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극의 그늘 아래 놓인 세계의 운명을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을 통해서 보았다. 미국에 대한 적대행위의 '혐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오사마 빈 라덴은 악마가 되었고, 그와 같은 나라에 살던 사람들은 집단 살륙을 당했다.
'짐은 곧 법이다'가 아니라 '미국은 곧 법이다.'
굳이 아프가니스탄이나 팔레스타인까지 입에 올릴 필요도 없다.
주한미군은 서울 한 복판에 미군 주거용 아파트를 건설한다고 한다. 한국정부가 간여할 사항이 아니라고 미군측은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일방적으로 그럴 수가 있느냐는 국민 여론이 미군을 짜증스럽게 만든 모양이다.
한강의 수많은 다리들 중에서 다리를 건너 서울 도심을 향해 직진할 수 없는 도로를 가진 유일한 다리가 동작대교다. 우리의 운명을 상징하듯 휘어진 도로를 따라 우회하면 옆으로 미군 골프장이 보인다.
우리 국민들은 누구나 영종도 신공항으로 가는 도로를 이용하려면 6천1백원의 통행료를 납부해야 한다. 경찰관도 내야하고, 소방관도 내야하고, 현역군인도 내야하고, 조선일보 기자도 6천1백원 내야 지나갈 수 있다. 그 6천1백원을 내지 않는 유일한 사람들이 있다. 미군과 그 군속들이다. 처음부터 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미군들이 그 6천1백원을 내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해왔을 때 신공항도로을 관리하는 민간회사는 당연히 거절했다. 그러자 미군은 한국정부를 물고 늘어졌고, 외무부(미국이 아니고 한국이다)는 도로를 운영하는 민간회사에 미군의 통행료를 면제해주라고 통보했다.
한미행정협정에 미군은 한국의 모든 도로를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데, 돈을 받아서 '부자유로이' 이용하게 하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미군은 돈 안내고 '자유로이' 이 유료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아직도 6천1백원씩을 꼬박꼬박 물며 '부자유로이' 이 도로를 이용하는 우리국민들은 '이동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으니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라도 해야하는 걸까.
한 술 더 떠서 미군은 영종도 국제공항 주차장의 주차료도 면제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고 한다.
미군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미군의 용산아파트 건설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대문짝만한 광고가 신문에 실렸다.
물론 미군이 낸 광고도, 그 아파트 건설을 도급받은 건설회사가 낸 광고도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재정의 지원을 받고 있는 단체들의 이름이 그 아래 줄줄이 명기되어 있다.
모르긴 몰라도 몇 배는 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이 부지기수다. 미군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짓는 그 아파트의 절반쯤은 직장과 집을 잃어버린 채 겨울을 거리에서 나야 하는 노숙자들에게 할애하자는 의견이라도 있지 않을까 살펴보았지만, 없었다.
미군의 아파트 건설 계획은 용산을 새로운 도심으로 개발하려던 서울시와 정부의 계획을 우스운 꼴로 만들고 말았다. 미군의 윤허도 없이 함부로 국토이용 계획을 수립한 우리정부의 경솔함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1극의 그늘 아래 놓인 세계의 운명을 탓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