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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봄 대전 대한통운 앞은 노동자들의 분노로 가득했다. 박종태 열사의 아내 하수진 씨가 그 가운데 서 있었다. [] [출처: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
벌써 짧지 않은 2년이란 시간이 지났네요.
장례식이 끝난 이후로 저와 아이들은 무엇보다도 넷이 아닌 셋이 살아가기 위한 방법들을 배우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었습니다. 딸아이는 무뚝뚝하고 잔소리 많은 엄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를 다시 찾아야 했고 아들은 같이 목욕도 가고 축구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혼자 져야 함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현실, 정말 말 그대로 믿기 싫은 현실의 두려움에 적응해야 된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온 우리의 생활 터전의 겉모양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지만 실제 생활하는 우리는 달라져야만 했기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요. 그나마 주위 분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이들은 아직 아빠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땐 자신들보다 화물연대 아저씨들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떠난 거 아니냐고 물어 보기도 합니다. 또 집회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집회 하냐고 물어 보기도 합니다. 아직 어리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게다가 뉴스를 보는 어른들에게선 한숨이 끊이질 않으니 더 이해가 안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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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
아빠의 빈자리를 실감할 때마다 어린 나이임에도 견뎌내야 함을 힘들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아빠의 선택이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져가거나 별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여겨진다면 이해는커녕 아빠와 세상에 대한 원망만 커지겠지요.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아니 오히려 우리는 비록 아프고 어려움은 있었지만 아빠의 선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밑거름이 되었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 목숨마저 내 놔야 하는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아빠의 선택이 고귀했음이 증명되는 세상이 어서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2011. 4.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