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에 따르면, 튀니지는 현재 구정권의 하수인들에 의해 불안이 지배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집밖으로 나오길 주저한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하여 <사회주의적 대안>의 튀니지 통신원은 과도정부에 대한 튀니지노동총연맹 UGTT의 관료적 지지는 사회적 운동을 멈추었고, 간누치 총리의 자리를 지켰으며, 구정부 잔재가 척결되지 않은 채 반혁명의 트로이목마가 정부를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그는 튀니지혁명을 통해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분명하게 그들 스스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며 노동자, 민중 그리고 빈민의 계급정당 건설로 튀니지에서의 정치적 대안 부재를 넘어서자고 강조했다. 과도정부 개편 후 튀니지의 구체적 상황이 담긴 그의 비판과 분석을 살펴본다.
1월 21일 독재자 벤 알리의 도주는 튀지니 봉기의 끝이 아니라, 이 땅의 혁명과 반혁명 시대의 시작이다. 민중은 정치적 상황을 전례 없이 진동시켰고 사례없는 전투의지를 나타냈으며 정치적 토론의 자리를 거리와 까페로 이동시켰다.
수많은 노동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사회적 요구를 수립했으며 수많은 반정부 행위자들이 행정기구를 인수했고 이로써 국가권력을 대체했다. 상당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간누치 총리의 과도정부는 대중적인 사회적 힘들 때문에 공중에 떠 있었다. 노동자계급과 가난한 대중을 대표하고 권력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용감한 혁명적 지도 형태의 분명한 정치적 대안의 부재가 지금의 상황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최근 정부에 대한 UGTT 의 관료주의적 지지는 운동의 약화를 이끌었고, 간누치가 그의 자리를 유지하도록 했다. 그러나 사회적 운동을 정지시킨 이 멈춰진 시간은 단지 매우 짧게 나타날 수 있다. 상황이 여전히 매우 불연속적이고 대중의 불만도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구 정부의 새로운 시작: 이름은 바뀌었으나 정권은 지속
2주 전에 구성된 “국가통일 정부”의 특징은 만성적인 동요에 있다. 정부는 대중적인 반정부 행위자들 그리고 수주 동안 발전해온 전국적 시위와 대립해 있다. “(점령지의) 행정구역” 중 6개에서 총파업이 진행됐다. 5일 동안 주로 가난한 지역 출신의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청사 앞에서 옛 독재자 벤 알리와 연결돼 있는 최근 정부에 맞서 시위하기 위해 농성했다. 최대의 요구는 낡은 정권의 모든 잔재 청산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요구하는 이들과 함께 사회적 요구들은 점점 더 정리되고 있다.
지난주 목요일 간누치는 새 정부구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의 시간은 그가 집중적인 협상 후 부르주아국가의 독재를 생산하고자 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데 지속적인 어려움과 지배 계급의 분열을 밀어냈을 때까지 지속됐다.
새 정부가 UGTT 대표들의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는 것은 문제다. 사무총장 압데쌀렘 자라드(Abdessalem Jrad)와 UGTT 대표단의 다른 구성원들을 면직해야 한다는 의견이 늘고 있다(자주 “자라드를 파면하라”란 슬로건도 들린다). 간누치를 지원한다는 결정은 노동조합내 충돌을 격화시키고 있다. 총회원의 이해를 대표하고, 민주적으로 조직된 특별회의를 통해 선출된 구성원들에 의한 새로운 노동조합 대표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게 필요하다.
반혁명의 트로이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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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welt.de/politik/ausland/article12462538/Polizei-schiesst-auf-Demonstranten-vier-Tote.html] |
여기서 “죄없는” 인상을 만들기 위해 RCD 정당은 PSD(하비브 부르기바 전 대통령 시기 이 정당의 옛 이름)로 개명했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각 12명의 새로운 장관 중 대부분은 은행과 사기업의 전 경영자, 임원 그리고 매니저 등 신자유주의적인 “골든 보이즈”들이다.
