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11월 14일 유럽총파업
11월 14일 프랑스 민중은 “우리 모두는 그리스인이다”라며 유럽 경제위기의 최대 희생자 그리스인에 대한 연대를 표현했다. 이는 그들이 44년 전 파리 68운동의 급진적인 학생지도자 다니엘 콘-벤디트에 대한 보수언론의 선동에 맞서 “우리 모두는 유대인이자 독일인이다”라고 외친 구호다. 프랑스 보수언론은 당시 유대계 독일인으로 프랑스 68운동을 선동했던 주요 인물 중 한명인 콘-벤디트에 대해 “유대인, 독일인 그리고 바래지지 않는 자”라고 비난한 바 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구호는 벼랑 끝에 선 그리스 민중에 대한 연대를 상징하는 한편 경제 위기와 긴축이 민족 국가의 문제가 아닌 금융자본과 지배질서가 강요하는 모순이라는 인식과 이에 맞선 공동의 투쟁을 상징한다.
이러한 유럽 민중들의 노력이 응집된 11월 14일 유럽총파업에는 유럽 23개국 40개 노총의 수백만 명이 참여하며 4년 간 지속된 유럽 경제위기와 가혹한 긴축조치에 맞선 투쟁의 한 분기점을 이뤘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몰타와 사이프러스 노동자들은 전국총파업을, 이탈리아와 벨기에 노동자들은 부분 파업에 돌입했고 독일, 프랑스 등 “위기 관리국” 노동자들은 연대 시위를 벌였다. 스페인에서만 전국 800만 명이 파업에 나섰으며 유럽 전체에서 천만 명이 함께 긴축에 맞서 공동의 전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이날 유럽총파업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외 다른 지역에서는 제한적으로 진행됐다는 평가다. 그리스는 3시간 파업에 그쳤고 독일, 프랑스, 북유럽 등 노동자들의 파업은 조직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유럽총파업은 이후 보다 포괄적인 연대를 위한 기반을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Lisbon, Portugal: November 14, 2012 General Strike from brandon jourdan on Vimeo.
포르투갈 11월 14일 총파업 의회 앞 시위 장면“재스민은 다시 피어난다”...재부상한 북아프리카 대중 투쟁
“실업과 가난을 멈추라”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시위한 부아지지의 외침은 여전히 계속된다. 북아프리카에서는 2010년 12월 17일 실업과 가난에 맞선 튀니지 26세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으로 점화된 민중들의 봉기가 다시 격화되며 지속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 예멘, 리비아는 정권을 교체했으며 시리아에서는 외세의 지원 아래 무장한 반군과 정부군의 유혈 전투가 지속 중이고 바레인, 요르단 등 다른 지역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재스민혁명을 낳은 튀니지에서는 지난해 11월 온건 이슬람주의의 엔나흐다당이 집권한 후 이슬람주의 헌법 개정 등을 문제로 야권의 반대가 늘어가고 있다. 특히 11월말 실리아나 지방에서 빈곤을 이유로 발생한, 도로 점거, 파업을 포함한 격렬한 대중 시위는 정부의 폭력 진압으로 전국적인 대중 투쟁으로 확산된다. 12월 6일 튀니지에서는 4개 지역에서 지배 정당에 반대하는 대중파업이 벌어졌으며 튀니지 노동조합연맹 UGTT는 13일 총파업을 계획했다 정부와의 협상 후 철회하기도 한다. 야권의 시위 한편에서는 인권, 노동조합 등 사회운동 세력이 근본 이슬람주의 세력으로부터 공격 당하는 등 정치적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이집트 혁명세력은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하는 정부와 의회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지속해왔다. 혁명세력은 특히 탄타위 군부가 민주 선거를 실시하도록 결정적으로 압박했던 11월 투쟁 1주년을 계기로 구속자 석방, 살인진압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며 대중 투쟁을 다시 고조시킨다. 이 가운데 11월 22일 무르시의 긴급조치와 이슬람주의 주도의 새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강행되며 무르시 반대 시위는 전국적인 대중투쟁으로 확산된다. 범야권은 혁명수호전국전선을 결성하고 대중투쟁을 주도했지만 22일 최종 투표에서 새헌법안은 가결돼 새로운 대립이 예견되고 있다.
평화시위의 압력 아래 정권을 이양한 예멘 그리고 다른 혁명과는 대조적으로 무장봉기와 외세의 개입 후 비종교 세력이 정권을 획득한 리비아에서는, 계급간 지역간 종족간 갈등으로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11월 바레인에서는 민주정부 구성, 일자리 보장, 차별 금지와 경찰 폭력을 문제로, 요르단에서는 IMF 구제금융 전제사항으로 강행된 물가인상을 문제로 대중 투쟁이 벌어졌다. 쿠웨이트에서는 총선을 문제로 한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실업과 높은 물가를 이유로 자치정부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시위가 나타났다.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최근 반정부 시위가 발발해 지속 중이다.
