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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연대
힌트를 준 건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쌍용차 조합원들이었다.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들의 연대만큼 매주 밥 셔틀을 해주시는 분들이 저희에게 참 소중합니다”
쌍용차 분향소에는 매주 한 번 집에서 직접 밥을 지어 날라주는 말 그대로 ‘밥 셔틀(Shuttle)’이 있다. 객지 생활, 조미료에 절은 식당 밥과 인스턴트 음식에 지친 조합원들에게 ‘집 밥’은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근원적인 위로다. 거창하지도 호화롭지도 않지만 가장 근본적인 ‘밥’의 위로와 연대. 벌써 그럴듯한 ‘사회 저명인사’들의 비범한 ‘말’들은 나올 만큼 나왔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연대, 밥 셔틀을 만나기로 했다.
어렵지 않게 밥 셔틀 ‘리메이크’ 판권 보유자 토맘(@tomom79)를 찾을 수 있었다. (원래 밥 셔틀 판권 보유자라고 자부했으나, ‘5월 광주에서 시민군에게 밥을 나눠주던 어머니들이 밥 셔틀의 원조’라는 이의 제기에 리메이크 판권 보유자로 변경했다고 한다) 트위터에서 ‘밥 셔틀’을 검색하기가 무섭게 토맘의 트윗과 함께 밥 셔틀을 준비하는 이들의 트윗이 쏟아진다. 맞팔(서로 팔로우 한 상태)이 아니면 DM(Direct Message)을 보낼 수 없어 공개적으로 취재 요청을 했고 토맘은 흔쾌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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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토맘이 밥셔틀에서 맡은 건 달걀프라이와 밥이다. |
“밥 셔틀 여러분, <참세상>에서 취재 온다니까 이번 주에는 다들 비비크림이라도 바르고 오세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았을 때 그녀는 달걀 프라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를 들쳐 맨 채였다. 8개월 된 아이의 무게가 만만치 않을 텐데도 익숙하게 프라이팬과 뒤지개를 놀린다. 크지 않은 프라이팬에 2개, 어느 때엔 3개의 달걀이 오른다. 기름이 튀지도, 팬에 달걀이 눌어붙지도, 타지도 않는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이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첫인상부터 ‘주부’의 관록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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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안고 달걀을 부치는 모습이 능숙하다 |
영락없는 ‘주부’(독자들에게 이런 표현이 거슬릴 수 있다. 주부의 영락없는 모습이 그대로 익숙한 가사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 사회에 가장 흔한 주부의 이미지’정도로 읽어주면 감사하겠다)인 그녀는 어쩌다가 ‘외간남자’들에게 밥을 나르게 됐을까.
“분향소를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는데, 조합원들이 빵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경찰들이 비웃으며 지켜봤다는 트윗을 봤어요. 화가 치밀어 올라서 ‘경찰들 앞에서 고기를 굽고 진수성찬을 차려주겠다’는 생각으로 고기반찬에 밥을 싸들고 대한문을 찾았죠. 그걸 계기로 트윗에서 만난 친구들이 돕고, 또 함께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한 명씩 더 나서서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은 오히려 밥 셔틀이 오는 날이면 경찰들이 그 진수성찬을 부럽게 바라본다.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렇다 할 대단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연대가 어려웠어요. 그동안은 연대의 방식이 돈이나 능력 같은 특정한 것들로 국한돼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마음은 있어도 무엇을 함께 해야 할지 몰라 발만 구르기도 했었죠”
연대의 방식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었나 보다. 하긴, 나도 ‘머리띠 묶어주고 어깨 걸고 일어선’것만이 연대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아이 키우면서 시간을 내서 매번 집회에 나가는 것도, 생활비에서 큰 돈을 투쟁 기금으로 지출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밥값, 반찬값은 늘 지출하는 돈이니까 적은 부담으로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렇지만 그 부담스럽지 않은 연대가 결코 다른 방식의 연대에 비해 가볍거나 사소한 것은 아니다. “어떤 정(情)보다도 밥 정이 가장 무섭기 때문”이다.
밥의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바로 드러난다. 취재 중이던 13일, 쌍용차 지부의 고동민 조합원은 밥 셔틀을 만나기 위해 ‘회의를 째겠다(빠지겠다)’는 트윗을 공개적으로 남겼다. 그가 정말 회의를 빠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또 쌍용차의 조합원들에게 밥 셔틀이 그토록 만나고 싶고 소중한 ‘동지’라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 경구는 20세기 초엽, 미국의 페미니스트 혁명가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의 말이다. 혁명이라는 거대함 앞에서도 즐겁고 기꺼운 역동성이 없다면 그것은 곧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조언.
