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부언 할아버지가 화났다. 월동맞이 비닐하우스 수리가 한창인데, 드릴을 사용해도 쇠파이프에 걸린 녹슨 못 하나만 빠지질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드릴을 다시 잡으며 “일하는 거 사진 찍으려면 이런 걸 찍어야지”하며 폼을 잡는다. 기자가 피식 웃으며 드릴로도 안 빠지면 어떻게 해요 하고 묻자 ‘두들겨 패서 빼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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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으니 처음 강부언 할아버지를 만난 날이 떠오른다.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작은 체구, 백발의 할아버지가 방패든 전투경찰과 맨몸으로 맞서고 있었다. 저러다 경찰이 할아버지를 때리기라도 하면 큰일 나겠다 싶었지만, 그 앞에 정렬해 있던 경찰은 이미 할아버지의 기에 눌린 때였다.
#. 금귤밭
제주도 강정마을에 사는 강부언(70) 할아버지와 정동신(70) 할머니 부부.
강정천 인근 그들의 밭에 주렁주렁 매달린 금귤, 일명 ‘낑깡’은 아직 퍼런색이다. 부부는 계속 금귤 농사만 지었다. 한라봉, 천혜향 등으로 바꿔 지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3~4년 동안 벌이가 없게 된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한 작물 농사만 짓게 되었고, 어느새 금귤 농사의 달인이 되었다.
“물려받은 땅 한 평 없어서... 금귤농사 계속 지었는데, 젊었을 때 남의 일 많이 해줬지. 품팔이 알지? 금귤은 상인들이 와서 사 가지고 가. 저울로 떠서 팔기도 하고, 밭떼기로 팔기도 하고. 1년에 한 번 돈 버는데, 한 1천3백만 원 나오지. 한 달에 1백만 원 버는 꼴이야. 생각보다 얼마 못 벌지? 근데 우리는 50만원이면 한 달 살아. 내 집 갖고, 집 지은 지도 이제 만 3년 됐어”
풍문에 서귀포시는 귤농사로 제주도 타 지역에 비해 부농이 많다던데, 그것도 있는 집 얘긴가 보다. 사실 대한민국 1% 재벌에 비하면 부농이란 기준도 애매모호 하다. 넉넉지 않게 살아 그런지, 할아버지는 벌써 아들에게 땅을 물려줬다.
“큰 아들 다 줘버렸어. 내 이름으로 된 땅은 없어. 그래도 집과 대지는 내 이름으로 되어 있지. 명의만 큰 아들거지”
해가 중천에 떠 날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비닐하우스가 만들어준 그늘 한편에 앉아 배 한쪽씩 나눠 먹는 사이에도 강 할아버지는 이곳저곳 살피며 바빴다. 그 모습을 보던 할머니가 나지막이 말했다.
할머니는 육년 전 뇌경색으로 반신 마비가 온 뒤 말도 늦고 거동도 불편하단다. 기울기울, 느릿느릿 걸어도 할아버지 말벗 해드리려고 일할 채비 하고 밭으로 나왔다. 집안일도 할아버지가 도맡아 한다.
“요즘 이렇게 걸어 다니고 많이 나아졌어. 좀 살만하지. 할아버지도 7년 전 위암 수술해서 아팠지. 다행히 위암 초기였어. 할아버지한테 미안하냐고? 그렇지. 근데 어쩌겠어. 같이 살다 생긴 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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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맞은편 밭에서 일하는 주민과 대화중이었던 강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졌다. 밭에서 일하나 집에서 일하나, 마을회관에 모이나 의례회관에 모이나.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얘기다. 제주도민 10년, 강정 주민 5년의 해군기지 반대 싸움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놨다.
“공사를 방해한 것도 아닌데 마을회장 잡아넣고. 나쁜 새끼들. 그런 놈의 법이 어디 있어. 제주도만 사용하는 법이야? 폭행도 안 했는데 폭행했다고 거짓말 치고. 아이고 경찰, 해군 그 놈들 그냥”
지난 8월 24~25일, ‘불법’ 논란중인 해군기지 공사가 기습적으로 재개되자 이를 막기 위해 나섰던 강동균 마을회장 등 4명의 주민, 평화운동가들이 강제 연행됐다. 공사 재개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이들을 무조건 연행했고, 연행자를 석방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경찰은 끈질기게 마을회장 연행을 시도했고, 이를 막던 평화운동가 김 모 씨는 발버둥 쳤지만, 휴지조각 구겨지듯 경찰차에 태워졌다.
