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나서려고 하는 찰나 내 옷차림을 처음 본 아빠는 인상을 팍 구기며 소리친다.
“일하러 가는 데 옷이 그게 뭐야!”
지지 않고, 일 잘 하는 거랑 옷이랑 무슨 상관이야! 있는 힘껏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엄청난 속도로 걷는 아빠의 뒤를 따라 뛰다시피 걸으며 속으로 씩씩거렸다. ‘참나, 내가 누구 때문에 희망식당에 가는 건데? 아빠는 내가 일하기에 적절치 않은 옷을 입어서 불성실해보이고 개념 없어 보이면 아빠 체면이 구겨지고, 내가 성실하고 싹싹하게 굴면 아빠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 하는 거야. 못하면 내가 부끄러운 거고 잘하면 내가 좋은 건데. 할 일이 태산인데 나는 왜 이걸 하겠다고 한 거야. 어휴.’
열한시 반까지 도착했어야 하는데, 조금 늦었다. 왜 이렇게 늦었냐는 타박을 들으며 엉성하게 앞치마를 두르자마자 숨 돌릴 겨를도 손님들이 들어온다. 이들을 맞이하는 것으로 5월 6일 일요일 아홉 번째 희망식당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실내와 야외를 합해 동그란 포장마차용 테이블 여덟 개가 놓여있는 작은 가게다. 좁은 주방 한 편에서 고기를 삶고, 쌈장을 만들고, 채소를 씻는다. 나도 부지런히 음식 나를 채비를 한다. 주방에 사람 수대로 주문을 하랴, 밥을 푸랴, 밑반찬을 챙기랴 우왕좌왕이다. 손님 몇 명이 왔다고 주방에 알려야 하는데 깜빡 깜빡 하는 새 주방에서 먼저 내다보고 음식을 준비한다. 허둥거리는 나를 보며 취재를 위해 나온 기자들이 일을 도와준다. 오마이뉴스 수습기자 강민수씨가 체험기사를 쓴다며 하루 종일 설거지를 했다. 오늘은 손이 많아서 사정이 좀 나은 편이라고 한다. 설거지와 서빙을 혼자 했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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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번째 희망식당 하루의 매뉴 [출처: http://blog.hani.co.kr/isan] |
메뉴는 된장찌개에 제주산 흑돼지고기 수육이다.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맛은 물론 위생이 만점이라고 특별히 강조하기에 얼마나 깨끗한가 했더니 정말 위생 만점, 맞다. 요리를 하며 조리 도구를 다루는 과정도, 그 음식을 차리는 것도, 설거지를 하고 그릇과 수저를 챙기는 것도 깔끔하다. 된장찌개는 국물만 미리 준비해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냄비에 국물과 버섯, 호박, 양파들을 담고 보글보글 끓여서 상에 낸다. 고기도 뜨거울 때 꺼내서 썰고 쌈장도 직접 만든다. 쌈장에 된장, 고추장 말고 설탕과 마요네즈가 들어가는 건 처음 알았다.
된장찌개는 조미료 맛이 나지 않으면서도 심심하지 않고 구수하고 칼칼하고, 쌈장은 달달하니 감칠맛이 난다. 고기도 간이 딱 맞고 보들보들하다. 다만 밥이 좀 아쉬워, 손님들에게 이 밥은 주방장님이 하신 게 아니고요, 저희가 한 거예요!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30인분 밥솥에 밥을 하고도 금방 동이나 호스트들이 작은 밥솥에 새로 밥을 지어 수시로 보충을 했는데, 조금 질었다가 설익었다가 들쑥날쑥하다. 밥이 제일 중요한 건데, 아쉽다. 그것까지 신경 쓰일 만큼 찾아오는 손님들이 괜히 정겹고 고마워서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더 드릴까요, 반복해서 물었다. 밖에 나가면 그림도 그려줘요, 라고도. 혼자 온 손님에게는 괜히 더 마음이 간다.
생뚱맞게 떠올린 여성이라는 특수부문의 노동자...‘엄마’
돕는 손이 많아서 일은 각오했던 것만큼 힘들지 않았다.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아니면 혹시나 예전에 종종 그랬던 것처럼 결국 일감을 할당받지 못하고 뻘쭘하게 한 귀퉁이에 서있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면서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정도의 일이 이어져 다행스럽다. 그러나 막판에 장사가 끝나갈 때 쯤 내가 싱크대 앞에 섰을 때 쏟아지는 설거지거리는 평생 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그 그릇에 들러붙은 채로 굳어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음식물 찌꺼기를 박박 문질러 닦는다. 문질러도 문질러도 팔만 뻐근하게 아파올 뿐 깨끗하게 닦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생뚱맞게도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 여성이라는 특수부문의 노동자. 임금은 없다. 퇴근도 없다. 모두의 등에 짊어지고 사는 자기 몫의 삶의 무게가 있을 것인데, 엄마의 등에는 나와 동생과 아빠 몫의 짐까지 같이 지워져 있는 것만 같다. 진보적인 딸과 남편이 한 켠에서 우리 안의 가부장성을 성토하는 동안 엄마이고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다 먹은 그릇을 날라 설거지까지 마쳤던 것이다.