새로운 “민주주의”의 효과적인 성격
RCD는 국가기구에서 전체적으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들 정당 해체를 위한 대중들의 기본적인 요구는 관철되지 않았다. 정부는 미국과 유럽 대표자들과 비밀 계약을 체결했던 낡은 정권의 사람들에 의해 계속해서 조종되고 있다. 여전히 수많은 정치적 수감자들이 존재한다.
현 정부는 최근 정부청사 밖의 수백명의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해산하면서 자신의 진실한 얼굴을 드러냈다. 이 사람들을 격리하고 포기하도록 하는 모든 종류의 시도 후 (지지자들이 농성장으로 음식물을 제공하지 못하게 하며) 경찰력은 봉기퇴치를 위해 단합해 공동으로 잔인하게 이 공간을 정리했고 농성하는 이들의 야영지를 파괴했다. 이들은 거리를 가로질러 시위자들을 사냥했고 최루탄을 사용했으며 이때 적어도 15명이 부상당했다.
당연히 이들 억압은 벤 알리 도주 전 발생했던 시위자 살해와 비교될 수 없다. 그러나 비슷하게 폭력적인 억압은 봉기의 2번째 불길을 스스로에게로 이끌고 있다. 간누치 정부 입장에서 무분별한 감행은 운동의 재건설을 유발하고 과도정부의 몰락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부는 여전히 구정권의 민병대의 행위 뒤에 서 있다. 지난 수주 동안 모나스티르, 가프나, 벤자 그리고 소우쎄 여러 지역 노동조합 건물은 매일 공격됐다. 일요일 아침에는 “알려지지 않은” 한 조직이 레 케프에 있는 UGTT의 지역 사무실을 방화했다.
마찬가지로 몇몇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좌파에 대한 공격도 보도됐다. 1월 26일 튀니스 아베누에 보우르구이바에서 삐라 유통을 조직했던 “튀니지의 애국적 민주주의 노동자당”의 한 동료는 단순하게도 경찰에 의해 체포돼 경찰서로 연행됐으며 그곳에서 두들겨 맞았다. 1월 28일 여성들의 권리를 위했던 3백명의 시위자들은 무장한 깡패들의 곤봉으로 공격됐다.
반동적인 민병대들이 지금 공개적으로 나타나기를 주저하지만 폭력적인 압력수단에 의해 대중운동이 하강될 수 있다.
이웃, 일자리 그리고 노동조합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한 자기방어위원회의 유지와 강화가 중요하다.
성장하는 사회적 분노
보다 경제적이고 전략적인 이해를 가지는 튀니지 자본가계급과 제국주의 권력(여기서는 주로 미국과 프랑스)는 튀니지 민주주의 도입을 위한 무엇도 행하지 않았다. 최근 불확실한 “민주주의”와 쟁취된 자유는 단지 대중운동의 압력 때문이다.
독재자 벤 알리의 결말은 축적된 모든 사회적 저항을 수면으로 가져왔다. 노동자계급 그리고 민중은 빠르게 움직였으며 대중운동이 지난 2주간 나타낸 것처럼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전통적인” 분야들에서 이뤄진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 매일 생활의 상황을 바꾸었다.
지난 수요일 관광청 앞에는 수십명의 시위자들이 모였고 자신들의 노동과 노동조합적 대표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이후 튀니스 아베누에 보우르구이바에는 수백명의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자신들을 위한 특별 학교와 공공기관을 요구했다.
초등학교 그리고 중등학교 그리고 다른 학교들에서도 학생파업이 벌어졌고 인간적인 일자리를 위해 청년 실업자들도 시위에 나섰다.
자본가계급은 명백하게 이들 시위를 심각하게 우려했다. “벤 알리는 이제 갔다”고 그들은 말한다. “혁명은 끝났다. 우리는 질서, 사회적 평화 그리고 경제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선동과 혼란은 일반적으로 자본의 이해와 충돌한다. 불확실한 시간을 멈추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장 피에르 갤리, 프랑스 “르 쿼티디엥(Le Quotidien)” 1월 26일자에서 인용).
