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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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이 사라진 자리, 구청은 무엇을 남겼나

[길 위의 노점상](3) 생존까지 ‘불법’으로 낙인찍혀, 합의는 휴지조각

# 구순을 앞둔 익명의 노인이 지난해 12월 26일, 평생 모은 1억 원의 돈을 모 대학에 장학금으로 기부해 화제를 모았다. 할머니는 대구 서문시장서 50년 넘게 야채, 채소를 팔아온 노점상이었다. 또 다른 80대 독거노인 김 모 할아버지도 지난해 12월, 평생 노점상을 하며 모아온 3,500만원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놨다. 보도에 따르면, 김 할아버지는 생필품 외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고, 돈이 아까워 난방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생 재래시장에서 노점상을 해 왔던 80대 할머니도 지난해 9월, 모 대학에 1천 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해당 대학 총장은 ‘할머니의 숭고한 뜻을 받들겠다’고 했고, 언론은 ‘훈훈한 감동’이라는 감상평을 덧붙였다.

# 강남대로서 계란빵 노점을 하던 송 모 씨.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막노동, 경비원, 덤프트럭 운전 등을 하다 10년 전 노점을 차리게 됐다. 마흔 넘어 늦깎이 결혼을 한 그는 시각장애인인 부친과 노모, 부인 등 가족의 생계를 부양해야 했다. 양말, 모자 등 잡화류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개당 700원짜리 계란빵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노점 수레를 압수당하는 등 상시적인 노점 단속으로 생계의 위협을 당하곤 했다. 구청 용역반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구청 트럭 밑으로 기어들어가 시위를 벌인 적도 있었다. 새벽 기습 단속에 항의하기 위해 구청에 찾아간 날은, 문을 열어달라며 항의를 하다 유리문을 부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지난해 9월 2일 체포됐고 사흘 뒤, 1년 6개월 형을 받고 구속 수감됐다.


노점상이 사라진 자리, 구청은 무엇을 남겼나

노점상의 선행은 ‘미담’이 되지만, 그들의 생존권 투쟁은 ‘폭력’이 된다. 사회적 약자로 취급을 받다가도 어느새 불법적 폭력 집단으로 낙인찍힌다. 심지어 그들의 생존권은 보행권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지자체는 시민 보행권 회복을 이유로 폭력적인 단속을 실시한다. 지자체에게 노점이란, 언젠가는 길 위에서 사라져야 할 대상이다.

그렇다면 지자체는 노점 근절을 통해 무엇을 얻어냈을까? 신논현역~강남역으로 이어지는 약 800미터 남짓한 강남대로. 최근 노점상이 사라진 그 구간에는 돌화분과 원형의자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무려 90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시민에게 보행권을 돌려주겠다면서, 오히려 노점이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보행 공간을 잡아먹고 있다. 화분은 비쩍 말라 있었고, 원형의자에는 시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방치되기도 한다.


노점을 빌미로 시민 보행권을 침해하는 지자체는 강남구청만이 아니다. 김해시의 경우 최근 노점상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대로변에 쓰레기더미를 투척해 원성을 샀다. 보행권을 위해 노점을 없애겠다면서 1톤짜리 쓰레기 포대 약 200개를 길가에 전시해 왔다. 보행권은 고사하고 불쾌감만 들어찼다. 강남대로 맞은편 인도 한가운데에는 이열종대로 대형화분이 길게 들어차 있다. 2012년 핵안보정상회담 당시, 서초구청이 노점 근절을 위해 야심차게 들여놓은 거대한 화분들이다.

강남구청에 물었다. 노점철거 이후 강남대로 모습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요? 구청 관계자는 “노점상이 일단은 근절돼 시민들이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꽤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어떤 시민에게, 어떤 경로로 만족도를 조사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그런가보다 했다. 그렇다면 구청은 노점상에 대한 향후 생존 대책도 고려하고 있는 걸까. 질문을 던지자 수화기 너머가 잠잠해졌다. 조금 뒤 생각지 못한 답변이 들려왔다. “노점정비 당시 저희의 순수한 의도를 호도, 매도해 (기사를) 썼다. 진심으로 이야기를 해도 나쁜 쪽으로만 (써서)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 언론을 일상적으로 상대하는 공보실로 연락을 해 봤다. “(담당 공무원이) 옛날에 한번 (인터뷰를) 했는데 구청을 대변하는 것이 안 나왔고, 상대방 쪽 이야기만 많이 부각했다고 한다. 구청에 좋은 얘기를 약간은 보장해 주셔야...”

