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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486 정치인들은 99년 새천년민주당의 정치개혁을 위한 젊은피 영입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다. 이들은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창당과 함께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486들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간판인사들 상당수가 재선에 실패하면서 원외를 떠돌다 2010년에 진보행동을 결성했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다시 원내로 진출했다. 현재 진보행동엔 현역의원 25명이 있으며, 지역위원장이나 기초의원까지 포함하면 50여 명이 넘는 정치인이 가입해 있다.
이날 진보행동의 해체선언은 두 달 여의 토론 끝에 이뤄진 합의로 당내 계파청산과 의견그룹 활성화를 명분으로 삼았다. 2004년 이후 두 번의 대선과 두 번의 총선에서의 연이은 패배의 책임을 지고 486 정치인들부터 학생운동을 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정권교체에 헌신하겠다는 것이다.
진보행동 운영위원인 우상호 의원은 ‘486 진보행동의 반성과 미래’라는 발제문에서 “486은 97년 정권교체 이후 정치개혁과 새로운 정치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정치에 입문했다”며 “국민들은 80년대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486이라면 뭔가 기성정치와 다른 성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기대를 했지만, 우리는 기존 정치와 정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을 기울이는데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우상호 의원은 “우리는 기존 정치문법을 배웠고, 기존 관행을 혁파하는데 주저하며 기존 정치권의 벽을 허물어뜨리는데 부족했다”며 “지도부를 맡은 선배 정치인들의 당직 요청에 많은 486 정치인들이 합류하면서 우리는 당권파나 각종계파로 분류됐다”고 토로했다.
당이 어려울 때 도와야 한다는 논리로 당직 활동을 했지만, 내부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보다 당시 주류집단의 논리를 대변하거나 변호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10월부터 진보행동이란 정치모임을 만들고 새로운 정치실험을 시도했지만, 역시 계파의 벽을 완전히 뛰어넘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우상호 의원은 이어 “486 정치인들의 장점은 80년대 학생운동을 통해 집단적으로 가치를 공유하고 집단적 실천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인데도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한두 달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가졌을 뿐 공동의 실천을 위한 정책 아젠다를 정해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데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486은 당내 문제나 남북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낸 적은 있지만, 국민의 삶과 관련된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국민들이 관심을 기울일 만한 가치와 노선 정립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우상호 의원은 “민주당은 계파정치를 해결하지 않고 혁신할 수 없다”며 “먼저 486 진보행동부터 해체하고 더 이상 486이라는 과거 인연으로 모임을 만들지 않겠다. 노선과 정책을 중심으로 색깔 있는 생활정치를 해야 한다”고 진보행동 해체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총선, 대선의 패배를 한국 정치, 민주당의 변화와 혁신의 계기로 삼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며 “진보적 자유주의의 담론을 정립하고, 국민들의 고통과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 아젠다를 수립하고 실천해 전국적, 전 계층적 대중정당 건설을 목표로 수권정당 민주당을 재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