토맘은 밥 셔틀이 즐겁고 재밌어서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즐겁지 않고 기껍지 않은데 의무감으로 하다 보면 결국 지치고 오래갈 힘을 잃게 될 것 같아요. 제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고, 또 즐거워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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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는 비빔밥, 보기에도 먹기에도 훌륭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그래서인지 밥 셔틀을 위해 모인 이들은 시종일관 즐겁다. 서로의 음식 맛을 타박하거나 자기가 맡은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자랑하면서 그들은 내도록 흥겹다. ‘그간 밥 셔틀 메뉴 중에 무엇이 가장 맛있었냐’는 질문에 섣불리 한 가지를 콕 집었다가 쏟아지는 온갖 비난을 감내해야 했던 고동민 쌍용차 조합원도 내심은 즐거워 보인다.
밥 셔틀은 이를 재밌는 놀이로 여기고 있는 듯 보인다. ‘재미있는 일’이 아니라면 짧은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분향소까지 밥을 싸들고 달려오는 일도,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도, 매 주 천안에서, 성남에서 먼 길 마다치 않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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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셔틀이 오면 즐겁지만, 말은 없어진다. 입은 하나기 때문이다. |
(밥 셔틀은 기자에게 지난주에 취재 왔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했다. 지난주엔 남은 반찬을 안주 삼아 대낮의 막걸리 파티가 열렸었다고. 내심 ‘이번주도…’ 하는 마음을 품었지만 그날은 남는 반찬이 없었다)
“아름다운 것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토맘은 결혼 전 화장품 회사에 다녔다. 한때는 ‘리미티드 에디션’ 화장품들을 꼬박꼬박 사모으기도 했다. 결혼과 출산 이후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도 예쁜 옷과 화장품에 관한 관심이 적지 않다. 그녀는 “세상에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상을 아름다운 것들과 아름답지 않은 것들로 구분한다면,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죽음을 외면하는 이런 상황은 전혀 예쁘지 않은 일이죠. 쌍용차의 노동자들에게도, 제게도 세상이 더 예뻤으면 좋겠어요”
예쁜 세상을 위한 그녀의 노력에 밥 셔틀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힘겨운 상황에서 당내경선과 대선을 치르는 노무현 후보가 안타까워 회사를 그만두고 ‘노사모’활동에 뛰어든 일과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당시 ‘하이힐 부대’를 꾸려 광화문 일대를 누린 일 역시 그녀가 꿈꾸는 ‘예쁜 세상’을 위한 그녀의 ‘즐거운 활동’이었다.
“우리 아이는 ‘크레인둥이’에요.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가시던 즈음에 생겨서 내려오시던 즈음에 태어났죠. 만삭의 몸이라 희망버스를 타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고 죄송했어요”
그녀에게 ‘연대’란 의무감이나 책임감보다는 기껍고 즐거운 일인 듯 보인다. (그리고 그런 엄마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 그녀의 딸은 대한문에선 잘 울지도, 보채지도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연대
“사람들은 제가 애매하다고 해요. 엄청나게 강성 운동권인 것처럼 말하다가 또 어느 때에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다고”
그녀는 솔직하다. 자신의 연대는 언제나 안전한 범위에서 이뤄진다고 했다. 그건 일종의 비겁함일 수 있겠다는 말도 꺼냈다.
“옛날처럼 집회현장 근처에만 가도 잡아가고, 고문으로 사람이 죽기도 하는 시대였다면 과연 제가 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을 한 적 있어요. 지금의 저는 이런 활동을 해도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삶에도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이렇듯 나서는 것이지만, 그 시절들과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정말 제가 어떻게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기사를 처음 기획할 때는 ‘평범하고 소소한 연대가 화려하고 거창한 연대보다 더 소중하다’라는 가닥을 잡고 있었다. 밥 셔틀을 취재하고 토맘을 만나면서도 내내 ‘평범함’이라는 주제에 이야기들을 끼워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니 평범과 비범을 가를 수 있다는 것부터 착각이었던 것 같다.
동지의 머리띠 묶어주고 어깨 걸고 일어서는 연대와 길에서 고생하는 오빠한테 따듯한 밥 한끼 먹이는 연대는 그 모양만이 다를 뿐 그 마음과 본질에서는 한 치의 다름도 없었다. 모두가 대단하고 동시에 평범한 연대였다. 고민이나 갈등, 머뭇거림과 뿌듯함, 보람이 모두 상존하는 연대. 우리들의 연대와 그들의 연대는 다르지 않다. (누가 우리고 누가 그들인지도 구분할 필요 없다. 다르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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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하고 있는 고동민 조합원 |
밥 셔틀 기사를 제안했던 쌍용차 조합원들은 밥 셔틀 기사를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써달라”고 했다.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좋았다. 밥 셔틀을 만난 그들이 충분히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의 연대는 그들이 나르는 밥과 같다고 생각했다. 가장 평범하면서 가장 근본적인.
덧,
취재를 마친 다음 날, 토맘이 기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파업 중인 전주대 청소노동자가 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힘겹게 계신다며 취재와 도움을 드릴 방법을 부탁했다. 그녀는 땡볕을 가릴 파라솔을 들고 찾아갈 거란 말도 덧붙였다. 그녀의 ‘밥과 같은 연대’는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