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력적인 봉쇄 행동을 성사시킨 “허튼짓 이제 그만(Idle No More)”이라고 이름을 내건 캐나다 원주민 운동 조직은 애초 지난해 10월 캐나다 정부가 제기한 법안에 반대한 서스캐처원 원주민 4명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원주민 운동들의 연대와 퀘벡 교육운동을 포함해 캐나다 사회운동을 지지를 받으며 전국적인 초점을 모았고 캐나다 전역을 가로질러 뉴질랜드와 영국으로까지 확산됐다.
급진적인 세계 사회운동 리뷰 사이트인 “roarmag.org”에 5일 노조미 하야세(Nozomi Hayase)는 이렇게 부상한 캐나다 원주민 권리운동의 배경과 진행과정 그리고 현재를 소개한다.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한 변혁을 포함해 어머니 지구와 함께 자립적 삶을 위해 나선 원주민 운동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당신은 쇼핑몰과 거리 아래 깊은 곳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 별을 치유할 힘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려는 우리 선조의 목소리다.
2012년 말 기대되지 않던 장소, 아메리칸 쇼핑몰에서 북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토요일(12월29일) 미니애폴리스, 전형적인 소비 생활을 위한 일상의 무대는 한 순간 정지됐다. 의기양양한 북소리와 즐거운 노래는 마치 벽을 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이어졌다. 쇼핑객은 한명 두명씩 원안으로 초대되며 사람들의 운집은 커져 갔다. 어머니 지구에 온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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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roarmag.org] |
쇼핑몰 중심부는 거대한 동그라미가 나타났다. 수많은 이들이 모였고, 함께 합창하며 춤을 췄다. 플레시몹을 통해 전달된 메세지는 단순하지만 심오했다. 그것은 식민화, 원주민 권리에 대한 공격 그리고 보호된 땅과 물에 대한 폭력 종식이었다.
이 소리를 잘 알고 있는가?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에게 이 원형 춤 플레시몹은 오큐파이 운동과 정취의 기억을 연상시킬 수 있을 듯하다. 2년 전, 오큐파이 월스트리트는 맨해튼에 나타나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자기결정을 행사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며 독립적인 정신과 혁명적인 영혼으로 싸우는 미국인들의 - 신화가 된 것은 다시 나타난 듯하다.
오큐파이 운동에서 사람들은 99%라는 구호 아래 모였다. 좌절, 희망과 생각들을 공유하며 점령자들은 부서진 우리 민중의 사회를 고치고자 했다. 그 순간 ‘퍼스트 네이션스(First Nations)는 원주민으로서 그들 자신의 존엄을 요구하기 위해 일어서기 시작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진 원주민 플래시몹은 “허튼짓 이제 그만(Idle No More)” 그룹이 조직했다. 이 운동은 12월 4일 ‘퍼스트 네이션스’ 대표자들이 법안C-45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고자 오타와에 있는 하원에 입장하려 했으나 저지됐을 때 제안됐다.
캐나다 250만의 보호 수로를 97개로 감축하려는 이 법안은 이후 곧 통과됐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캐나다에서는 일련의 시위가 일어났다. 주류 언론은 이를 무시했지만 소셜미디어의 도움으로 이 운동은 전국으로 확장됐고 지속적으로 미국 그리고 그 너머로 퍼져나갔다.
아타와피스켓 부족의 테레사 스펜스(Theresa Spence) 대표는 이 운동의 상징이 됐다. 12월 11일, 스펜스는 이 법안에 대한 토론을 위해 캐나다 총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그의 행동은 국제적인 이목을 모았다. 원주민 부족이든 아니든 그의 단식 투쟁을 지지하며 모여들었다.
스펜스는 12월 21일 인터뷰에서 민중은 고통이 아닌 안전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옹호하며 개발으로 인해 고통 받는 수많은 민중에 대해 발언했다. 입법부가 행한 그들 땅의 침탈과 조약상의 권리 위반은 캐나다 기업들이 벌이는 상징적인 토지 횡령과 강탈에 대한 보다 큰 전조를 나타낸다.
이는 퍼스트네이션스의 원주민 문화에 대한 공격이자 삶과 존재를 위한 원주민 자신의 신성한 방식에 대한 부정이다. 그것은 퍼스트네이션을 수 세대 동안 구속했던, 승자의 둔기로 모든 것을 취하는 카우보이 자본주의의 연장이다.
2012년 콜롬버스의 날, 미국 원주민 활동가이자 미국 인디안운동의 공동설립자인 데니스 뱅크스(Dennis Banks)는 수 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진행 중인 기숙학교와 그들의 재원주민화 프로그램에 대해 말했다. 그는 그가 아이였을 때 어떻게 그의 가정에서 불쑥 내쳐졌고 기숙학교로 보내졌는지에 대한 경험을 공유했다.
