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경기중부지부와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주관으로 열린 이번 추모대회는 오후 6시 안양역 앞에서 추모대회를 알리는 집회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후 참가자들은 안양샘병원까지 박창수 열사의 영정사진과 만장을 앞세워 행진을 진행하였고 병원 앞에서 추모제를 진행했다.
추모제에 참가한 윤욱동 금속노조 경기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이날 발언에서 “박창수 열사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했던 것은 1천만 노동자의 총단결을 위한 민주노조 운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운동은 목숨을 걸만큼 절박하지 않다. 세상을 뒤집겠다기 보다 지금 갖고있는 것을 지키고 기득권 층을 개선시키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착취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오늘날 운동의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발언에 이어 수도권 율동패와 가수 지민주 씨의 추모공연이 있었다. 지민주 씨는 노래 <벗이여 해방이 온다>를 부른 후 “당시 열사가 목숨걸로 지킨 민주노조의 씨앗이 과연 지금 부끄럽지 않은 지 돌아보다야 한다. 박창수 열사가 걸어온 길은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없는 길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그것이 우리의 역사인 것이다”며 노래 <이 길 끝에 서서>를 열창했다.
▲ 박창수 열사의 아버지 황지익 씨 |
이날 추모대회에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조합원들 외에도 유가협 강민호 열사의 아버지, 추모연대 김명운 대표, 한진중공업 열사회, 안양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이 함께 했다. 추모대회에 참석한 박창수 열사의 아버지 황지익 씨는 이날 발언에서 “여기 안양에 올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저들은 무엇이 그리 두려워 우리 노동자를 죽이고 강제부검했는가. 그러나 21년이 지난 아직까지 세상은 더 나아지지 않고 슬픈 현실이다. 작년까지 참석했던 창수의 어머니가 많이 아파 오늘 이 자리에 오지 못했는데 얼마나 괴롭겠는가. 우리 부모가 더 늙어 죽기전에 꼭 진상이 규명되길 바란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박창수 열사는 1990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에 당선되어 활동하던 중 대우조선 파업에 대한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는 이유로 1991년 구속되었다.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1991년 5월 4일 머리부상을 이유로 안양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틀 뒤인 6일 의문사를 당한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당시 경찰과 언론은 이를 자살로 발표했다. 유족과 노조 측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경찰은 영안실 벽을 뚫고 강제로 시신을 탈취해 부검한 뒤 자살로 처리했다. 정권이 바뀐 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박창수 열사 사건을 조사했으나 명확한 사인을 밝히지 못한 채 지난 2004년 진상 규명 불능을 발표한 바 있다.
이날 추모제에는 춤꾼 이삼헌 씨의 추모공연이 있었다. 그의 몸짓과 흩트러진 국화꽃잎에 추모제의 분위기는 한층 숙연해졌다. 추모공연 이후 참가자들은 박창수 열사의 영정 앞에 헌화를 하고 노제를 지내는 것으로 이날 추모대회는 마무리되었다.
▲ 이삼헌 씨의 추모공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