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이 시작될 때만 해도 세월이 언제가나 싶었는데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재판받으러 다닌 것과 면회오신 동지들과 얘기를 나누었던 것을 제외하면 너무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기에 되돌아볼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밖에 있을 때는 활동한답시고 태만히 하거나 얼렁뚱땅 넘어갔던 것들을 이 곳 안에서 다시금 재정비할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규칙적이고 규율있는 생활을 통해 몸과 마음을 보다 더 강건하게 단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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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혁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 [출처: 금속노동자 신동준] |
밖에 있을 때는 활동한다는 핑계로 책 한권을 진득하게 읽기가 어려웠는데 이 곳에서는 학습 계획을 세워 꽤나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나아가 활동 속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문제의식조차 체계화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꼬불쳐두거나 대충 넘어가기 급급했는데 이 곳에서 다시금 그런 문제의식들을 끄집어내서 곱씹어보기도 하고 체계적으로 재구성해보기도 하고 있습니다. 단기적 해결과 대응에 급급해했던 태도를 넘어 조금은 장기적 안목을 갖고서 모든 문제를 새로이 접근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항상 신문이나 뉴스 등을 볼 때마다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은 동지들의 투쟁소식입니다. 올해도 예년에 못지않게 정말로 많은 투쟁들이 있었습니다. 발레오만도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필두로 금호타이어, 동희오토, 기륭전자, KEC 그리고 최근에 1차전을 마무리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에도 뼛속까지 얼어붙게 하는 강추위를 뚫고 고공에서 농성하고 있는 GM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에 이르기까지 쉼없는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투쟁들이 저마다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이야말로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했던 투쟁으로서 이후 금속노조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를 명확히 밝혀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전경련에서는 올해 완성차 4사가 무파업으로 임단협을 타결했다며 극찬을 하면서 이제 한국의 노사관계도 협조주의적 노사문화가 정착되어가고 있다고까지 자평을 했던 바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의 공장 점거 농성투쟁은 이런 전경련의 평가를 휴지조각처럼 날려 버렸습니다.
아니 그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정규직 조합원과 지부의 헌신적 지원과 연대 속에서 이루어진 투쟁이었다는 점에 무엇보다 큰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회사와 공권력의 무차별적 탄압과 압박 속에 일시적으로 투쟁을 접기는 했지만 그것은 투쟁의 종료가 아닌 더 커다란 투쟁을 위한 일보 후퇴였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를 비롯하여 조선과 철강 등 금속의 주력 사업장에 비정규직의 비중이 급속히 늘어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현대차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연대투쟁이야말로 다른 사업장으로 확산되어 새로운 투쟁의 불길을 당길 수 있는 초석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동지들! 이명박 정권의 막가파식 탄압의 광풍이 지속된다 할지라도 15만 노동자가 하나로 단결하여 내년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연대투쟁해서 승리하는 사례를 만들어내고 쌍용차를 비롯하여 구조조정과정에서 해고당한 동지들이 꼭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저도 이 곳 안에서이긴 하지만 마음으로나마 힘찬 투쟁으로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2010년 12월 25일
안양교도소에서 김 혁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