대화를 거부한 구청은 강남 노점상들의 입에도 재갈을 물리고 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과 강남대로 건물주 등은 지난 2월, 법원에 노점상들을 상대로 집회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노점상의 생존권 집회가 헌법과 집시법에 보호되지 않는 위법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신연희 구청장 등은 “형식적으로는 신고를 하고 정상적인 집회 및 시위를 가장하고 있으나, 실질은 불법노점상을 단속하는 강남구청을 규탄하고 항의하는 내용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강남대로 상인들도 연서명을 통해 “향후에도 집단시위 자체를 금지하여 주실 것을 강력히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구청과의 ‘합의’는 무용지물...노점상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나

그렇다면 지자체와 노점상이 상생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 일부 지자체에서는 노점을 양성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규격마차를 마련해 구청에 정식으로 등록케 하고, 도로점용료를 징수해 노점을 합법화하는 방안이다. 현재 구청과 대치하고 있는 대다수의 노점상들도 노점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종종 구청-노점상과의 대화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한다. 노점과 용역반이 충돌을 빚었던 지역에서도 상생의 방안을 위한 노력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화와 협상은 얼마 가지 않아 파기되기 일쑤다. 대부분 구청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아서다.

  김해지역 노점상 모습 [출처: 전국노점상총연합]

최근 노원구에서는 구청과 노점상과의 갈등이 격화됐다. 노원구청이 1년도 채 안 돼 협상을 파기하고 또 다시 노점단속에 나선 까닭이다. 앞서 노원구청은 지난해, 시민사회 등과 ‘상생위원회’를 구성해 문제해결을 꾀한 바 있다. 양측은 지난해 2월 합의를 도출했고, 대로변에 있던 노점상들을 6월까지 하계역과 수락산역 앞으로 이전키로 했다. 노점상들은 몇 백 만원을 들여 규격마차를 마련했고, 약속대로 장사터를 이전했다. 하지만 6개월도 되지 않아 구청은 새로 이전한 장사터에 들이닥쳤다. 주민 민원이 발생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김정모 전국노점상총연합 북서부지역장은 “구청도 합의안에 동의해 이전을 한 것이었다. 구청의 지원 없이 마차를 마련했고, 전기 설치를 위해 2백 만 원의 비용을 들이기도 했다. 합의 당시 구청은 ‘민원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구청에서 해결하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전을 완료하고 난 뒤 아파트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했다며 단속을 시작했다”며 “문제해결을 위해 시민사회와 상생위원회를 구성하고 합의를 해도 구청은 지키지 않는다. 노원구청은 실무자들의 행정오류 때문이라면서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노원구청은 행정대집행 비용을 노점상에게 청구하고, 단속에 반발한 노점상들을 고소고발하기도 했다. 김정모 지역장은 “노점상 5명에게 각각 50만 원 씩 250만원의 행정대집행 비용을 청구했다. 10명의 노점상 등을 고소고발 하기도 했다. 시민사회가 항의를 해도, 구청은 민원이 우선이라며 강제철거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물리적인 행동으로만 노점 탄압이 진행됐지만, 요새 강남구청이나 노원구청 등은 공무집행방해, 집시법 위반, 건조물 침입 등으로 저항하는 노점상들을 고소고발하고 벌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탄압 방식을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구청과 강남대로 노점상들도 지난 2011년, 강남대로 뒤편 이면도로 장소를 이동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강남구청이 차량 일방통행 보장 및 지중화 사업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합의는 휴지조각이 됐다. 노점상들이 다시 강남대로로 내려와 장사를 시작하자, 또 다시 단속이 시작됐다.

노점상들은 상시적인 노점 단속 뿐 아니라 과태료 폭탄 및 고소고발에도 시달려야 했다. 기습 철거에 반발해 용역반과 몸싸움을 벌인 노점상 한 명은 구속이 됐다. 지난해 말 새벽, 구청의 대규모 행정대집행으로 아수라장이 됐던 인천시 남동구 구월로데오광장 노점상들도 줄줄이 구속됐다. 경찰은 올해 1월, 로데오광장 노점상 2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최오수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대협국장은 “일부 지자체는 무조건적인 폭력적 노점 단속이라는 과거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강공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며 “구청이 자본과 권력을 동원해 생계형 노점을 내쫓고 남긴 것은 말라비틀어진 화분뿐이다. 내쫒긴 사람들은 생계조차 막힌 채 전과자로 전락했고 과태료 폭탄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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