이집트에서처럼 튀니지 민중 다수의 곤궁한 경제 상황은 결국 구정권에 맞선 분노를 폭발시킨 본질적인 요소로 나타났다. 튀니스 지역 쓰레기운반업체에서처럼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파업이 관철시킨 경우 외에 비참한 임금은 인상되지 않았다. 많은 수의 파업과 시위 후에 이들은 무기한 노동계약과 240(약 19만원)에서 420 디나(dina)로 거의 두배에 달하는 임금 인상을 쟁취했다.
투쟁 증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간누치정부는 이 상태를 안정시키고자 보다 작은 몇몇 일들에 양보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봉기에 참여했던 시디 보우치드, 카쎄리네 그리고 가프사 등 “우선적”이던 몇몇 지방들에 할당된 위기기금 지원을 위한 5억 디나가 속한다. 이외에도 경찰에 의해 살해된 이들의 가정에 대한 재정적 보상이 이뤄질 계획이다. 손상된 기업도 마찬가지로 보상된다. 부분적인 (노예노동으로 일컫어질 수 있는 일자리에 상응하는) 공공부문 일자리에 동의한 실업상태의 대졸자는 매달 150 디나를 받게 된다.
행동하는 두 개의 계급
자본가 계급은 독재자의 정치적 유산들과 함께 의식적으로 혁명을 딴쪽으로 돌리려 하며 전국적으로 조화하고 있다는 소인을 찍으려 시도한다. 하지만 사실 그 조화는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위협하는 여러 “방해평화”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만 방해되고 있을 뿐이다.
통일의 이러한 가면 뒤에는 대비되는 이해를 가진 두 개의 상이한 계급이 있다. 혁명을 “구하자”는 지배하는 계급의 호소 뒤에는 단지 국가적 그리고 마찬가지로 외국 자본가들을 위한 자본주의적 이윤체제 유지를 위한 동기들이 놓여 있다. <르 쿼티디엥>(1월 25일)은 벤 알리의 도주 전에 “워싱턴에 사회적 봉기가 실제 혁명으로, 다른 말로 하면, 이 체제에 진정한 위험으로 변하기 전에 소모된 독재자를 포기하고 그의 후계자를 조직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고 보고됐다"고 보도했다.
대중이 안정해야 하고 혁명적인 과정을 중지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호소 뒤에 숨겨져 있다. 민주주의와 사회적 정의가 그들의 손에 쥐어질 때까지 그들은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사건들은 분명하게 대중이 전진하기 위해선 단지 그들 자신의 힘과 주도권만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결국 정치 권력에 대한 투쟁에서의 그들의 분노를 완전히 발전시키기 위해선 노동당 건설이 필수적이다.
결국 사람들은 단지 조직된 대중운동과 노동자, 농민 그리고 빈민들의 계급정당을 통한 자본주의 극복을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손에 쥘 수 있다. 사회는 이후 실제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해방의 전제인 사회주의적 토대 위에서 새롭게 건설될 수 있다. 최근 사건은 우리에게 그러한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로 예증했다.
<르 쿼티디엥> 신문은 1월 25일 마’사케니스(M"sakenis)"의 시민들이 일시적으로 권력을 수취했다고 보도했다! (…) 그들은 며칠 동안 국가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생활했다. 마’사케니스의 사람들은 그들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쥐었고 심지어 자신의 시민경찰을 구성했다. 그들 자신의 건물로부터 공식 경찰이 내몰린 후 어떠한 경찰도 도시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지 않았다고 말해졌다. (…) 이들 시민의 유일한 목표는 매일의 과제를 챙기고 도시의 평화와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 모두는 서로를 매우 존경했고, 협동과 연대가 지배했다. 구정권의 민병대와 약탈자들을 몰아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며칠 후 이 신문은 도시 벤자가 유례없는 파업운동으로 마비됐다고 보도했다. 노동자, 교사, 사무원, 여성, 남성, 청소년, 노인과 은퇴자들이 있었다. “도시 전체가 거리에 있었다.” (…) 설탕공장의 5백명의 노동자들은 회사경영자와 그의 부패한 직원을 쫒아냈고 “행복위원회”를 세웠다.
