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이 게시판을 통해 전북 참소리, 미디어충청, 민중언론 참세상, 울산노동뉴스의 기사와 관련된 토론을 직접 하실 수 있습니다.

 

구당권파, 대선 때 청소년위 댓글 알바 등 불법선거 동원

<레디앙> 보도...영등포 모텔서 단체 숙식, 한 달 70만원 받아

인터넷 신문 <레디앙>은 25일 “구 민주노동당 시절 경기동부 성향으로 분류되는 당 청소년위원회가 07년 대선 당시 학생 당원들을 동원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당시 구 민노당 청소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김 모씨는 <레디앙>과 인터뷰를 통해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이 끝나고 권영길 후보로 정리되자 당시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이라는 청소년 단체 사무국장과 청소년위원회의 제안으로 온라인 선거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선배들이 그 어디에도 돈을 받고 온라인 댓글 알바를 한다고 말해서 안된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불법 선거운동이었다는 것을 몇 년 뒤에나 알았다”고 밝혔다.

<레디앙>에 따르면 90년대 초반 서울 지역의 각종 청년회나 고교생 모임을 주도했던 경기동부 지역 출신들이 만든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이라는 청소년 단체는 민주노동당에 집단 입당하고 청소년위원회를 장악했다. <레디앙>은 이 청소년단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으로 통합진보당 현직 국회의원과 최고위원 후보 등이 있다고 전했다.

또한 당시 ‘민들레’라 부르던 대선 온라인 선거팀에는 ‘희망’과 청소년위원회 소속 당원이나 수원, 성남, 부천지역 청년회 등 젊은 사람들이 모였다. 김 모 씨에 따르면 실무 지휘는 당시 양천구위원회의 위원장이 했으며, 실무 지휘 라인 위로는 외부에서 스카웃 된 3명의 전문 인력이 있었고, 최상층부에 중앙 선거본부의 책임 있는 사람이 관여했다.

이렇게 동원된 학생당원들은 새벽 4시부터 밤 12시까지 영등포 한 모텔에서 공동 생활을 하면서 중앙당사 4층의 빈 회의실로 출근해 블로그 뉴스 조작, 기사 댓글 달기 등에 동원됐다.

김 모씨는 “온라인 선거 팀에서 두 달 동안 댓글 알바를 하는 동안 영등포의 한 모텔에서 단체로 숙식을 했다”며 “어디서 지급되는지는 몰랐지만 한 달에 한 번 통장을 통해 70만원씩 지급받았다. 안 받은 사람도 있지만 확실히 나를 포함한 몇 명은 돈을 받았다. 선배가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첫 날 출근했을 때는 4-5명이 있었지만 대선이 끝날 때까지 15명이 활동했다”며 “당시 노회찬, 심상정 지지자들이 당 게시판에 글을 많이 올렸는데, 가끔 당 게시판에 들어가서 비판과 반박 댓글을 달기도 했다. 내용이 좋으면 잘했다는 칭찬도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김 모씨와 함께 댓글 알바를 했던 이들 중에는 반값등록금 운동을 주도했던 모 대학 학생회장과 당내 인사도 포함되어 있다.

현 구당권파 최고위원 후보, 선거 위해 당적 이전 제안도

김 모씨는 또한 현재 당권파 쪽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모 후보가 찾아와 구로지역으로 당협 이전을 제안한 일화도 전했다.

이 최고위원 후보는 당시 김 모씨에게 “구로지역에 훌륭한 선배가 출마한다. 강요하는 건 아니고 네가 구로로 지역을 옮겨서 도와라. 이번에 출마한 사람이 오랫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당선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구로지역으로 당적을 옮겼다.

김 모씨는 또 “당시 ‘희망’ 사무실 골방에 이 모, 편 모, 유 모, 이 모씨 등 구 민주노동당에서 꽤 높은 사람들이 종종 회의하러 왔었다”고 밝혔다.

김 씨는 “내가 계속 당 활동을 했다면 나는 분명 중앙위 폭력 사태 당시 당연히 단상 위에 있었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의견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