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컨디션이 오르락내리락한다고 했다. 어제만 해도 컨디션이 괜찮아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더니 바로 몸에 무리가 왔나 보다. 가까이서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의 목소리는 작은 소음에도 번번이 묻혔다. 힘들면 인터뷰를 중단하라고 당부한 채 짧은 인터뷰를 시작했다. ‘단식’이라는 벼랑 끝 전술을 택한 그는, 육체적 고통과 함께 10년 장기투쟁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에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단식농성,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0년 투쟁 끝장내고 싶다는 바람 뿐”
2005년 2월 21일 정리해고 이후, 지난 10년간 안 해본 투쟁이 없었다. 17일간의 단식농성, 한 달 넘는 송전탑 고공농성, 과천 본사 점거농성, 불매운동, 심지어 코오롱 회장 자택 앞에서 자해까지 했다. 하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최일배 위원장은 다시 한 번 목숨을 건 끝장투쟁을 선택했다. 왜 하필 너무도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단식’을 택해야 했느냐고 물으니 “우리 조건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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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우리 조건에서는 최선이었어요. 정리해고 이후 50명의 해고자들이 같이 투쟁에 나섰지만 지금은 12명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10년의 투쟁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바람뿐이지요.”
가족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닐 터다. 아빠의 단식농성에 충격 받을까봐 아이에게는 단식 소식을 알리지 못했다. 주변 동지들의 걱정도 커져만 간다. 인터뷰 도중에도 연대 동지들이 종종 천막을 들추고 최일배 위원장의 얼굴을 확인한다. 재능교육지부 여민희 조합원은 농성장으로 들어와 이곳저곳을 정리한다. 김정우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도 천막을 들추고 최일배 위원장과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는다.
주변 동지들이 얼마나 그를 걱정하는지도,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도 알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단식으로 신경이 예민해지는 통에 속 좁은 소리를 하다가도 이내 부끄러워져 스스로 반성을 하곤 한다.
“사실 섭섭한 점은 아주 조금이에요. 낮 시간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삼보일배를 하려는데, 참여 인원이 적어도 10명은 넘어야 하잖아요. 사실 열흘 정도 지나면 기본적으로 10명 정도는 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안 될 때 약간 서운했어요. 그리고 나서 스스로 너무 작은 것만 보고 큰 것은 보지 못하는 것 아닐까, 소탐대실하는 것은 아닐까 반성했어요. 그래서 문화제 때 추운 날씨에도 함께해 주는 소중한 마음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는 고백을 한 거예요.”
장기투쟁의 심리적 압박도 고통스러워
“장기투쟁 귀찮다 마시고 연대로 화답해 달라”
단식농성에 따른 육체적인 고통도 견디기 힘들지만, 무엇보다 최일배 위원장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10년이라는 장기투쟁의 시간들이다.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절박함은 심리적 압박감으로 다가왔고, 장기투쟁 사업장이라는 꼬리표가 편견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장기 투쟁이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래서 최일배 위원장은 ‘단식농성을 중단하라’는 주변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단식을 중단하라는 말이 가장 힘들어요. 여러 사람들이 페이스북이나 회의석상 등 다양한 곳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다 저한테 들려오거든요. 당연히 그분들은 걱정스러워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예민해지다보니 그분들의 걱정보다는 오히려 ‘내가 단식을 하는 게 귀찮아졌나, 혹은 부담스럽나’ 이런 쪽으로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식투쟁이 최선의 투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나'하며 확대해석을 하게 돼요.
사실 장기투쟁 사업장이다 보니 후원주점을 하거나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 사업할 때 상당히 부담이 되죠. 우리는 몇 번씩 하게 되니까. 신규 설립돼 투쟁에 나선 노조 중에도 후원주점이나 재정 사업을 해야 하는 곳이 있는데, 우리가 그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티켓을 또 사야 하는 게 부담 되지는 않을까 항상 걱정이 돼요.”
투쟁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고, 연대가 집중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열악한 현실은 자꾸만 그들에게 고립감을 준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말이 아닌 연대가 가장 절실하다. 최일배 위원장에게 가장 힘이 되는 말,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말’ 보다는 ‘사람’이 힘이 된다고 답한다.
