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재밌고 허무한 재판은 없었다. 재판 결과에 따라 누군가는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진검승부 상황인데도 법정은 판사와 예리하고 무시무시한 질문을 던지던 검사까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형사법정(형사27부 부장판사 김형두)에서 있었던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재판 풍경이다.
증인으로 나온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검사의 심문에 때론 강하게 반박하면서도 때론 부드럽고 위트 있게 조목조목 답변했다.
법정은 한 순간 헌법 강의가 됐고, 한 순간 프랑스 혁명사와 러시아 혁명사 강의가 됐다. 그리고 본격적인 민주주의 강의가 2시간 내내 지속됐다. 고전적 민주주의에서, 자유 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 등등의 단어가 쏟아져 나왔다.
김세균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던지기 보다는 검찰의 질문마다 역사 속에 나타난 사례를 중심으로 증언을 이어갔다. 검찰의 날카로우면서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운 질문이 쏟아졌지만 김세균 교수가 학자적 부드러움과 강단을 담아 특유의 몇 마디로 간결하게 대답하거나 반박할 때마다 질문을 던진 검사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검찰은 맑스주의 학자인 김세균 교수의 논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평소 김 교수의 행적과 논문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검찰은 오히려 김세균 교수의 학자적인 내공 앞에 준비된 질문 이외에 반박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떤 질문에선 김세균 교수가 너무 반복되는 심문과정에 ‘휴~’라고 짧게 한 숨만 내쉬어도 방청객 사이엔 폭소가 터졌다.
이날 법정 풍경은 21세기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국가보안법이 규정하는 이적행위가 얼마나 허무한 개그 같은 상황인지를 드러냈다. 검찰은 김세균 교수에게 무려 50개의 질문을 던졌지만 김세균 교수는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자유민주주의 강의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게 풀이해 나갔다.
굳이 사회주의가 어떻다란 얘기도 필요 없었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헌법 제1조는 사회주의 운동이든 어떤 운동이든 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운동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다 못해 허무할 정도였다.
검찰은 폭력혁명론, 군대와 경찰 해체, 사노련 강령의 헌법 부정, 소비에트, 민중봉기 등의 단어를 부각하며 사노련의 이적성을 드러내려고 했지만, 김세균 교수는 그런 단어들의 학문적 의미와 사회주의 운동의 현주소까지 꼼꼼하고 유머러스 하게 대답해갔다.
팽팽한 긴장감과 폭소가 묘하게 어우러졌던 사노련 국가보안법 법정은 한국사회의 개그 같은 한 단면을 드러냈다. 무시무시한 주장을 담은 사회주의 운동은 그 수사적 표현만으로 국가보안법이 막 걸면 걸리는 상황이지만, 대안사회를 형성하기에는 너무 미약해 막 걸리지 않는 존재임이 역설적으로 증명됐다. 법정은 그렇게 또 다른 허무개그를 연출했다.
다음 사노련 재판은 7월 5일 오후 2시 서울지방법원 311호 법정에서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