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들의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눈길을 끈다. 서울형 혁신학교 선사고에서는 지난 6일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3 선사연구과제 발표대회가 열렸다. 연구자는 이 학교 1학년 학생들.
역사교과서 서술이 역사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학생들이 모둠을 구성해 주제를 정하고 이를 연구하는 ‘선사연구과제’ 결과를 발표 하는 이 자리에서 ‘우리들이 파헤친 역사 교과서- 나침반을 돌려라’를 주제로 연구한 선사고 1학년 안예은, 강민송, 신채연 학생은 역사 교과서의 서술 내용이 학생의 역사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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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선사연구과제 발표를 위해 단상에 섰다. [출처: 교육희망] |
이들은 고교 진학 뒤 한국사 교과서로 공부하게 될 현 중학교 3학년 7개 학급 152명을 대상으로 같은 주제에 대해 논란이 된 교학사 교과서와 선사고의 채택 교재인 미래엔 교과서의 서술을 보여준 뒤 학생들의 생각을 물었다.
실제 학교에서도 한 가지 교과서만 사용하기 때문에 각 학급에 한 가지 교과서 지문만 보여 주었다.
서술방식 바꿨을 뿐인데 '일제 강점기 여성의식 고양'은 일본덕?
Ⅴ. 일제강점과 민족운동의 전개 단원 중 교학사 교과서의 ‘…(전략)…여성들의 삶과 의식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여성들의 학교 진학과 사회 활동이 증가하였다. 한편, 일제도 여성들의 노동을 활용하여 전쟁에까지 동원하고자 하였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의식도 자연히 높아졌다.…(후략)…’ 서술과 ‘…(전략)…한국 여성에게는 재산의 소유권과 처분권이 인정되지 않았고, 재산의 상속과 친권 행사에도 차별을 받았다.…(후략)…’는 지문을 각기 다른 학급에 제시한 뒤 ‘일제 강점기 여성의식의 고양이 일제의 여성노동 활용 때문인가’를 물었을 때 교학사 교과서의 지문을 접한 학급 학생 30명 가운데 27명이 ‘그렇다’고 답했으며 ‘아니’라고 답한 이는 7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미래엔 교과서 지문을 읽은 학급 학생 중 26명은 ‘일제의 여성노동 활용 때문은 아니’라는 상반된 의견을 냈고 1명만이 ‘일제 여성노동 활동 때문’이라고 답했다. 교학사는 수정된 교과서에도 이 같은 서술을 문장 배열 순서만 살짝 바꿔 그대로 실었다.
논란으로 인해 ‘착취당하고, 강제로 끌려 다닌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교학사 교과서의 이전 서술인 ‘현지 위안부와 달리 한국인 위안부는 전선의 변경으로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와
비슷한 주제로 미래엔 교과서가 서술한 ‘많은 젊은 여성을 전쟁터로 보내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성노예로 삼았으며 전쟁 막바지에는 여성 정신 근로령을 만들어 수십만 명의 여성을 군수 공장에서 일하게 했다’는 서술을 읽은 학생들의 설문 결과를 살펴보면 교학사 교과서를 읽은 학급 학생 중 19명은 ‘위안부가 일본군 부대에 능동적으로 간 것’으로 여겼으며 2명만이 ‘강제 동원’이라 답했다. 하지만 미래엔 교과서 서술을 본 학급 학생은 25명 중 단 한 명만이 ‘능동적으로 간 것’이라고 답했다.
발표자들은 “두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교과서 집필자의 용어 선택, 문장구성 등이 학생들의 역사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학사, 기계적 객관성도 확보 못해
Ⅵ.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 단원 중 교학사 교과서의 ‘…(전략)…이명박 정부는 안보를 보다 확실히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경제를 선진화 한다는 목표를 가졌다.…(중략)…대한민국은 2012년 20-50 클럽에 세계 7번째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서술과 미래엔의 ‘…(전략)…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살리기를 포함한 친환경 녹색 성장, 교육 경쟁력 강화, 7% 경제성장 및 3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며 기업 활동 규제 완화와 감세 정책을 추진하였다.…(중략)…하지만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약속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했고 방송과 인터넷을 포함한 언론자유가 크게 위축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는 서술은 두 가지 지문을 한꺼번에 제시한 뒤 어느 서술이 더 객관적인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23명은 ‘미래엔’이 3명은 ‘교학사’가 더 객관적이라고 답했다. ‘미래엔’을 선택한 한 학생은 ‘미래엔은 전 대통령의 잘못한 점이 쓰여 있는데 교학사는 전 대통령의 잘못한 점은 쓰여 있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학생에게 고장난 나침반 쥐어줄텐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발표자들은 “학생이 직접 설문용 교과서 지문을 선택해 질문했고 표본 수가 적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학습 주제를 어떻게 서술했느냐에 따라 설문에 참여한 중학생들의 답변이 상이한 것을 보면 실제 교과서의 문장 구성과 표현 등이 학생들의 역사인식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제시하는 나침반 같은 존재인 만큼 왜곡된 교과서로 교육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고장난 나침반을 쥐어주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발표를 마친 안예은 학생은 “연구과제를 위해 학생, 시민들을 만나다보니 교학사 교과서 문제 관련 떠들썩했던 것과 달리 내용을 모르는 분들도 많았다”면서 “보수적일거라 생각했던 어르신들 조차 교학사 교과서 지문 등을 보며 문제의식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학교 생활과 밀접한 주제 연구로 학교 바꾸기
이날 선사연구과제 발표대회에는 선사고에서 3년간 진행되어 온 진로진학 프로그램의 실태를 들여다보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진로체험의 날과 학교 사정으로 인해 계획보다 축소해 진행된 진로특강을 확대하고 학생 선호도 조사와 만족도 조사 등을 통해 호응이 높은 프로그램으로 재정비하기를 제안했다.
선사고 교사, 학생을 중심으로 진행한 ‘바람직한 대화 방향 연구’, 수상작의 경향성, 다양하지 못한 연구 방법 등 올해로 3년째 진행된 선사연구과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선사연구과제 잘 되고 있습니까?’ 등 학생 일상의 모든 것이 연구 주제가 됐다.
이영희 선사고 교장은 “모든 1학년 학생들이 보고서를 쓰느라 고생이 많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연구과제의 문제점과 시사점도 제시됐으니 내년에는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강명희 선사고 혁신부장은 “학생들이 자기 주변에서 주제를 찾아 연구하는 선사연구과제는 시대를 반영하는 영화 속 청소년 상부터 학생 학습태도 연구와 이에 따른 개선방향 등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면서 “오늘 제안된 내용들을 들으며 뜨끔하기도 했고 와 닿는 이야기들도 많아서 학교운영에도 반영이 될 것”이라며 웃었다. (기사제휴=교육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