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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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세 번째 인간

[시] “스물 세 번째 인간은 오늘 밤 이후 최초의 인간입니다”

2009년 4월 8일, 첫 번째 자살,
두 번째 뇌출혈 사망, 세 번째 심근 경색 사망,
네 번째 자살, 다섯 번째 자살, 다시 자살, 또 자살, 또 다시 자살,
심근경색 사망, 심근경색 사망, 자살, 자살......
2012년 3월 30일, 임대아파트 23층에서 투신자살,
꽃망울 맺히던 어느 봄날,
스물 두 번째 죽음이었습니다.

스물 두 번째 인간이여,
첫 번째 인간의 동지여,
두 번째 인간의 동생이여,
세 번째 인간의 친구여,
미안하오! 용서해다오!
제발 떠나지마! 당신 없이 어떻게 살아요!
하소연 하고 애원 했지만 스물 두 번째 인간은
첫 번째 인간이 그랬던 것처럼
이 잿빛 삶을 떠나 저 검은색의 죽음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갔습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누가 말해줄 수 있나요?
스물 두 명의 인간이 절망을 견디다 못해 죽었어요.
아니, 잘 모르겠어요. 좀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
스물 두 명의 인간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살고 싶어, 너무나 살고 싶은데 말이야,
하지만 삶은 왜 이리 잿빛인지,
이건 삶이 아니야, 나는 이미 죽었는지도 몰라,
그래, 이미 죽은 거야, 흐느끼며, 중얼거리며,
눈을 질끈 감고, 감았다 뜨고, 다시 눈을 감고, 다시는 뜨지 않고
영원한 검은색의 죽음 속으로 돌이킬 수 없는 한발을 내디뎠어요.
아니, 아니,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 누가 스물 두 번째 죽음의 온전한 의미를 말해 줄 수 있나요?

2009년 4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수많은 기념일, 휴일, 생일, 투표일, 하루하루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을 자축하고,
안온한 일상을 수호하고,
행복의 방정식 안에서 맴돌며,
세계의 비참을 외면하고,
인간의 절규에 귀를 닫고 살고 있을 때,
스물 두 명의 인간이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왜 죽어야만 했습니까?
누구든 말해주세요. 그들은 누구입니까?

내가 아는 사실 하나를 말해줄게요.
그들은 살아 있을 때 노동자였습니다.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에요.
노동자는 우리가 소유한 근사한 기계들의 창조자랍니다.
기계의 구석구석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그들의 지문은 여기저기 찍혀 있고
그들의 땀방울은 곳곳에 배 있고
그들의 숨결은 아직도 엔진 속에서 부릉거리고 있어요.
그들은 강철과 불을 다스리는 다정한 프로메테우스였어요.
그들은 또 너무나 선량한 인간들이었습니다.
밥은 반드시 나눠 먹는 것이라 여겼고
술잔은 언제나 건네는 것이라 여겼고
동료의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기대면
그 사이에서 노래와 춤이 분수처럼 솟구쳤지요.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줄게요.
어느 날 자본은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그들을 해고했지요.
그들은 싸웠습니다.
동지와,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살겠다고,
생존권을 지키겠다고 싸웠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소박한 것을 위해 싸웠지만
저들은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고 파괴했습니다.
그들의 몸을 짓밟고 영혼을 유린했습니다.
그들은 몸부림치며 외쳤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는 살인이란 말이다!
그들은 싸우고 또 싸우면서 몸과 영혼이 소진됐고
삶은 잿빛으로 황폐하게 물들었고
하나 둘씩 차례차례
검은색의 죽음 속으로 영원히 빨려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죽음을 멈추고 삶을 시작하기 위해
잿빛을 초록색으로 향하게 하고
검은색을 푸른색으로 되돌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어젯밤의 황막한 어둠 속에서
오늘 새벽의 음습한 안개 속에서
아직은, 아직은 등장하지 않은
스물 세 번째 인간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스물 세 번째 인간이여,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여자인가요? 남자인가요?
당신은 결혼은 했나요? 아이는 있나요?
당신은 여전히 해고자인가요? 아직도 투쟁 중인가요?
당신은 혼자인가요? 아니면 혼자가 아닌가요?
당신은 또 다른 헌화와 조문을 기대하나요?
당신은 경찰과 용역과 싸우지 않으면 향불 하나 밝힐 수 없는
이 삭막한 거리의 장례식을 끝낼 수 있나요?
당신은 살 준비가 돼 있나요? 아니면 죽을 준비가 돼 있나요?

스물 세 번째 인간이여,
우리는 당신이 등장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등장하자마자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테니까요.
스물 세 번째 인간이여,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이 등장하길 원합니다. 등장하자마자
권력과 자본의 눈앞에서 사망자 명단을 불태우길 원합니다.
당신은 스물 두 번째 죽음 앞에서 호소합니다.
제발, 이제 누구도 죽지 마세요.
차라리 내가 죽겠습니다. 차라리
내가 스물 세 번째 인간이 되겠습니다.

그때 누군가 당신의 손을 잡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동지, 아니에요, 형, 아니야, 친구,
제발, 제발,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스물 세 번째 인간은 당신이 아니라 나여야 합니다.
내가 스물 세 번째 인간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스물 세 번째 인간은 하나 둘씩 늘어납니다.
열 명에서 백 명으로
백 명에서 천 명으로
천 명에서 만 명으로 늘어납니다.

스물 세 번째 인간이여, 당신이 누구인지 알겠습니다.
스물 세 번째 인간이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겠습니다.

스물 세 번째 인간은 눈물을 흘리는 자입니다.
스물 세 번째 인간은 분노하는 자입니다.
스물 세 번째 인간은 권력의 폭력을 온몸으로 막는 자입니다.
스물 세 번째 인간은 자본의 횡포에 온몸으로 맞서는 자입니다.
스물 세 번째 인간은 스물 세 번째 죽음을 멈추는 자입니다.
노동자와의 연대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불의를 향한 저항입니다.
해고를 멈춰라! 해고를 멈추란 말이다! 울부짖는 자입니다.
스물 세 번째 인간은 오늘 밤 이후 최초의 인간입니다.
우리 모두입니다. 인류 전체입니다.

이제 우리는 연대와 평등의 이 밤을
세계의 무릎 위에 아기처럼 고이 눕히고
부드럽고 떨리는 목소리로 당신을 부릅니다.

스물 세 번째 인간이여,
첫 번째 인간의 동지여,
두 번째 인간의 동생이여,
세 번째 인간의 친구여,
스물 두 번째 인간의 부활이여,
죽음의 죽음이여,
삶의 삶이여,
이 죽음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삶은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니라면,
당신이 아니라면.

(2012.5.11, 대한문 앞 문화제에서)

덧붙이는 말

이 시는 5월 11일 저녁 대한문 앞에서 진행된쌍용자동차 22명의 희생자를 위로하고 연대하는 <문화제>에서 발표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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