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로 인해 해직된 교사 12명 중 김영승 교사(세화여중), 그만 홀로 교문 밖에 남았다. 일제고사로 인한 해임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강원지역 교사들은 3월 초에, 서울지역 공립학교 교사 7명은 4월 1일자로 학교에 돌아갔다.
김 교사는 “먼저 복귀한 선생님들을 보면, 표정관리가 안 될 정도로 부럽다” 말했다. “어제도 지회에서 윤여강 선생님(일제고사 해직교사․무학중)을 뵀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수업 시수가 많다, 피곤하다’ 그러시더라. 속 쓰려서 더 묻지 말아야겠다 싶었다.(웃음)”
일주학원, 김 교사 복직 막으려 파면 중 또 파면
김 교사 역시 지난 3월 대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세화여중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주학원은 그의 복직을 막기 위해 지난해 7월, 1심 승소판결 이후 2차 파면을 가했다. 2차 파면에는 일제고사와 더불어 지난 2008년 교육감선거 당시 불법선거운동을 했다는 이유가 더해졌다.
해당 사안은 이미 고법에서 판결을 내렸으므로 김 교사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교원소청심사위에 소청을 제기했으나 소청위는 징계사유, 절차, 양정 모두 인정된다며 이를 기각했다. 결국 김 교사는 지난해 12월, 2차 파면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행정법원에서 1심이 진행 중이다.
▲ 세화여중 정문 앞에서 등하교 시간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김영승 교사는 관심을 갖고 다가서는 아이들에게 ‘파면’이 무엇인지, ‘복직’이 무엇인지 수업을 하듯 조근조근 설명해주었다. |
5일, 세화여중 앞에서 다시금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김영승 교사를 만났다. 두 번이나 파면당한 사람 치고(?) 밝고 경쾌했다. 관심을 갖고 다가서는 아이들에게 ‘파면’이 무엇인지, ‘복직’이 무엇인지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그에게서 한자락 여유도 느껴졌다. 김 교사는 “이 모든 것이 예견했던 일”이라 말했다. 일제고사로 촉발된 파면이었지만 그 앞에는 13년 동안 싸워온 사학재단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학에선 교육적 관점 갖는 것, 거짓말 하지 않는 것 모두 ‘죄’
김 교사가 처음 발령을 받은 것은 1996년. 그의 첫 학교는 세화여중이 아닌 세화여고였다. 하지만 그는 단 1년 만에 전출당했다. “세화여고에 발령받았을 때 이 재단을 통틀어 전교조 조합원이 나 하나였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97년에 여중으로 강제 전출됐다. 세화여중에 와보니 비슷한 사람들이 쫓겨나 있었다. 그들을 모아 분회를 만들었다. 덕분에 관리자들은 이후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무조건 ‘김영승 때문’이라고 한다.”
재직시절 동안 김 교사는 학교와 건건이 부딪혔다. 그는 인사위원회와 학교운영위원회를 민주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자고 했고, 형편없는 점심을 제공하는 급식업체를 바꿔야 한다고 학생들을 대변했다. 교육정책 때문에 부딪히는 것도 많았다. 무조건 교육청 지침대로 하려는 학교에 교육적 관점을 갖자고 맞섰다. 일제고사도 그중 하나였다.
▲ 지난 2009년 2월 7일, 김영승 교사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던 날 세화여중 재학생, 졸업생, 동료 교사들은 정문 앞에서 '세화 지키기 문화제'를 열어 김 교사를 응원했다. |
학교는 그런 김 교사를 눈엣가시처럼 여겨왔다. “실제로 이번에 나를 파면하면서 학교 측이 소청에 제출한 자료를 보니 98년도 것부터 무려 13년 치를 모아놨더라. 연가투쟁 갔던 것부터 교무회의 발언 내용까지 있었다. 징계사유는 안 되지만 평소 근무태도에 참작하라는 거였다.” 지금껏 학교가 ‘때’를 기다려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김 교사는 이 역시 각오했던 일이라 말했다. “어차피 애들한테 교과 잘 가르치고 ‘하하호호’만 할 생각만으로 교사가 되지 않았다. 아무려면 사립학교에 들어와서 세 학교 아무도 가입 않는 전교조를 동호회인줄 알고 혼자 가입하고 분회 만들고 그랬겠나. 학교라는 게 아주 축소된 사회인만큼 학교 안에 온갖 문제가 있고 교사는 그 최전선에 서는 일이다. 이런 것도 감당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마음을 먹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려운 세상, 이런 각오를 한결같이 지켜올 수 있었던 그의 동력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 앞에선 솔직해진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거짓말하지 않으려면 내가 변하고 움직여야 한다. 가령 아이들이 ‘급식이 너무 맛이 없어요’ ‘급식업체 바꾸면 안 되요?’라고 말 할 때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급식 식재료가 어떤지, 조리는 어떻게 하는지 관심 갖고 이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건지 생각하는 게 교사다. 애들한테 거짓말하고 얼렁뚱땅 넘기는 건 좀 우습고 옳지 않다. 그런 모습으로는 아이들 앞에 떳떳하게 설 수도 없다. 편하게 살 팔자는 아니다.(웃음)”
복직까지 2년 이상 걸릴 수도… “즐겁게 가면 되죠”
2009년 2월 일제고사 건으로 파면돼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이 2년. 2차 파면으로 인해 이제 갓 시작한 행정소송이 끝나려면 앞으로 또 2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애초에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했었다지만 2년을 더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김 교사는 그래도 가야 한다 말한다. 그에게 복직은 선택이 아니었다.
“사립은 법원 판결을 다 이겨도 복직 안 시키는 경우도 있고, 돌아가도 저 인간 자를 건수 없나 또 얼마나 벼르겠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내가 풀어야 할 지점이다. 반드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게 학교에서 나를 기다리는 조합원, 지켜봐준 학생, 학부모들에게 내가 여태 보여준 모습이고, 내게 기대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가 ‘내 자리’다.”
▲ 지난 2009년 2월 7일 '세화 지키기 문화제' 모습 |
이날 김 교사를 응원하러 나왔다며 그가 1인시위를 하는 모습을 내내 지켜본 한 학부모는 “김영승 선생님은 내 학창시절과 두 아이의 학교생활을 통틀어 만나본 선생님 중에 가장 존경할만한 선생님, 평생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싶은 교사”라며 “저런 선생님이 교단에 안 계시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꾸 길어지는 김 교사의 싸움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염려했다. 그런 학부모에게 김 교사는 “즐겁게 가면 된다”며 단단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것은, 희망을 걸고 함께 싸웠던, 그리고 여전히 두 손을 꼭 쥐고 지켜보고 있는 학생, 학부모, 동료들에 대해 그가 끝까지 지키고픈 예의이자 우정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