#. 자리돔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경운기에 탄 할머니의 얼굴이 평온해 보인다. 중덕 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 평화 염원 100배, 기지 반대 1인 시위 현장, 천주교의 평화 미사장을 따라 의례회관을 지나면 ‘해군기지 결사반대’ 노란 깃발이 펄럭이는 부부의 집이 나온다.
집 바로 옆 텃밭엔 ‘우영팟’에 두불콩과 천혜향이 열린다. 두불콩? 할아버지 할머니가 열매를 따 입을 벌리자 아직 익지 않은 하얀 콩알이 쏟아진다. 어머니가 지어준 밥을 붉게 물들였던, 바로 그 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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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옛날 사람들이야 제주도 사투리 쓰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표준어 써. 이 콩 봤지? 밥에 넣으면 좋아. 다른 건 없냐고? 육지에서는 고추 농사 많이 하는데, 제주도에서는 고추가 안 돼. 심어 말려도 건조를 못 시키지. 곰팡이가 피더라고”
출출한 때, 밥 먹고 하자는 달콤한 말이 흘러나왔다.
“반찬이 없어. 기자가 우리 집에서 밥을 먹을 줄 누가 알았어. 그러니까 돈 많다고 과시하지 말고, 사람 멸시하지 말고 살아야 해. 사람은 이래저래 다 만나며 살게 돼 있어. 이거 먹을 줄 줄아?”
제주도 서민들이 흔히 먹는 ‘자리돔’이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냉면 같은 자림돔물회가 특히 인기다. 부부는 작은 자리돔을 간장에 조리고, 크기가 작은 깻잎도 주물러 무쳤다. 호박잎국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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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한 자리돔만큼이나, 강정마을 주민에게 중덕 해안가와 구럼비는 삶 그 자체였다. 제주도 표선에 살았던 김 할머니, 강정마을에서 나고 자란 강 할아버지에게 이곳은 기억 그 자체이며, 추억이 서린 곳이다. 칠십 평생을 나고 자란 곳이 한 순간에 굴삭기로 파헤쳐지는 현장을 보니 화가 치밀고, 열이 뻗친다. 강 할아버지는 그 마음을 ‘앙불이 난다’고 말했다.
“우리 어렸을 때 거기서 뛰어놀았어. 중덕 갯바위서 고기 많이 낚아 먹었지. 강정천에서 헤엄치고, 은어도 잡아먹고. 그렇게 살던 곳인데, 변해 버리려고 하니까 앙불이 저절로 나오지. 추억도 다 없어지는 거고. 생각을 해봐. 오늘까지 조용히 살던 마을인데, 저렇게 공사해 다 부순다는 데 어떻게 안막을 수가 있겠어. 계속 막아야지. 앞으로 강정이 없어질 수도 있는 건데”
강 할아버지가 ‘앙불’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것’ 때문이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기도 했다. 내 눈 앞에 있는 해군과 경찰이 나와 같은 사람인데, 그들은 사람이길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법대로 안 하고. 도지사든, 도의원이든, 해군이든 주민들하고는 한 번도 논의 안 하고 막 밀어붙이면서 주민들을 아주 무시해버리는 거. 이게 내 땅이고, 우리들의 땅인데, 그렇게 무시당하는 게 억울하지. 우리가 역사적으로 한 70년을 살아온 땅인데, 생각을 해 봐요. 우리를 인간 취급을 안 하는 데 어떻겠어. 죄 없는 사람 잡아 가두고, 공권력 투입해서 죄 다 때리고.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냐고”
어떤 이는 깨지는 구럼비 바위를 보며 구럼비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우두두두두두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중덕 삼거리서 밥을 먹으려니 체할 것 같다 했다. 구럼비 바위가 깨지기 직전, 강 할아버지는 울었다.
