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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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정신건강] 개기식 - PTSD 겪은 한 활동가의 수기


레프트119(준)

▒ 소개글: 이 글은 ATS(Activist Trauma Support)의 기관지에 실린 글로, 경찰 폭력에 의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던 활동가의 수기이다. 이메일 주소로 필명을 대신한 지은이는 개기식(total eclipse)이란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삶을 완전히 가려버린 절망적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활동가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상호지원의 필요성에 대해서 보다 많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기를 바란다.[레프트119(준)]


개기식(total eclipse)

desertfish@riseup.net

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중인가를 알 수가 없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붕괴되었다. 난 세계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으며 결코 다시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는 항상 이렇게 머무를 것이며, 난 다시는 춤을 출 수가 없을 것이다. 난 다시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을 다시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난 다시는 웃지 못 할 것이다. 나의 세계는 고통과 눈물들로 채워져 있다. 나의 세계에서 난 혼자다. 나의 세계는 어두운 바다에 떠 있는 검정색 탑 모양을 한 감옥이다. 내 삶은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삶이 아직도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외롭다. 고통이 예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왜 난 거기에 갔을까? 왜 난 그 거리의 중간에서 멈추지 않았을까? 다리 아래를 내려다본다. 난 멈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너무 외롭다. 너무 외롭다. 난 혼자다. 고통의 바다에서 비명을 지르는 난 혼자다. 외로움이 날 갈기갈기 찢는다.

누구도 내게 관심이 없다. 난 사람들이 무섭다. 어느 누구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난 몸을 급히 숨긴다. 만약 사람들이 내게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다면, 난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게 단어는 사라지고 단지 눈물과 비명만이 남았다. 난 사람들 앞에서 나의 아픔을 비명 지를 수조차 없다. 그래서 난 숨는다.

내 집은 더 이상 나의 집이 아니다. 어떻게 내 친구들이 내가 무서워하는 사람들로 변했을까? 난 나의 방을 떠날 용기도 없다. 복도에서 누군가를 만날 위험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난 혼자고, 난 다시는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무언가가 날 조종하고 있다. 검은 유령이 날 따라오면서, 그가 원할 땐 언제라도 날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이러한 일은 어느 순간에도 일어날 수 있다.

난 더 이상 밖에 나갈 수 없다. 난 언제라도 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땅바닥에서 통곡과 발작을 할 수 있다. 만약 그러한 일이 길거리에서 일어난다면 어찌할 것인가? 침대에 머무르는 것이 낫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울 수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난 마치 이전에는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운다. 무언가가 내 위장에서 몸 밖으로 나오려 한다. 토할 것 같다.

난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난 모든 사람이다. 모든 죄수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경찰에게 폭행당했다. 모든 사람들이 고문을 당했다. 이러한 느낌은 몇 주에 걸쳐서 멈추지 않는다. 난 부끄럽다. 난 남들에게 약해 보이고 싶지 않다. 난 그들이 우리들에게 자행했던 것들이 내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난 강한 여자였다. 그러나 이제 난 아무것도 아니다. 누구도 날 과거의 나로 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그 일은 몇 년 전에 일어났지만, 지금 그 일에 대해서 쓰려니 토할 것 같다. 그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 일에 대해 내가 쓴 것을 읽노라면 괴상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내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에 있는 것 같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내 파트너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그러나 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다. 당신의 곁에 있는 누군가를 당신이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친구’라는 말은 날 울게 만든다. 난 어떤 친구도 없다. 사람들은 나를 보살피고 나를 걱정한다. 그러나 난 그들을 볼 수가 없었다.

삶을 가치 있게 하였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으며, 그 빈자리에 고통이 채워졌다. 외로움이 가장 힘들었으며, 살아가는 것에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이러한 감정들을 추스르는 데 수 개월이 걸렸다. 난 심리치료사를 찾아 갔다. 그녀는 내가 자살충동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행동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심리치료를 받는 동안 난 그녀에게 당장 꺼져버리라고 말하는 대신에 그녀를 믿었으며, 시간당 50유로(400유로까지 지불한 적도 있었다)를 지불했다.