북아프리카에서 다시 부상한 대중 시위에 대해 외신은 주로 이슬람주의의 부상 아래 아랍의 봄이 겨울을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애초 실업과 빈곤 해결 그리고 정치적 자유를 위한 변화는 자유-이슬람주의 세력 집권 아래 한계를 노정해 혁명 정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쟁이 불가피한 것으로 예측된다.
독재 정권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진행됐던 북아프리카는 세계 경제 위기의 가장 약한 고리에 해당됐다고 평가된다. 특히 북아프리카는 수출, 이주노동 등 유럽과 가장 많은 교역을 맺어 유럽 경제 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북아프리카 경제 여건이 더욱 악화되며 정부들이 IMF에 의존할 계획이어서 정치적 불안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는 48억 달러 규모의 MF 구제금융 교부를 앞두고 있으며 요르단도 20억 달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튀니지도 IMF에 25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집트 민중들의 투쟁을 표현한 이집트 인디밴드 <시티밴드>
“자본의 강탈에 맞선 빼앗긴 민중의 몰수”...스페인 소농들의 점거운동
“은행은 공적자금으로 구조됐다. 그러나 구조돼야 하는 자는 민중이다.” 스페인 공산주의 마을 ‘마리날레다’의 고르디요 시장의 말이다. 부동산 시장 거품 붕괴로 스페인 금융위기 후 경기 침체에 빠진 스페인 안달루시아 소농과 현직에 있는 고르디요 시장은 지난 8월 위기를 유발한 상징 거점을 점거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가난한 농민과 고르디요 시장은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토지 사용권을 요구하며, 방치된 국방부 토지를 점거하는 한편, 민중들을 굶주리게 하는 체제의 음식물 유통산업인 대형마켓을 “털어” 굶주리는 민중에게 분배했다. 이들은 지역을 돌보지 않는 귀족들의 성과 경제위기에 책임이 있는 은행도 차례로 점거하며 “빼앗긴 민중의 빼앗은 자에 대한 몰수” 행동을 벌였다. 외신은 이들을 현대판 ‘로빈 후드’라고 불렀다.
고르디요 시장과 함께 당시 점거운동을 주도한 디에고 까냐메로 안달루시아 노조 사무총장은 최근 2009년 안달루시아 라디오방송사 점거 시 경찰에 대한 폭력 혐의를 이유로 2년형과 360 유로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그가 돌을 들고 경찰을 공격했다고 기소했지만 그는 “내가 들고 있던 것은 돌이 아니라 마이크”라며 혐의를 부정하고 있다.
스페인은 부동산 시장 몰락에 따른 은행 부실 확대로 인해 금융위기를 겪었다. 정부는 이들 은행에 대해서는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구제하는 한편 대대적인 긴축조치를 벌이며 민중들의 삶을 악화시켰다고 비판받는다. 안달루시아 지방 실업률은 현재 34%이며 25세 아래 청년실업률은 63%에 달한다.
슈퍼마켓 몰수시위 장면
멕시코의 봄을 부른다, “요 소이 132” 운동
“나 또한 신자유주의 후보를 반대한다.” 멕시코에선 신자유주의 후보에 맞선 131명의 학생 선언 후 수만명이 이에 대한 지지로 “132번째”임을 자임하며 등장했다.
7월 1일 멕시코 대선을 계기로 신자유주의 후보와 미디어에 반대하며 분출한 “요소이 132(Yo soy 132, 나는 132번째다)” 운동은 침체됐던 멕시코 학생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열었다.
요소이 132운동은 5월 초순 선거운동을 위해 멕시코 사립 대학 이베로아메리카 대학을 방문한 제1 야당 제도혁명당(PRI)의 페냐 니에토 대통령 후보에 대한 반대 시위를 보수언론이 묵살하며 시작됐다. 학생들은 페냐 니에토 대통령 후보에 대해 2006년 멕시코시티에서 진행된 아텐코 노점시위 등을 문제로 “신자유주의 후보는 돌아가라” 등을 외치며 반발했으나 보수언론은 이를 의도적으로 삭제 보도했고, 이후 학생들은 자신들이 시위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신분증을 제시한 비디오를 촬영했고 유투브 등에 올렸다. 이 수는 131명에 달했고 이후 이들의 동영상을 보고 “나도 참여하고 싶다. 나는 132번째다”라는 메시지가 트위터 등에서 잇달아 전해지며 “요소이 132”운동이 시작됐다.
“요소이 132” 운동은 멕시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 신자유주의 후보를 부각시키는 주류 미디어에 대한 반감으로 멕시코 전역 180여개 대학으로 확산됐고 대선 과정에서 미디어 민주화, PRI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을 벌이게 된다.
