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한쪽을 강화하면 다른 쪽은 자연히 확장된다. 내셔널리즘을 공고히 하지 않고는 자본이 안심하고 국경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전통이 깊은 북미·유럽 선진국 좌익운동은 현재 대규모 단일조직보다는 서클활동을 선호하고 있다. 일상적으로는 서클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성소수자ㆍ이주노동자 등 주로 인권문제에 집중하고 있다가 특별히 글로벌로 확장된 의제의 경우에만 한시적인 공동투쟁에 나서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나타난 소련(CCCP) 및 서유럽 모델 양쪽의 관료주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모색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하기에 네트워크가 발달한 것은 서클의 협소함을 보완하기 위한 자구책의 사정뿐 아니라 이념적 측면 또한 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상설조직이라는 고인 물은 쉽게 썩어버린다”는 인식이 광의의 코뮤니스트 생활 속에 깊숙이 박혀 있다. 북미·유럽의 진지한 좌익 서클들은 대개 20~30명 단위의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150여개 정도가 비교적 유연하게 이합집산하고 있다.
2) 대불황의 국면을 맞아 유럽의 노동자들이 들끓고 있다. 5월 5일 아테네 폭동을 포함해 2010년에만 7번의 총파업을 전개했던 그리스, 1,000만 노동자총파업을 전개한 스페인, 시위자 3백만 명까지 치솟은 프랑스의 10월초 연속파업, ‘9.29 유럽행동의 날’에 벨기에 등 유럽 전역 노동자들의 다발집회, 그리고 아일랜드·폴란드·포르투갈·리투아니아 등지의 노동자 투쟁이 프롤레타리아트를 고무시키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 비롯되었던 유럽의 경제위기는 좌익 일각에서 전망했던 신제국주의 다극화를 세계 자본운동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2차대전 이후 미국으로 집중된 세계경제는 기왕의 다극체제에서 단극체제로 자본운동이 진화한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약화는 자본주의의 영구 침체와 체제변혁의 신호를 의미하는 것이지 갈라진 중심축을 비집고 독일ㆍ일본이 회귀하는 영광의 재현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세계자본주의체제 일부인 중국에 대한 과도한 평가도 역사적인 태도는 못된다.
3) 북미ㆍ유럽 좌익운동의 조건과 폭발하는 노동자투쟁의 현실 속에서 의회주의를 표방하는 부르주아 좌파정당들의 당면 처지는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그 표본을 살펴보면, 유럽의 노동자들이 앞 다투어 파업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스웨덴 사민당이 9월 19일 선거에서 참패했다. 사민당의 득표율은 30.9%로 1914년 이래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1932년부터 지금까지 사민당은 열에 여덟 번을 집권해왔다. 1930년 이래 스웨덴은 사민주의의 전형이자 진정한 성공 사례였다. 최근까지도 스웨덴은 그러한 지위를 지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저명한 학자이자 칼럼리스트가 타전하는 이 소식이 오늘의 국면에서 암시하는 바는 두말할 것도 없이 19세기 후반 독일의 베른슈타인이 주창한 의회주의 복지노선의 형편없는 추락이다. 군국주의 애국심에 편승하여 1914년 결별했던 맑스 국제주의에 대한 스웨덴 노동자계급의 일정한 승인이다. 유럽 전체로 확장하면, “사민당은 예전의 열정이 고갈된 채 선거기계가 됐다.” “사민주의자들은 이민자들이나 다른 소수자의 권리에 대해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내 본 적이 없다.”
4) 여기에서 우리는 북미ㆍ유럽에서 전개되는 좌익의 보편적 흐름과 노동자계급의 성숙된 의식을 살필 수 있으며 그 반대되는 조직 무력화의 측면도 함께 따져볼 수 있다. “어제도 오늘 같았으니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이라는 숙명론적 풍조와는 철저히 단절해야 한다. 서클이 중심이 되는 지역분파 또는 분파적 인터내셔널은 본질적으로 쇠락하는 계급운동의 잔존 형태다.
오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유럽의 노동자 파업은 강력한 정치ㆍ사상투쟁이 결여돼 있으며 다분히 이해당사자의 즉자적 요구사항에 제한돼 있다. 투쟁의 일부분을 선도하는 서클 분파의 소심한 담론도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들에게 있어 총체성을 내건 거대담론은 한물간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나침반이며 오류로 점철된 동원령일 뿐이다. 하기에 실현 가능한 권력과 실현 가능한 사회체제 문제를 논의하는 “조직화”는 좌우익을 불문하고 부르주아 지배집단의 전유물로 남는다.
이른바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나 올바른 정당(Party) 출현이 가능하다는 대기주의 함정에 빠져있다. 아직은 코뮤니스트의 무관심한 분열이며 한계다. 투덜거리며 하는 말이지만 비전의 제시는 보다 남쪽의 우리 몫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