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이 게시판을 통해 전북 참소리, 미디어충청, 민중언론 참세상, 울산노동뉴스의 기사와 관련된 토론을 직접 하실 수 있습니다.

 

묻어뒀던 신념을 꺼내 희망을 말한다

유성기업 늙은 노동자의 노래 (2) “신뢰의 주춧돌이 되자”

“공돌이로 그렇게 살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고 우리도 일어났다”

2011년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또 일어났다. 임금인상과 복지개선을 위해 87년 노동자 대투쟁 파도에 몸을 실었던 노동자들은 이제 40대~50대 후반의 ‘늙은 노동자’가 됐다. 이들은 다시 야간노동을 없애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자며 ‘주간연속2교대 및 월급제’ 싸움에 나섰다.

두 번의 경찰병력 투입과 전 조합원 연행. 김봉수(53세) 씨, 엄병주(46세) 씨, 이재윤(57세) 씨의 목소리로 유성기업 노사관계와 노조의 역사, 늙은 노동자의 진한 한숨을 들어본다.

낯선 곳에서, 다시 노사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정부의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물리적 탄압이 극렬했고, 한국의 노동운동도 급성장했던 90년대, 임금인상과 복지를 따내기 위한 요구는 서서히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이 월등하게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의 권리, 지위 향상을 위해 요구해야 할 것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유성기업은 94년도 충북 영동에 먼저 공장이 세워졌다. 2000년 충남 아산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기 시작하면서, 낯선 곳에서 다시 노사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단순히 회사만 옮기는 게 아니라 모든 생활이 다 바뀌는 거예요. 노조가 투쟁하면서, 사원 주택을 요구했는데, 대신 이전 자금으로 1천5백만원씩 받은 것 같아요. 지금도 주말부부가 많아요. 이전하면서 회사에서 교통수단을 2년 동안 대주기로 했어요. 하지만 노조가 힘이 세고, 조합원들이 똘똘 뭉치니까 주말에 부천으로 가는 조합원들은 지금도 차량을 제공받죠.”

“이전하면서 가족들과 갈등도 많았죠.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고. 그래서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충남 천안, 아산, 경기도 평택 3군데에 나뉘어 살죠.”

“아산으로 내려오면서, 나이 많은 노동자와 젊은 노동자들 간의 임금 인상분에 대한 차이가 발견됐어요. 특히 젊은 노동자들이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단일하게 일률적으로 임금이 인상되어야 한다고 문제제기 해 바꾸었죠.”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사수와 야간노동 철폐를 위해 투쟁을 시작했다.

아산으로 이전하면서 특이했던 건, 지역에 신생기업이 많았다. 물가상승률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지만, 그래도 전국적인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평균임금은 계속 상승했고,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임금 기준이 되었다. 이 혜택으로 신생기업에 다니는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이 유성기업 노동자보다 더 높기도 했다. 임금 인상과 단체교섭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를 지켜내는 일은 일상적인 노조 활동이었다.

또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은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2년간 4명이 돌연사 하거나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 영동공장 소속으로 2007년 사망한 이 모 씨의 사연에서, 노동자들의 강도 높은 노동과 야간노동의 폐해를 엿볼 수 있다. 동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야간노동이 스트레스, 우울병, 각 종 질병, 사망을 야기한다는 것은 수사가 아니에요. 그때 27세 젊은 나이였고, 아내와 자녀도 있었고, 어머니도 부양했죠. 부검 결과 심비대와 관상동맥경화에 의한 허혈성심질환이었어요.”

“주조부에서 고인이 일했는데, 뒤틀린 자세에서 일을 해야 했고, 소음, 분진, 진동 등 작업환경도 열악했죠. 거기에 주야 맞교대 하니까 건강도 최악에 신체리듬이 다 깨졌죠. 당시 유가족은 노조를 신뢰해서 노조와 모든 상의를 하고, 노조가 회사가 교섭했죠.”

아쉬움, 그래도 회사는 매번 어렵다고 한다

아산에 와서도 이곳저곳 주저 없이 연대투쟁을 다녔다. 없는 자들의 연대속에서 성장한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에, ‘연대’가 발휘하는 파도와 같은 힘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우리는 금속노조 지침과 방침은 역대적으로 원칙으로 삼고 투쟁했으니까.”

“우리는 아산에 내려와서도 연대 많이 다녔어요. 특히 세원테크, 경남제약에 용역이 투입되고 치고 박고 싸울 때, 우리도 적극적으로 같이 했죠. 대성엠피씨 투쟁 때도 마찬가지예요. 세원테크 투쟁으로 충남지역에서 처음으로 지역 총파업을 하기도 했잖아요.”