“평생 할 설거지 다 하지? 언제 또 이렇게 설거지를 해 보겠어?”
주위에서 장난삼아 물으니, ‘이렇게 많은 양의 설거지를 하게 될 일은 없을지 몰라도, 특별히 운이 좋지 않은 이상, 평생 남편과 자식이 먹을 밥을 차리고 다 먹은 밥그릇을 설거지하면서 살아가게 되겠죠, 엄마와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요.’ 하는 대답이 잠시 떠올랐다가 흩어진다. 친하지도 않은 작은엄마 생각도 난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자랑거리로 삼아 사촌 오빠와 동생 자랑을 입에 달고 사는 작은엄마를 보며 가끔은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대우자동차 직원 식당의 비정규직 노동자인 작은 엄마가 이고 있는 삶의 무게가 내 것의 백배 쯤 된다는 것을 왜 몰랐던가.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 내 역할이 있는 곳...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와서 밥을 먹고 간다. 홍대에서 작업하는 음악인들, 진보 언론의 기자나 작가들. 그런 사람들이 들어서서 아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떠들썩한 환영 인사가 이어진다. 다른 손님들과 서로 잘 아는 모양으로, 따로 와서 함께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간다.
그렇게 밥을 먹는 것을 흘끔흘끔 훔쳐보며 나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야, 우리도 유명한 사람 되자. 이왕 좋은 일을 해도 유명한 사람이 돼서 하는 게 나은 것 같아.’ 자기 삶을 정체성과 완전히 일치시키지 않는 이상, 퇴근 후 ‘광장’을 기웃거리려 해도 친한 이들과 자기 역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학생회를 그만두고 몸담고 있던 단체도 그만두고 이런 것에 관심 없는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어디 행사장에 한번 가려 해도 같이 갈 사람을 물색하느라 골머리 썩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희망식당 하루도 아빠의 제안이 아니라, 같은 뜻을 가진 친구들의 제안으로 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도.
야구복을 입은 동네 아저씨들 여섯이 먹고 간 그릇과, 재료가 떨어졌는데도 라면만 먹고 간 손님들의 라면 냄비,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찜통과 국자, 도마를 설거지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마침내 일이 끝났다. 열시가 넘은 시간이다. 종아리가 쑤시다. 손을 앞치마에 문질러 물기를 대충 털고 둘러앉아 내 앞치마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돈을 셌다. 돈 다발이 두둑하다. 이런 게 장사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일까? 오늘 매출액이 여태까지 중에서 가장 높단다. 손님이 많았던 것은 오늘 메뉴가 맛있는 음식인 덕분이었을 테고 식재료비가 다른 날보다 비쌌을 성 싶지만 그래도 내가 일한 날 민폐는 끼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스럽고 뿌듯하다. 아닌 척 해왔지만 얼마나 간절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 내 역할이 있는 곳을 찾아왔는지 알겠다.
▲ 희망식당을 찾아온 이들이 남긴 글 [출처: http://blog.hani.co.kr/isan] |
▲ 희망식당을 찾아온 이들이 남긴 글 [출처: http://blog.hani.co.kr/isan] |
‘응원하러 왔는데 오히려 제가 위로받고 가는 기분입니다’
‘응원하러 왔는데 오히려 제가 위로받고 가는 기분입니다.’ 누군가 방명록에 적어두고 간 구절이 마음속에 맴돌았다. 집회에서 같은 구호를 외치거나, 함께 집회에서 밤을 지새우던 그 누구보다도 희망식당에 찾아온 손님들이 친구처럼 느껴진다. 내 미숙한 노동력을 딱 하루 쏟아 부었을 뿐인데 대단한 일을 해낸 냥 흐뭇하면서도, 궁금해진다. 주방장 아저씨는 해고 당한지 3년째, 아저씨에게도 희망식당에서의 일요일이 내 하루처럼 그렇게 쉽고 단순할까.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했지만 평일에는 항만에서 일하고 일요일마다 여기서 하루 종일 요리를 한다는 그에게도 오늘 하루가 마냥 보람찰까. 일을 마치고 먼저 가게를 나서는 모습이 피로해 보인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일 그만두면, 퇴직금은 애들 다 주고 모아 둔 돈으로 고향 내려가서 ‘가든’ 하려고 했어요. 시골에 가든 같은 거 하나 차리면 먹고 살만 하잖아요. 근데 가든은 무슨, 3년 동안 애들 몫까지 다 털어 썼어요.”
“그 가든을 예상치 않게 지금 하게 됐네요.”
억장이 무너진다. 대기업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평생 성실하게 일하면 아이들에게 남겨줄 몫도 있고, 나이든 후에는 고향에 내려가 ‘가든’ 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 이상으로 도무지 대꾸할 말이 없어 묵묵히 싱크대 밑으로 흘러내려가는 음식물 찌꺼기와 비눗물만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생각한다. 어서 희망식당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가든’은 지금 여기서 말고 20년 후 쯤 고향에서 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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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식당을 찾은 이들의 그림을 그려주는 이동슈 씨가 일일호스트 박인해 학생을 그렸다 [출처: http://blog.hani.co.kr/isa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