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안 mulu@kdlpnews.org
“지금은 9.11 테러 공격에 직접 관련된 개인적인 존재에 대해 논쟁할 시간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나라를 침략해야만 하고, 그들의 지도자를 살해해야만 하고, 그들을 기독교도로 변화시켜야만 한다. 우리는 히틀러를 징계하는 것에 어떠한 격식도 차리지 않았다. 우리는 독일의 도시를 폭파했으며 민간인을 살해했다. 그것이 전쟁이다. 그리고 이것 또한 전쟁이다.”
9.11 테러 직후 폭스 뉴스가 생방송으로 쏟아낸 말이다. 물론 강도는 덜했지만, 다른 주류매체들도 이같은 논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9.11 테러에 분노하는 미국 국민들의 정서를 등에 업고 미국 언론들은 위험한 애국주의를 선동하고 있었다.
테러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 테러의 충격을 딛고 점차 이성을 되찾고 있는 국민들과는 달리, 언론은 여전히 ‘공포’라는 이름의 마취제를 국민들에게 다량으로 주입하고 있는 듯 보인다. CNN, 뉴욕타임즈 등 미국의 주류언론들은 “미국이 여전히 테러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부시정부의 주장을 무분별하고 광범위하게 유포시키는 한편,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 언론운동 단체인 ‘FAIR(공정하고 정확한 언론을 위한 시민감시)’는 최근 “9.11 테러에 대한 미국 주류언론들의 보도범위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FAIR는 미 언론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모든 자유가 희생되는 국민들의 충격을 정밀하게 조사·분석하지 않고 있다”면서 “미 언론이 9.11 테러에 대한 의미있는 사회적 여론을 조성하려면 그들이 회피하고 있던 문제들을 다시 물어야 하며, 부시정부에 대한 엄격하고 독립적인 보도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러리즘’이라는 용어에 대한 불분명한 사용도 지적됐다. FAIR는 “‘테러리즘’이야말로 일관성을 필요로 하는 말”이라면서 “언론과 비평가들은 테러에 대한 이중잣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미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애국주의 열풍이 정부와 언론의 합작품이라는 분석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언론 칼럼니스트인 노먼 솔로몬도 최근 Znet 기고문을 통해 이라크와 관련한 미국 언론의 보도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 언론이 “1999년 이라크측이 유엔 무기사찰단을 거부하는 빌미가 된 스파이 논란은 도외시한 채 전쟁시나리오만 잔뜩 써대고 있다”면서 “미 언론은 워싱턴의 정책 입안자들이 원치 않는 사실들에 대해서는 평가절하하거나 무시하는 놀랄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비꼬았다. 미국의 좌파 지식인 노엄 촘스키 또한 자신의 저서 ‘프로파간다와 여론’에서 “미국 언론이 국익에 충실한 선전만을 일삼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게다가 9.11 직후 대테러전에 협조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주류 매체들이 정부가 제시하는 제한된 정보만을 보도하기로 약속하며 언론자유를 ‘자진상납’했다는 의혹까지 일고 있어 미국 언론의 국익우선주의에 대한 논란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105호] 9.30 ~ 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