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참고 있었지만 이제 더는 참지 못하겠다고 한다. 일제고사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수능에 지쳐버린 아이들에게 ‘학생이 교육의 주인입니다’라는 피켓을 들게 했다.
“우리가 미숙해서 선동을 당한다고?”
9일 오후 6시 30분, 광화문에 모인 50여 명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No Test No Loser'를 외쳤다. 그도그럴것이, 그동안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시험을 강요해 왔고, 너무 많은 루저들을 만들어 냈다. 기말고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는 7월 13일, 일제고사를 보고 성적을 공개하겠다니 거리로 뛰쳐나오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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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풍선과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집회에 참여했다. 곳곳에는 가면을 쓴 학생들도 있었다. 집회 전, 사회자는 “혹시나 사진이 찍히거나 방송에 나오면 곤란한 학생들은 가면을 착용하라”고 했다. 이 역시 노출됐을 경우, ‘전교조의 선동에 놀아났다’고 얘기하는 어른들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레스(닉네임)씨는 “전국의 모든 학생과 학교를 줄 세우는 일제고사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경쟁을 부추기는 시험에 반대하기 위해 서술형 답안지에 일제고사의 부당함을 썼어요. 객관식 답안지에는 일제고사 거부하는 스티커를 붙였죠. 그 후 선생님들은 저보고 ‘전교조에 놀아나는 학생’이라고 하더라고요. 제 소지품을 뒤지고, 답안지를 찢었어요. 교장, 교감, 교무부장까지 돌아가면서 면담을 했죠.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곽노현 교육감은 뭐하고 있죠? 입시경쟁에 죽어가는 학생들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요.”
또 다른 고등학생인 몰랑(닉네임)씨는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선동’한다는 말에 발끈했다.
“저는 2년 전부터 일제고사에 반대해 왔어요. 곽노현 교육감이 당선되고, 우리를 선동하고 있다고 하는데, 저는 곽노현 교육감 당선 전부터 반대해 왔거든요? 이곳도 그 어떤 어른들의 얘기를 듣지 않고 스스로 나온 거예요. 왜 어른들은 우리가 선동 당했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고등학교 3학년인 A씨는 어른들이 자신들을 ‘미숙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 싫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맨 처음 배웠던 것이 친구들을 밟고 올라서는 법이었어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른들은 저에게 ‘반에서 몇 등 하냐’, ‘1등 해야지’라는 얘기들만 했어요. 사람이 먼저가 아닌, 등수와 점수를 먼저 배우는 것에 회의가 들어 뒤늦게나마 이곳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우리를 ‘미숙하다’고 해요. 왜 항상 우리가 하는 말은 ‘미숙한 아이가 하는 말’로 여겨지는 건가요? 스스로 성찰도 많이 하고, 많은 생각 후에 말을 하곤 하는데 말이죠. 제가 하는 주장이 보호되어야 할 미숙한 말쯤으로 들리는 것이 싫습니다.”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경쟁교육’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일제고사와 같은 경쟁 교육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고등학생인 사영남(가명)씨는 “얼마 전 친구에게서 옆 학교의 학생이 은따를 당하다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친구를 적으로 보는 사회에서 서로를 보는 눈은 불신과 경쟁심 밖에 없기 때문에 은따나 왕따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난다(닉네임)씨는 “어제 대구에서 고등학생이 자살을 했고, 얼마 전 외고에 다니던 학생이 부모님에게 성적표와 함께 ‘이제 됐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면서 “청소년 사망률 1위는 교통사고가 아닌 자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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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교사의 지지발언도 이어졌다. 교대에 재학 중인 조익진씨는 “교과부와 정부는 학력신장을 위해 일제고사를 도입했다고 얘기하지만, 핀란드의 경우 우리와 정 반대의 수업으로 더 높은 학력과 수월성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국제 학력평가에서 핀란드가 1등, 한국은 2등인데,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전혀 본받을게 못된다. 죽은 교육이다’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제고사로 인해 많은 학교들이 부작용을 앓고 있다. 일제고사에 맞는 문제풀이식 교육으로만 수업을 진행하고, 초등학생 역시 야간자율학습을 시키고, 방학에도 보충수업을 받아야 하는 교육 파행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학교별로 등급을 매기기 때문에, 각 학교장들이 학생들을 경쟁의 사지로 내몰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 역시 존재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일제고사 폐지’밖에 없다며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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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모인 학생들을 보며 ‘미숙한 아이들이 선동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단 한 번의 집회로 생각이 바뀔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들은 또 다른 집회와 일정을 기획하고 있다.
이번 집회를 기획한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는 오는 13일, 광화문열린시민마당에서 또 한 차례의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7월 13일 일제고사 날에는 시험을 보는 대신, 놀면서 공부하는 체험학습에 참석할 예정이다. 학생들은 이제 어른들이 만든 ‘경쟁을 위한 공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위한 공부’에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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