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흑룡강성 동녕현 사회양로원에 이봉운 할머니 만났을 때, 수양아들 고자상(高自祥)의 보살핌 아래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고 중국 조선족계 언론인 [흑룡강 신문]이 2일 보도했다.
![]() |
▲ 이봉운 노인이 흑룡강성 동녕현 사회양로원에서 수양아들 고자상의 보살핌하에 산책을 하고 있다. [출처: 흑룡강 신문] |
이봉운 할머니는 “나의 본명은 이수단(李寿段)이다. 1922년 조선 평양의 한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19살 때 어머니의 중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본 ‘공장’으로 들어갔다. 일본인을 따라 흑룡강성 아성시에 온 후, 일본병사한테 붙잡혀 동녕 요새 ‘위안부’로 들어갔다. 일본이 투항해서야 고통스러운 생활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그 후 동녕현 대두천진(大肚川镇)에서 신분을 감춰 살아왔다”고 했다.
일본 관동군은 동녕 일대에만 39개의 위안소를 세워 1,000여명의 위안부를 한국과 중국에서 데려와 운영했다. 이중 800여명이 한국인 여성들이었다는 것이 할머니의 회고다. 1개 위안소마다 평균 25명 정도의 위안부가 있었고, 5명 가운데 4명이 한국 여성이었다는 설명이다. 2005년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대부분의 위안부들은 2차대전 기간 중 소리소문없이 목숨을 잃었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이제 거의 세상을 떠났다. 이봉운 할머니는 동녕에 생존하는 유일한 한국인 위안부다.
종양수술을 받은지 얼마 안돼 2010년 또 한번 중병을 앓았지만 수양아들의 보살핌으로 건강은 기적적으로 회복됐다. 근년에 이봉운 노인의 건강상황은 좋지 않지만 양로원에서 먹고 입는 문제를 보장해주기에 평온하고 걱정없는 만년생활을 하고 있다.
이봉운 노인은 1987년 동녕현 도하진(道河镇) 양로원에 들어갔다가 2005년에 다시 동녕현 사회양로원으로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