다음 날 도시 탈라에서는 “시장이 도시에서 도망쳤다. 자칭 청사를 대표한 나머지들은 그들의 자리를 떠났고 그들 자신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도시를 떠났다. (…) 지역 관청으로부터의 도주 이후 주민들은 권력을 잡았고 탁월한 종류와 방식으로 도시의 용무에 관한 행정을 이행했다고 말해져야 한다. (…) 주민들은 민중위원회로 공공적이며 사적인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모였다”.
지금 정부가 “유일하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고 이 땅을 무질서와 무법 그리고 진공상태가 지배하는 혼란으로 추락하는 것을 저지한다고 말하는 목소리들에 어떤 종류의 대답이 있는가!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분명하게 그들 스스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필수적인 과정을 이행하기 위한 정당을 지니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정당은 상이한 인식들을 조직하고 낡은 정권을 노동자와 민중의 대안적인 정부를 창조하는 운동으로 확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운동을 전진시키기 위해 투쟁의 각 단계에서 성공적인 조치를 마련할 수 있는 그러한 주도의 부재는 애초에 혁명을 지원했던 사람들을 회의하도록 이끌었다. 그들은 이 정부가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데 만족하고 어떠한 다른 진지한 대안을 보지 않고 있다. 지금 “모험가”에 맞서 시위하는 중간계급의 몇몇 사람들은 이 투쟁을 끝까지 전진시키고자 한다.
이들은 “우리는 자유로운 튀니지들의 과도정부를 지지한다”, “튀니지 민중에게: 다시 학교로 가라, 다시 일해라!”와 같은 구호를 외친다. 이들은 사회적 소요와 대중주의적 조치가 그들의 경제적 이해를 위협할 수 있다며 걱정한다.
다른 가난한 층들(급격하게 저조해진 관광업의 여건 아래에 있는 상점주인, 택시운전사 그리고 다른 자영업자들)은 미지의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언론들에 기만당하고 있다.
어떻게 전진할 수 있을까
혁명은 결코 직선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분명한 혁명적 정책으로 일치시킬 수 있는 몇몇 받침판을 가지는 정당이 없을 경우, 운동과 반격의 하락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노와 혁명의 성과가 도난됐다고 느끼는 이들 아래서 분노와 폭동이 급작스럽게 폭발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히 현정부의 기만이 발산할 경우 대중 투쟁은 확실히 포괄적으로 도약할 것이다. 대중들의 지속적인 저항에 직면해 간누치 정부가 붕괴할 수 있다는 것도 제외될 수 없다.
지속적인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불안정성은 지배계급을 근본적인 위치로 밀 수 있다. 군대쿠데타는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군인들 중 중요한 일부가 혁명에 동조하며 자본주의 계급 입장에서도 군사쿠데타는 모험적이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그들의 상처난 권위를 재생산하기 위해 야당과 노동조합운동의 “좌파적” 정치 집단, 어쩌면 이슬람주의적 엔나흐다당 대표자들까지도 관계해야 한다고 강요받을 수 있다. 20년간의 망명 후 다시 튀니지 땅으로 온 엔나흐다당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인 라헤드 간누치는 새로운 내각과 관련하여 매우 불명료한 입장이다. 그의 정당이 여성권과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그의 주장과 그의 복귀 당시 벌어졌던 시위들(...)은 이슬람 근본주의 기반이 지금 튀니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나타낸다.
또한 앞으로 계속 일어날 것은, 아직 마지막 말을 하지 않았으며 과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노동자계급에 맞서는 이 “새로운” 정부가 위기에 놓일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주의 주체들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를 세워야 하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튀니지에 열렸다. 혁명적 과정을 통해 아래에서부터 형성된 구조들을 모든 차원으로 확장시키고 공동으로 협력하는 것은 혁명의 진보와 다가올 투쟁을 준비하는 데 불가피하다(후략).
[원문]http://www.sozialistische-alternative.de/index.php?name=News&sid=4088
[원제]Tunesien: Revolution am Scheideweg
[게제]2011년 2월 5일
[번역]정은희(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