“오늘은 혼자 왔던 사람이 다음에는 친구든 누구든 같이 와서 연대하는 것이 가장 힘이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코오롱 본사 앞에 모인 인원이 2천 명을 넘어 본 적이 없어요. 장기 농성과 단식을 하다 보니 사람 숫자에 민감해져요. 오는 13일과 20일, 27일에 집중적으로 일정을 잡아 놓고 있는데, 걱정이 많이 돼요. 이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코오롱 10년 투쟁, 희망 위한 최후의 몸부림”
37일을 넘긴 단식농성은 코오롱 투쟁의 전망을 찾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코오롱 해고자들은 10년이라는 고통의 시간과 가능성이라는 희망의 기로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005년 당시 코오롱 정리해고 투쟁에 나섰던 50명의 해고자들은 10년의 세월을 버티지 못했고, 지금은 12명의 해고자들만이 남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에는 14명의 동지들 중 2명의 동지가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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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생계 문제로 투쟁을 포기하는 경우는 20% 정도입니다. 나머지 80%는 전망이 없어서예요. 제가 판단하기에는 대부분의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전망과 비전, 희망이 없어서 투쟁의 현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정기적인 회의에 참석률이 자꾸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화를 낸 적이 있었어요. 그러자 한 동지가 ‘한 달에 한 번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회의에 참석해 봐야 만날 뻔한 이야기 아니냐. 사람들이 회의에 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모든 사람들이 의식적일 수 없는 만큼, 동기부여도 필요한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단식농성은 전망과 희망의 가능성을 찾아보는 최후의 몸부림입니다.”
최근에는 작은 가능성들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일 집회 당시 집회 참가자들은 코오롱 본사 본관 안까지 들어갔다. 지금까지 항의서한 전달하는 것도 건물 입구에서 가로막혔던 것을 감안하면 실낱같은 희망이 보인 셈이다. 최일배 위원장은 “이런 희망들이 모여 회사가 문을 여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본다”며 “그런 의미에서 오는 13일과 20일, 27일 집회를 얼마나 힘 있게 조직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조직력에 따라 회사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최일배 위원장은 코오롱 정리해고 투쟁이 단위 사업장의 문턱을 넘어 전체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투쟁으로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그간의 숱한 정리해고 철폐 투쟁이 이어졌음에도 정부가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뼈아픈 지점이다. 정리해고 사업장들의 투쟁은 절박해졌지만,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으로는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안타깝다.
“정부의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지난 10년의 투쟁이 코오롱만의 문제가 아닌 정리해고제도 자체의 심각성을 알려내는 투쟁이었다는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10년을 싸웠음에도 정부는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럼 '10년의 투쟁은 무엇이었나'하는 자괴감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조차 이 부분에 대해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철저한 집단 이기주의와 무관심이 계속 우리 발등을 찍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기 전에 내부 자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겪게 될 10년의 세월을 예견하는 사람은 없다. 코오롱 해고자들 역시 그들이 10년 동안 길거리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10년 전 정리해고 직후 최일배 위원장은 해고자들과 모여 ‘지노위에서 3개월, 중노위에서 6개월이 걸린다. 6개월만 싸우면 끝난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노동부도, 법원도, 국회도 부당하게 해고 된 노동자들을 구제하지 못했다. 해고 노동자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전체 노동자들의 연대와 행동이다.
“지금까지 그 힘들 때문에 10년을 버텨왔고, 10년의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연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많은 분께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한 가지 바람은, 코오롱 투쟁이 단지 코오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정리해고 문제로 고민이 확대됐으면 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이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해 주셨지만, 정리해고제도 자체의 심각성으로까지 투쟁이 연결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단지 최일배의 단식을 응원하는 것이 아닌, 정리해고가 인간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구나 하는 관심, 그리고 더 나아가 행동으로까지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는 13일 오후 3시,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는 각계각층이 준비한 ‘정리해고 10년, 3,650인 화답’ 집회가 열린다. 코오롱 해고 노동자들은 이날 고통의 10년을 넘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오늘도 12명의 해고노동자들은 3,650인의 노동자와 시민이 그들의 희망에 화답해 주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