대학생 중심의 “132”운동이 확산되자 이에 고무받은 10대 청소년들의 “133”운동도 벌어졌다. 유튜브 동영상에는 초중고 학생들이 “가난, 교육, 폭력, 정의, 부패에 찌든 멕시코는 이제 그만”이라고 주장하며 “133”운동을 주창했다.
신자유주의와 페냐 니에토 제도혁명당 반대, 미디어 민주화를 내세운 요소이 운동은 선거운동 시기 이들이 주도하는 후보자 방송토론을 벌이는 데까지 이어진다. 이들은 선거관리위원회에 포괄적인 의제에 기초한 4당 토론회를 제안했으나 선관위는 거부한다. 그러나 이후 2개의 국영방송이 이를 받아들이며 요소이 132운동이 주도하는 대통령 후보자 토론이 진행된다. 그러나 페냐 니에토 후보는 질문의 불공정성을 문제로 출연을 거부했다.
페냐 니에토 당선 후 요소이 132 운동은 물품살포와 표 매수 등 제도혁명당의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고발하는 운동으로 변화했고 이는 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 푸에블라, 메리다, 에르모시요, 쿠에르나바카, 티후아나 등에서 대중시위로 이어졌다.
요소이 132운동은 또한 지난 12월 1일 페냐 니에토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멕시코 남부 오악사카 주의 노동조합원과 좌파 정당 지지자 등과 함께 “제도혁명당 없는 멕시코”를 요구하며 취임식 반대 시위를 진행했으며 이날 시위대에 자행된 폭력 진압과 연행을 문제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당시 이 운동은 북아프리카혁명, 스페인 M15 운동, 미국의 오큐파이월스트리트 운동 등 시위 문화와 연관된 “멕시코의 봄”으로 불렸다.
요소이 132 운동
“학생을 빚으로 내모는 등록금 인상에 맞서다”...캐나다 퀘벡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
2011년 3월, 퀘벡 자유당 정부는 공공서비스를 위한 신규 요금 도입 및 추가 인상 등 긴축조치의 일환으로 2012년부터 2017년 사이 2,168 달러에서 3,793달러로의 등록금 75% 인상안을 발표했다.
정부의 계획이 알려지자 2월 13일 라발 대학 사회학과 학생들이 파업을 단행하며 학생시위는 확산된다. 이후 몬트리올 퀘백 대학 단과대 일부가 함께 했으며 시위는 점점 확산된다. 급기야 3월에는 31만의 학생들이 동맹휴업을 하고 거리에 나와 시위하며 퀘벡 주 자유당 정부를 위협하자 정부는 5월 18일 대학 캠퍼스에서의 시위와 집회를 제한하고 수업 참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거부를 요구하는 피켓팅 시위를 금지하는 비상조치(Bill 78)를 공포하며 확산된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5월 22일 시위에 나선 학생은 40만에서 50만 명 규모로 불어났고 결국 들불같이 번진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퀘벡주 자유당 차레스트 주지사는 8월 1일 주의회 해산을 요청하고 9월 4일 주의회 선거를 감행한다. 그러나 자유당은 등록금 인상 철회를 공약한 퀘벡당에 패배한다.
1970년대 이래 캐나다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운동으로 지목되는 퀘벡주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은 총회를 통한 민주적이며 대중적 논의와 다양한 부문 간 연대로 전개됐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된다. 퀘벡주 좌파 학생들이 2001년 설립해 10년 동안 일군 ASSE이 주도한 민주적 토론에 기초해 동맹휴업, 정부청사, 법원, 은행건물, 교량 및 다른 전략 지점들을 봉쇄하며 경제와 주를 교란하는 위력적인 운동을 전개했다. 첫 번째 위력적인 대중시위가 진행된 3월 22일은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과 노동계급의 대중 시위가 일어났던 5월 22일의 운동을 주목하도록 의식적으로 선택된 날로, 이후 매달 22일마다 투쟁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투쟁 문화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긴축조치에 맞선 노동자들과의 연대 및 원주민과 환경주의자들이 반대하는 정부의 퀘벡 북부 개발 계획에도 함께 저항하며 대중적인 연대로 승리한 투쟁으로 평가된다. 예술가들도 학생들의 시위에 함께 하여 대학 등록금에 관한 논쟁을 확산시켰다.
캐나다 학생조직들은 9월말 주 선거 후 무상교육을 관철하기 위한 시위를 지속중이다. 그러나 참여자 수는 100명 수준으로 제한적이다. 지난 총선에서 승리한 퀘벡당은 등록금 인상 철회를 밝혔지만 소수여당인 한편 기본적인 정책 노선은 자유주의적 정부로 근본적인 변화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퀘벡 등록금 인상 저지 3월 22일 행진 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