“조합원들은 소위 말하는 ‘외부 활동’, 연대 투쟁 등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2000년대 현장 투쟁, 지역-전국 연대 투쟁 등 노동자의 투쟁은 계속됐다. 하지만 유성기업 늙은 노동자들은 아쉬움이 남는다.

“2000년도 공장이전 문제와 관련해 회사와 투쟁할 때, 회사의 탄압이 분노로 모아졌어야 하는데 노조에 대한 불만으로 오면서 조직적으로 혼란이 좀 있었죠. 또. 금속연맹에서 금속노조로 급하게 산별전환 되면서 마찬가지로 현장에 혼란이 있었어요. 그리고 점점 개인주의화 되는 양상으로 가더라고요.”

“현장 조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문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바라볼 때는 노조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죠. 노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공장에서 관리자들은 노조를 막 대하지 못했죠.”

“어쨌든 단일노조는 힘이 약하고 깨지니까 산별노조로 가자고 해서 금속노조로 갔는데. 역으로 현장의 투쟁력은 약화되는 방향으로 갔죠. 상급단체가 가지는 원칙과 다르게 투쟁하는 걸 보면서 불신을 가지게 됐죠. 금속노조에 대한 불만은 굉장히 높은데, 우리야 간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 책임인 것 같기도 하고...”

노사 힘 관계는 서서히 변해왔지만, 그래도 회사는 노조를 두려워했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에 각인된 역사였기 때문이며, 거저 얻는 것 없이 매번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해왔기 때문이다.

“노조 교육활동과 간부 활동시간이 많이 늘어났어요. 근로환경, 복지 문제 관련해서는 특히 노조의 힘이 쌨죠. 일상적으로 노조가 회사와의 힘 관계에서 우위에 있었어요. 그러나 결론은, 투쟁하지 않으면 순순히 노조의 요구를 들어준 적이 단 한 반도 없다는 사실이에요. 10년, 20년이 바뀌어도 회사는 매번 어렵다고 하죠.”

열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도 잊을 수 없는 것

한 낮의 뜨거운 열기에 숨이 막히고 어질어질 하다. 비닐하우스 농성장에 있으면, 혓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 노동자들은 왜,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나이 먹고 근속년수 된 사람은 힘들게 싸워서 매년 차곡차곡 노동자의 권리가 향상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지금 안 싸우고, 허무하게 무너진다면 용납이 안 됩니다.”

  2011년 봄, 두번째 경찰병력이 투입됐다. 포크레인으로 철조망을 뚫고 들어오는 경찰. 그 옆에 회사 관리자들이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용역업체 직원도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분노가 끓어오르지. 회사는 합의했던 주간연속2교대제 및 월급제도 부정했어요. 그것도 현대자본과 결탁해서 말이죠. 그간 유성기업 노사 관계를 봤을 때, 충분히 노사가 해결 할 수 있는 문제였죠. 이번에 회사의 노조 깨기가 완전히 드러난 것이죠. 특히 공권력 두 번 맞은 우리는 회사와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 상당하죠. 그래도 20년을 싸우며 지켜왔는데, 다 허구가 될 판이예요. 회사는 역시 노동자를 기계로 밖에 보지 않았다는 것이 또 확인 된 것이죠. 우리를 이윤을 위한 도구일 뿐이예요.”

“유성기업 경영진은 타사보다 합리적이라고 느낀 게 있어요. 지금도 개별 복귀한 사람들은 그런 감정에 있는 사람들이예요. ‘악질사업장은 아니었다’라고 하는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아는 사람들은 명백히 회사의 노조 깨기라는 걸 알고 있죠. 특히 노동자들은 연고로 묶여 있는데, 회사가 이를 활용하고 있죠.”

“회사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90년도도 예상 안 했지만, 착한 자본이기에 수용해 줄 거라는 환상이 있었죠. 이번 사태는 이런 걸 한 방에 날려버린, 자본에 대한 환상이 한 번에 깨져버린 일대 사건이죠. ‘용역이 우리 회사에 들어와? 공권력이 우리 회사에 들어와?’ 자본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어요. 따라서 이 싸움은 대충 싸워서 될 문제가 아니라 정말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늙은 노동자’들에게 동료란 무엇일까. 같은 직장에서 일한다고 다 동료가 아니듯, 동료는 그들에게 벗이자, 동지일 수 있다.

노동자들은 동료이자 동지인 김동암(현재 고인으로, 84년 유성기업에 입사해 유성기업 민주화 투쟁과 현장성과 투쟁성에 기반을 둔 강력한 노조 건설을 주도해 온 노동운동가) 씨를 잃었다. 가끔, 노동자들이 발언할 때 ‘김동암’을 부른다.

