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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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85호 크레인 위에서 엄마에게

[기고] 엄마. 보고 싶을 때가 있어. 한번만, 잠깐만이라도

엄마, 혹시 나 보여?
보여도 보지 마.

엄마 못보고 산지가 30년이 넘었네.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 나이더라구. 엄마 가버린 나이. 나 스무살 때. 그땐 왜 그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나몰라. 쉰둘인데. 쉰둘일 뿐인데...

그냥 엄마 많이 아프니까, 아부지 뵈기 싫어 죽겠는데 자꾸 집에 와서 있으라 하니까, 졸려 죽겠는데 새벽기도 가라 하니까, 복수찬 데 돌미나리가 좋다고 한겨울에 그거 뜯어오라 그러니까, 병원 갈 돈도 없는 집구석이니까, 갈거면 빨랑 가라고 생각한 적, 솔직히 많았어. 그게 젤 걸리고.

엄마 임종 못 본 거 다행이라고 생각해. 새끼들은 죄다 이기적이니까. 이왕 안 볼 거면 염하는 것도 안 봐야 했는데 그지같은 외삼촌이 억지로 끌고가서 봐 버렸네. 복어처럼 땡땡해선 시퍼런 심줄이 미나리처럼 돋아났던 배가 시커멓게 푹 꺼졌더라구. 난 그게 다 아부지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엄마 뱃속으로 낳지도 않은 언니들 키우면서 쌓인 스트레스거나. 엄마 속이 그렇게 썩어 문드러진 게 나 때문이란 생각 끝까지 안하려 했지.

엄마. 엄마두 그거 알았어? 엄마를 자전거 뒤에 싣고 다니는 걸 내가 참 좋아한 거. 평생 40kg이 안 넘어 바람에 날릴까 한손으로 등을 받쳐야 했던 우리 엄마.

그냥 그렇게 달려서 도망가고 싶었다. 어디든. 그걸 할 수 없었던 나는 번번이 엇나가 홀로 탄 자전거를 하염없이 굴려 갈 수 없는 길까지 가곤 했다. 열다섯살 때. 꽤 멀리 갔었다. 안 돌아가려 했으니까.

근데 엄마가 보고 싶더라.
내가 자전거 안 태워주면 그 무거운 짐을 들고 혼자 시장에서 돌아올 엄마. 산을 내려와 긴 외출에서 돌아오던 그 노을 서럽던 저녁. 장날이었던가 봐. 오가는 사람이 제법 많았던 먼지나던 신작로. 집 언저리쯤에서 눈으로 엄마를 찾는데 엄마보다 먼저 본 게 저만치에서 툭하고 떨어지던 주황색 나이롱 바가지였어. 흩어지던 콩나물. 콩나물 위에 떨어지던 눈물.

부산 와서 첫월급. 그 눈물나는 돈을 받아 엄마 쉐타 사고 법랑냄비 사니까 없더라. 그걸로 내가 지은 죄 갚았다고 생각했어. 다. 엄마 유품 정리하는데 그딴 게 구석구석에서 나오대. 쉐타는 반다지에서, 냄비는 선반 위에서 박스 채로, 중학교 때 신문배달해서 사준 털신은 농안에서...

왜 그딴 걸 하나도 안쓰고 죽었냐. 이누무 이상한 엄마야.

정신 놓았다가도 진수, 진수 부르며 눈을 뜨려 기를 쓰던 진수도 갔다. 진수는 니가 좀 거둬줘라. 나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그 새낄 어떻게 거두냐. 엄마 찾아 갔으니까 엄마가 거둬.

첫 징역 살때 큰언니가 면회를 왔더라. 외포리에서 그 먼길을 오면서 멀미를 으찌 했는지 입술까지 하얘. 제대로 말도 못하고 허리 펴고 서 있지도 못하고 면회시간이 끝났는데 가면서 그러대. "그르니 엄마가 일찍 죽길 을마나 다행이냐"...그런 말은 박혀. 잘 빠지지도 않고.

그러고보니 살면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날보다 엄마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 싶은 날이 더 많았네.

근데두 엄마. 보고 싶을 때가 있어. 한번만, 잠깐만이라도, 안 되면 먼발치에서라도 봤으면 좋겠다 싶은 날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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