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이 게시판을 통해 전북 참소리, 미디어충청, 민중언론 참세상, 울산노동뉴스의 기사와 관련된 토론을 직접 하실 수 있습니다.

 

인혁당 40주기, "열사들에 부끄럽지 않게 유신 회귀 정부에 맞서야"

경북 칠곡 현대공원서 4.9통일열사 추모제 열려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이후 40주년, 40년 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열사들, 그리고 고문과 이에 따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열사들을 위한 추모제가 열렸다.

4월 9일 오전 11시, 40년 4월 9일 대법원의 사형 확정 18시간 만에 사형된 서도원, 도예종, 하재완, 송상진, 우홍선, 김용원, 이수병, 여정남 열사를 기억하는 이들 100여 명이 경북 칠곡 현대공원에 모였다. 현대공원에는 도예종, 송상진, 하재완, 여정남 열사와 더불어 2004년 복역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은 이재형 열사의 묘소가 있다.

이들은 열사가 남긴 뜻을 다시 새기고 기억하기 위해 양력 기일에 맞춰 제례와 추모식을 올렸다.



추모제는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와 4.9통일평화재단이 주최했다. 주최 측은 “독재자는 불법적인 고문과 사건 조작으로 열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조작의 억울함은 2007년 무죄판결에 의해 풀렸지만 이미 열사들은 돌아올 수 없다”며 “열사들은 우리 후배들에게 모범으로 남는다. 억압의 희생자로서 열사 정신을 넘어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자 했던 역사의 인내자로서의 열사 정신을 되새길 것”이라고 밝혔다.

하일민 부산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통일 조국 건설 위해 끝까지 투쟁하신 분들이 박정희에게 용공세력으로 몰려 박해를 당했다”며 “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유신 정권으로 회귀하고 정치가 후퇴됐다. 오늘날 이 참담한 몰골로 다시 열사들 앞에 섰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세룡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회장은 “여정남 선배가 돌아가시기 전 시계를 남겨두셨다고 했다. 그 시계를 가진 사람이 우리를 이끌 것이라고 해서 어리석게도 시계를 찾아다녔었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며 “훗날 생각해보니 시계를 남겨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시간을 남겨둔 것이었다. 좌절하지 말고 투쟁하자”고 추모했다.

강창덕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은 “79년 무기징역으로 전주교도소에 구속돼 있을 당시 박정희에게 어떻게 민족의 원한을 갚을까 생각했다”며 “중앙정보부의 김재규에게 사살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춤을 췄다. 그때 만든 시를 이제야 공개한다”며 당시 지은 시를 읊었다. 강창덕 이사장은 재건위 사건으로 1974년 구속돼 1982년까지 복역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도예종, 송상진, 이재형, 전재권, 라경일 열사의 유가족이 참여했고, 라경일 열사의 아들 나문석 씨는 추모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인혁당 사건은 1964년 1차, 1974년 2차에 걸쳐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 인사와 학생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탄압한 사건이다. 1975년 4월 9일 여덟 명의 열사가 사형당했는데 대법원 확정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했고, 2007년 1월 23일 열린 재심재판에서 이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현재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계자 24명 중 7명이 생존 중이다.

덧붙이는 말

박중엽 기자는 뉴스민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민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의견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