마지막으로 난 “우리들”중의 한명인 활동가 X를 만났다. 그는 내게 매일 일정시간에 10분 동안 울라고 말해 주었다. 난 매일 아침에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0분이 지나 알람이 울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삶을 이어갔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게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내가 나의 삶과 나의 눈물에 대해서 통제를 다시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내 등 뒤에서 언제든지 검은 유령이 나를 덮치리라는 느낌은 사라졌다.

난 모든 것을 통제해야만 했다. 집을 나서기 2시간 전부터 준비를 한다. 아무것도 잘 못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 확신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난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일도, 요리도, 청소도 할 수 없었으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난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난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었으며, 훌훌 털고 일어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었다. 사람들이 내 상처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내가 다리가 부러졌다면, 난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파트너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금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말할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으며,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거나 혹은 사람들에게 실망할까봐 두려웠다. 그보다는 혼자 있는 게 나았다.

난 경찰과 마주치는 것이 무서웠다. 왜냐하면 경찰을 보면 내가 겪은 일들이 다시 생각나고, 내가 겪은 모든 것들이 또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X는 나에게 매주 경찰 3명에게 길을 물어보라고 하였다. 처음엔 경찰에게 길을 묻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그 경찰은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 서서히 난 나의 뇌를 다시 프로그램화 하였다.

난 2주에 한번 바하플라워(bach flowers) 요법을 받았으며, 이 역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난 학습도 했으며, 이러한 학습은 내가 무언가 유용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책은 나를 공격하지도 않았으며, 나를 실망시키지도 않았다.

그 일이 있은 지 1년 후에 열린 재판이 있기 전에 난 심리치료를 받았다. 왜냐하면 나를 죽이려고 했던 자들을 법정에서 마주칠 때 내가 이성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난 EMDR 치료과정을 가졌으며. 이 치료는 내게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난 법정에서 침착할 수 있었다.

무엇이 내게 필요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도심지는 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는 데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난 내가 믿고 교감할 수 있으며, 나를 돌볼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필요했다. 그리고 내게는 나의 배경을 존중하고 트라우마 치료에 있어서 경험이 있는 전문가의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트라우마와 관련된 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절망적인 몇 주가 지난 후에야, 난 인터넷을 통해 트라우마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고 나의 징후들과 거의 일치하는 트라우마 징후들의 체크리스트를 발견했다.

왜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지 못했던 걸까? 거기에는 내가 고통 받는 것의 이름이 있었다, 난 미친 것이 아니었다. 안심이 되었다. 난 부끄럽게 느낄 필요가 없었으며, 내가 겪은 것은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안다는 것이 극복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내 고통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은 날 견딜 수 있게 한다. 내가 겪은 것은 질병처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며,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길은 있었다.

난 지금 삶으로 돌아왔다. 난 다시 사람들에게 갈 수 있다. 시간은 걸렸지만 난 돌아왔다. 예전처럼 정치적 행동을 활발히 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내겐 가야할 길이 남아있지만 ... 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내 자신에 관해서. 사람들에 관해서. 우리들의 투쟁에 관해서. 내가 겪은 일들은 날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난 내가 누군지와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난 내가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지를 안다. 난 내가 강하다는 것을 알며, 가끔은 내가 나약하다고 느낄 때도 내가 괜찮다는 것을 안다. 난 우리가 올바르다는 것과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

* 번역: 레프트119(준)
이 글은 사회실천연구소 간 월간 이론번역지 ‘실천’ (2012.1 통권62호)에 실렸습니다.  


2012. 1. 20

(가칭) 레프트119 준비모임 - 활동가 정신건강 긴급지원시스템
http://cafe.daum.net/left119

‘레프트119 준비위 결성을 위한 모임’은 활동가의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가칭)레프트119 준비위 결성에 정파. 소속, 입장의 차이들을 뛰어 넘어서 함께 할 것을 노동운동을 포함한 범사회주의운동진영의 단위들과 활동가들에게 제안합니다.
▒ 레프트119(준) 제안서 전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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