부모와의 소통과 자신의 언어로 얘기하는 것은 금지됐다. 뱅크스는 “미국정부가 실험했던 그것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와 개인, 그 자신 속에 있는 원주민성을 파괴하고자 했다”고 전한다.
샤이엔 강 라코타 출신의 티오카진 고스트홀스(Tiokasin Ghosthorse)는 또한 그가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어떻게 강탈당했는지 말했다. 그는 어떻게 삶의 순환이 깨지고 살아있는 그리고 죽은 모든 것 사이의 복잡한 연결에 대해 사람들이 잊어버리는지에 대해 회상했다. 고스트홀스는 그의 민중이 그들의 사회적 배제를 그것이 자연에 더 가깝다는 이유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명예로운 장소에 있는 것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적한다.
외관상, “허튼짓 이제 그만” 운동은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억압과 폭력의 긴 역사에 대해 “이제 그만”을 외치는 시위의 한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유투브와 쇼설미디어를 통해 퍼진 시위 라이브 장면과 그림들은 저항의 몸짓은 단순한 것 이상이 된 것처럼 보인다.
캐나다에서 타오른 원주민 운동은 뉴질랜드와 영국과 같은 국가로 국경과 대양을 넘어갔다. 이는 치료하며 재생하는 힘으로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허튼짓 이제 그만”은 모두에게 함께 참여하자고 호소한다. 문화 집단의 설립자이자 책임자인 제이콥 드바니(Jacob Devaney)는 “허튼짓 이제 그만” 운동이 어떻게 모든 민중을 위한 운동에 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비폭력 사회 봉기는 우리의, 문제가 많은 사회, 우리 지구 그리고 세계 정부들의 가장 높은 자리를 침식시키고 있는 부패를 치유하고자 나선, 지구 도처 모두의 마음과 심장 속으로 퍼지고 있다.
테레사 스펜스 대표의 단식은 이제 24일째가 됐다. 최근 인터뷰 말미에서, 그는 “어린이들을 위해, 퍼스트네이션스의 어린이뿐 아니라 캐나다의 모든 어린이들을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나이가 많은 세대와 젊은 세대들은 선조의 지혜를 통해 결속했다. 북 벤쿠버에 사는 11살의 타카이야 블라니(Ta'Kaiya Blaney)는 그의 선조가 잃은 문화에 대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지구를 보호하는 데 나눈 책임으로 어떻게 상호 연결됐는지에 대해 12월 29일 “허튼짓 이제 그만” 집회에서 발언했다.
<쇼핑몰에서의 원주민들의 플레시몹 시위>
캐나다를 가로질러, 고속도로를 봉쇄하는 원주민 조직의 노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쇼핑몰에서 그들의 드럼써클, 시위 행진과 “이제 그만”이라는 메아리 합창을 통한 이 운동은 마침내 기업식 아메리카의 주류 담론으로 북미 원주민의 목소리를 드러나게 하기 시작했다.
즉흥적인 드럼써클은 신세계의 얄팍한 상업 문화를 상징하는 미국 쇼핑몰이란 캠퍼스에 초현실주의의 그림 물결을 만들었다. 이 이미지는 토지와 사람들에 대한 착취를 토대로, 일반화된 소비주의적 삶의 방식과 대조되며, 대게 서구화 과정의 그림자로의 망각으로 떨어지는 무언가를 일깨운다.
이 운동은 콘크리트 정글과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윤을 얻으려는 편협한 기업정신이 오랫동안 감추고 접수했던 보다 큰 삶의 가닥을 드러나게 했다.
북아메리카를 가로질러 쇼핑몰을 통해 퍼지고 있는 이 북소리와 전통적인 노래는, 우리 모두가 언제인가 알았던 그러나 현대 생활의 미친 광란에 의해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옆으로 밀려난 우리 어머지 지구의 심장박동처럼 고동치며 점점 커지고 있다.
“허튼짓 이제 그만” 운동은 기억을 위한 호소다. 당신은 쇼핑몰과 거리 아래의 지구 깊은 곳으로부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 별을 고칠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떠올리려는 우리 선조의 목소리다.
*Bill C-45 법안은 캐나다 원주민법 개정을 위해 제출됐다. 퍼스트네이션스로부터의 착취와 개발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원주민 자치 지역 경영과 연방정부가 보호하는 수많은 호수와 물줄기 이동을 목적으로 한다.
[원문]http://roarmag.org/2013/01/idle-no-more-indigenous-movement/
[원제]Idle No More: the rise of an indigenous movement
[게재]2013년 1월 5일
[번역]정은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