“고인한테 미안하다. 분노가 가슴속에 많이 있고... 미안함이 커요.”

“김동암 동지를 보내고, 그 동지한테 부끄럽지 않은 투쟁을 해야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민주적인 노조 집행부와 연대단체 등 많이 이루어 놓았는데, 허탈하게 무너질 수 있겠는가. 고인을 생각하니까 그런 것에 대한 분노, 서글픔이 있다. 고인은 항상 민주노조를 부르짖다 간 사람이예요.”

  이재윤 비대위원은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며 조합원들에게 편지를 썼다.

부모님께 30만원 용돈 드리고 나온 나는 아직 청춘이다

늙은 노동자들은 아직 청춘이란다. 화장실만 불편하고, 농성 생활이 체질인 것 같다며 한가득 미소 짓는 여유를 보인다. 그들이 웃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위기감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 투쟁은 매년 하는 임단협이 아니라 사활을 걸고 싸워야 하는 싸움이고, 이것이 조합원을 똘똘 뭉치게 하는 힘이다. 발레오만도, KEC사례를 봤을 때 정말 안 싸우면 안 된다,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신뢰로 버티죠. 여기에 늙은 노동자들이 신뢰의 주춧돌이 되어야 합니다. 김성태 지회장 및 노조 간부와 건설노조 조합원,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감옥에 가 있는 데 배신할 수 없어요. 또, 금속노조도 유성기업지회가 무너지면 안 돼요. 우리는 원칙을 주장하고 살았는데, 이런 노조가 무너지면 다른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늙은 노동자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로 웃음 지으면서,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게 있다. 바로 가족이다. 애써 내색하지 않아도, 가족들이 지지해주는 투쟁에 무엇보다 힘이 난다.

“아이가 고3, 고1인데, 그 전에는 어려서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 아이들이 왜 아빠가 농성을 하는지 어느 정도 아니까 마음이 편하더라. 촛불문화제때 아내도 오고...이제 우리 딸들은 아빠가 왜 싸우는 지 이해해요.”

“집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사실 저는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사회적인 문제를 종종 말해 왔어요. 경쟁 사회에서, 휘말리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주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했죠.”

특히 이번 투쟁 중에 유성기업지회 비상대책위원이 되어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이재윤 씨는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며 집을 나섰다. 직장생활 중 마지막일 수 있다며 늙은 노동자가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고, 새 돈으로 30만원을 드리고 나왔다.

“장남이다 보니 아버지 어머니 다 모시고 있어요. 편히 모시지 못해서 죄송하기도 하고. 용돈 드리면서 ‘만난 거 사 드시고 건강하시라고...그러나 아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양심을 지키고, 나의 세계관을 견결하게 지키면서 살겠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아버지가 놀랐을 것이다.”

아이들도 모두 불러 모았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했어요.‘‘이번 싸움이 어려울 수 있고, 아빠가 직장을 잃을 수 있다. 옛날 너희 4~5학년 때, 너희들이 정말로 돈이 필요할 때 아빠가 구속되었지. 그리고 아빠의 역할을 묵묵히 하면서, 아빠의 신념과 세계관을 더 밑으로 묻어두면서 너희들 뒷바라지 했는데. 이제 그러지 못하니 너희들의 인생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어요.”

  노동자들의 버팀목, 가족.

뚜껑을 열다

김봉수 씨, 엄병주 씨가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당뇨로 식이요법과 몸살림을 통해 건강관리를 해 왔던 이재윤 비대위원이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민주노조를 지켜내고, 밤에는 잠을 자자는 상식의 요구로 전 사회가 들석이려면, 늙은 노동자와 젊은 노동자가 만나야 한다. 늙은 노동자의 경험과 지혜, 젊은 노동자의 열정과 자신감이 교차해야 한다. 그리고 늙은 노동자의 아량과 배짱, 젊은 노동자의 비판과 해학이 또아리를 틀어야 한다.

유성기업 늙은 노동자는 신뢰의 주춧돌이 되고자 싸움을 이어간다고 했다. 신뢰의 주춧돌은 세대간 차이만을 말하는 건 아니니라. 이 안에는 단사뿐만 아니라 한국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그들의 기쁨과 고뇌가 묻어 있다. 이제 다시 그들이 희망을 말한다.

“젊은 사람은 노조로 집중하기보다 개인화됐죠. 선배들이 모범적이지 못한 모습도 보였죠. 상호 비판 과정이 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까 젊은 노동자들은 나날이 자본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죠. 자각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저는 봤어요. 아! 다시 희망이 보이는구나. 후배들이 갈 길을 찾아 가는 구나. 비록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자각은 자본에 대한 분노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재윤 비대위원 (기사제휴=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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