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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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운동하는 이들도 결국 사람이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 출간한 이수일 전 위원장

'남민전 사건'이라는 게 있었다. 이름 하여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사건'. 박정희라는 이가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 대통령의 권한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던, 이른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9호'가 위력을 발휘하던 시절에 일어난 최대의 공안사건이 바로 남민전 사건이다.
 
세상 사람들이 제법 알은체를 하는 고 김남주 시인,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실세(?) 국민권익위원장 이재오 등도 남민전 '관련자'들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2005년 전교조 위원장이었던 이수일 교사. 그도 남민전 사건과 관련해 10년의 옥고를 치렀다.
 

그가 30여 년 전 그 때의 일을 책으로 썼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이다. 부제가 '남민전 사건으로 감옥에 간 교사 이수일의 삶, 사랑이야기'.
 
표지와 책 속 그림도 그 시절 감옥에서 직접 그린 것이다. 남민전 관련자들이 자신의 저서에서 당시를 간략히 언급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실명을 거론하며 구체적 기록한 것은 사실상 최초의 일이다.
 
"내가 진실로 소망했던 건 괜찮은 한 사람의 시골학교 역사교사로 머리칼 희끗하게 늙어가는 것"이라며 "남민전 사건에 대한 선정적 호기심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한 그를 5·18광주민주화운동이 30돌을 맞던 18일 재직 중인 서울 고척고에서 만났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1988년 출소하면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교육운동을 했고 특히 전교조 활동하면서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출소 후 20여 년이 지났다. 그러다가 공안사건자료 접하면서 새삼스레 시간이 지나면 그것(공안사건자료)밖에 안 남겠다 싶어서 쓰게 됐다."

- 2006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공안사건의 주인공에서 민주화 인정까지 심정이 어땠나?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할 만큼 세상이 민주화됐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물론 우리 사건 관련자 모두가 신청하거나 인정받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인했다고 할까 그런 의미는 있다."

- 제목이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이다. 고 김남주 시인이 번역 · 출간했던 프란츠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원제 '검은 피부 흰 가면')'의 여운이 짙은데.
 
"처음 생각한 건 '기록, 학교 갔다 온 이야기'였다.('학교'는 감옥의 은어). 지금의 제목은 본문에 들어가는 소제목이었는데 출판사에서 제목으로 정했다. 파농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대변인이었다. 그것과 우리 민족해방운동 동지였던 김남주 시인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본다."

- 책의 시작이 '내가 죽은 날'이라는 제목의 체포 당시 장면이다.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증거로 봐도 될까?
 
"그런 셈이다. 내 자신도 미처 생각 못한 걸 글을 쓰면서 발견한 게 많다. 아무래도 한 인간으로서 충격이 컸던 것 같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의미나 비중이 컸구나 하는 걸 새삼 느낀다."

- 그렇다면 잠실고로 복직했을 때 트라우마의 현장인 시영아파트를 다시 찾아간 이유는?
 
무슨 운명일까, 잠실고 교무실에서 그 곳이 바로 건너다 보였다. 20년 만에 그 곳에 다시 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모든 일들이 교사로서의 수업과정이었다는 의미 부여를 스스로 해 보기도 했다. 말하자면 교사로서 내가 살던 시대를 몸으로 직접 겪어봄으로써 세상을 보다 넓고 깊게 아는 기회가 되었다고나 할까."

-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았다. 반성하는 듯 했던 그가 최근 다시 원래의 모습을 보이는 행보를 하고 있는데.
 
"'입장 바꿔 생각하면 우리가 반성하지 않은 것처럼 그가 반성하지 않은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역사가 발전한 만큼은 그도 달라지길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일뿐, 그는 스스로 확신범임을 자부하고 있다. '한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싶다."

- 감옥에서 5·18 당시 관련 인사들도 만났다. 올해가 30돌이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5·18은 역사적으로 큰 전환점이 됐고,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받고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이번에 기념행사가 파행으로 치러진 건 역사의 역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5·18정신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았다면 그런 일 있을 수 없다. "

- 남민전에 함께 했지만 지금은 다른 길을 가는 이재오 씨를 어떻게 평가 하나?
 
"일제시대 이래로 그런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한 사람의 인생은 관 뚜껑 덮어봐야 안다는 말 있지 않나. 우린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재오가 다시 어떻게 돌아올 지 누가 알겠나."

- 학교생활은 어떤가? 교사로서의 삶을 돌아본다면?
 
"학교생활에서 아이들의 생명력으로부터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그건 교사로서 특권이고 행복이다. 반면 학교로 돌아온 행복감도 있지만, 교사로서의 고뇌와 좌절도 크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가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입시교육이 심화돼 교육적 상황이 어려워진 측면이 있고, 내가 교사로서의 개인적 역량이 부족한 탓도 크다. 퇴직이 가까워지면서 좀 덜 부끄러운 교사로 마무리하고 싶은데 그저 그런 교사로 끝날까싶어 초조하다. 내가 농촌 출신이다 보니 항상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큰 편이다. 가능하면 농촌학교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하고 싶다."

- 전교조 위원장을 역임했다. 좌파·빨갱이 운운하는 이념 공세와 전교조 둘러싼 지금의 시국상황을 어떻게 보나?

"새삼스레 얘기할 필요 있겠나. 그러나 누구도 역사의 큰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강물이 때로는 역류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지만 결국 냇물은 강물로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 역사에 대한 믿음은 버릴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인간'이다. 운동하는 이들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다. 남민전이라는 특정 사건이나 감옥살이에 대한 어떤 정보나 지식을 주기 위한 게 아니다. 독자들도 여러 인간상들을 통해서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과 그에 대한 어떤 문제의식을 발견했으면 싶다. 운동도 결국 그걸 떠나서는 안 된다. 결국 이 책은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동시에 내 스스로 미워하고, 가련히 여기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젊은 날의 내 모습이자 현재의 나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사진 유영민 기자 youngbitt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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