거의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역은 그 자체로서 해악적인 것일까? 국경을 넘어선 사람들의 운동은 나쁜 것일까? 나는 좌파가 외국인 혐오에 반대하고 전세계 민중들 간의 모든 종류의 왕래에 대해 포용적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결코 존재하지도 않는 잃어버린 세계를 열망하면서 자기 의존에 대한 상상에 몰두하는 것일까? 다른 말로 하자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적 착취보다는 지구화 그 자체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더이상 "자본주의"를 말할 수 없으며 더구나 사회주의에 대해서 더 말을 할 수가 없다. 대신에 우리는 "지구화"와 "기술"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적인 분석과 변혁적 정치 모두에 해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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