“공사가 잠깐 중단 됐을 때니까. 중덕 바다 바라보면서 단 둘이 인터뷰 했는데, 울었어. 내가 그거 쳐다보면서 인터뷰 할 라니까 한심스럽더라고. 지금 구럼비 바위와 바다가 안 보이니까 눈물은 안 나는데, 그때는 그거 쳐다보고 얘기할 라니까... 그거 깨진다고 하니, 이거 참 사람이 뭐하는 짓인지. 굴삭기 돌아가는 거 보면 참. 그거 다 묻혀버릴 거 아니야? 전부 묻혀버린다고 그게. 역사가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거야”
#. 비밀조직
‘해군 기지 찬성하면 안 돼요?’하고 묻자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냐며 할아버지가 눈을 흘겼다. 지역 개발도 된다잖아요 하니까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찬성하면 되나. 지역 개발은 절대 안 돼. 해군 기지 들어오면 모든 게 다 사라지고, 땅값도 더 싸질 거야. 이 밭 거저 가져가라고 해도 안 가져갈 걸? 찬성하는 사람들은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글쎄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지 모르겠어. 그 사람들은 누구 말마따나, 처음부터 술 한 잔 같이 마시고, 여행 같이 가고 그러니까 그 맛으로 찬성한 것이지. ‘이야,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딨노’ 했을 수도. 세상이 없어진 줄은 모르고 말야”
강 할아버지에게 군은 ‘비밀조직’이란 한 단어로 표현됐다. 은밀한 그 조직은 민간인과 한 데 살기 어울리는 조직이 아니었다. 직간접적으로 전쟁과 4.3항쟁을 경험한 세대가 가지는 군과 경찰에 대한 적개심과 평화 위협에 대한 체감은 정직한 한 마디 말로도 표현하기 부족했다.
“해군기지? 처음부터 반대해야지. 해군이 들어온다는 데 좋을 게 뭐 있어. 군은 비밀조직이거든. 비밀조직과 민간인들과는 관계가 전혀 멀어요. 가까울 수가 없지. 전부 비밀이거든. 그리고 해군기지 들어오면 비행장 들어오지, 화약고 들어오지. 전쟁 일어나면 폭탄이 제일 먼저 날아온다고”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나는 말을 못해’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던 강 할아버지를 몇날 며칠 따라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만 보면 과격해 지는 강 할아버지, 안 무서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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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하고 싸울 때는 무섭질 않아. 무서우면 못 싸워. 솔직히, 경찰만 보면 이빨로 막 뜯어먹고 싶은 심정이야. 해군도 무섭질 않아. ‘잡혀가면 어쩌지?’ 그런 마음 들면 못 싸워. 그 순간만큼은 겁이 없지. 말했잖아. 주먹은 가깝고, 법은 먼 게 지금이라고. 그리고 늙은이 잡아가면 뭘 하겠어. 젊은 사람들은 막 잡아가잖아. 나도 젊었으면 한 열 번은 경찰서 왔다 갔다 했을 거야. 이젠 늙고 머리가 새서...”
며칠 전 기자회견 때 경찰병력이 에워싸자 할아버지는 또 욕을 막 퍼부었다. 직책이 낮은 경찰이 아닌, 직책이 높은 경찰에게 욕 하고 항의하는 게 할아버지가 지키려고 하는 원칙이다.
“내가 ‘야 이놈들아. 부끄러운 줄 알고 좀 창피한 줄을 알아라. 너희 한 번 뜨는데 세금이 얼마나 들어가는 줄 알아 이놈들아’ 했지. 대꾸 안 해도 얼굴에다 대고 막 씨부렁거렸지. 때리지도 못하니까 성질나고... 근데 경찰 하나가 더 욕하라고 하더라고. 별거 아닌 일에 계속 출동하라고 위에서 지시하니까 자기들도 신경질이 난다나 뭐라나. 나보고 더 떠들래”
경찰만 보면 열혈청년이 되었던 강 할아버지가 요즘 구럼비 바위가 막혀 힘이 빠져버렸다고 했다. 제주도 말로 ‘맥 풀렸다’며 인터뷰도 그만 하자고 했다. 마음이 안 좋으세요 하자 할 말도 없고, 다시 밭일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해군이 시급히 구럼비 바위를 깨려는 것도 이 때문일까.
누구 말마따나 그래도 삶은 계속 되듯, 우는 구럼비를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강 할아버지는 여전히 바쁘다. 문 밖을 나서자마자 다시 밭일 나갈 채비하고, 마실 온 주민과 대화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매일 저녁 열리는 촛불 문화제에 참석하고, 기지 반대 종교인 행사에도 참여하고, 기지 반대 삼보일배 하러 서귀포시에 나갔다. 송두리째 바뀐 강 할아버지의 삶은 기지 반대 운동과 얽히고설켜 흘러가고 있다. (미디어충청, 참세상 합동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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